뻥~ 뚫렸다. 총탄에 유리창이 뻥~ 뚫렸다. 아니 우리들의 가슴팍이 그날 조준되어 뻥~ 뚫린 것이다. 누구는 죽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43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는 지금 살아 남아있다. 무엇으로 살아 왔는가. 무엇으로 죽을 것인가. 그날이 기억되고, 오늘이 쌓여서 역사가 되어 왔지만 인간의 역사를 얼마큼 신뢰할 수 있을까. 또 그 5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분노의 눈물과 슬픔은 말라버렸어도 가슴속의 응어리는 아직도 다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좀 ...
2023.05.25 12:13죽고 사는 길이/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고/ 그대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낙엽처럼/ 같은 나뭇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 모두어지누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길 닦으며 기다리리/ -제망매가 전문-(기왕의 번역을 이윤선이 일부 수정함). 제망매가만큼 사랑받는 향가는 없을 것이다. 숱한 사람들이 애송하였고 숱한 연구자들이 해석하였다.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우리 문학의 정수라 아니할 수 없으니, 어떤 한두 가지 말로 온전히 형용할 수 있으며 어떤 한가지 이론만으로 해명할 ...
2023.05.18 12:26오페라는 간혹 순수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범접하기 어려운 공연예술로 취급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오페라를 어렵게 취급되는 예술이 아니라, 우리가 팝콘을 먹으며 쉽게 접하는 영화와 같은 한 장르라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인 뮤지컬과 사촌이며, 영화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담배 한 갑 가격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을만큼 가장 사랑을 받아왔고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공연예술 장르였기 때문이다. 1597년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는 악보를 볼 수는 없지만,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
2023.05.18 09:21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23년 3월 27일 기준 폴란드에 임시 보호로 등록된 개인은 약 157만 명 이상으로 EU 국가 중 가장 많으며, 폴란드를 거쳐 제3국으로 건너간 피란민의 규모는 950만 명 이상이었다. 폴란드로 유입된 대다수는 임시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이 재외동포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임시난민으로도 수용하지 못하는데, 폴란드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난민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주요 원인은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16-17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현재의 리투아니...
2023.05.11 15:50큰 기둥이 하나 보인다. 언뜻 굴뚝 같은데, 굴뚝치고는 너무 굵다. 첨성대 같다. 많은 양의 곡물이나 시멘트를 저장하는 사일로(silo) 같기도 하다. 둥근 구조물의 왼쪽과 오른쪽의 모양도 똑같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굴뚝도, 첨성대도 아니다. 급수탑이다.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시설이다. 오래 전, 증기기관차가 달릴 때다. 증기를 동력으로 쓰는 열차는, 물이 떨어지면 멈출 수밖에 없다. 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뒀다. 기관차가 역으로 들어오면 한쪽에선 삽...
2023.05.11 10:50잠자리가 불편한 것도 아닌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뭉그적대다가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솔찬한 것이 벌써부터 여름에 젖어드는 것인가 별들도 사연이 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아니면 무언가가 두려워 불침번을 서는지 몇 개가 깜박거린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산사의 밤은 그래도 고요하다. 이런 풍경 속으로 갑자기 별똥별이 스치거나 난데없는 혼불이라도 날게 된다면 아름다운 풍경인가, 두려운 풍경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허상이라 말하지만 그 높은 차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탓할 ...
2023.05.11 10:20멀리 돌았기에 온전하고, 굽었기에 곧다(曲則全, 枉則直)(도덕경, 22장). 김상준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팽창 문명에서 내장 문명으로』(아카넷)에서 이 문장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우회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빠르고 마침내 옳은 길을 말하는 것이다.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토끼와 거북이 설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전통사상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음양오행론 중에서 상생과 상극의 길도 또한 그러하다. 천지만물과 우주원리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나누어 그 이치를 밝혀둔 이론이자 실천방식이다. 일월이니 ...
2023.05.11 10:15쉼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미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로 인식되는가? 아마도 그 답을 찾기 전, 서로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억과 경험들이 요즘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적일 상황일 것이라 생각 된다. 이것은 2020년 코로나(covid-19)를 겪어오며 개인의 삶과 질이 마을의 공동체 보다 더욱 중요하게 된 자연스러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주목하는 올해로 두 번째,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마을이 미술관이다’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위드-코로나 시대의 민간과 주민이 함...
2023.05.07 14:17주위에서 오키나와에 간다고 하면, 오키나와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한 마디 씩 한다. 그곳은 꼭 가봐야 하는데 아직 가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거나 홍길동이 건설하려고 했던 율도국이 실은 오키나와를 모델로 했다고 하거나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다가 바람을 잘못 만나 오키나와에 도착했던 적이 역사적으로 많아서 그곳 사람들은 한민족에 더 가깝다거나(피가 섞여서) 제2차 대전 등의 비극을 언급하며 다른 나라와 다른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아마도 지리적으로 인접하기도 하지만 지난한 역사가 인지상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2023.04.27 17:34작년 김지하 작고 후, 본지면에 흰그늘의 내력을 썼다(2022. 8. 19). 오늘 다시 소환한다. 먼저 썼던 글을 해체하여 보완한다. 김지하의 흰그늘은 1999년 「율려란 무엇인가」에서 등장한다. 그 이전부터 언급은 있었겠지만, 개념으로 확정한 것은 이때 즈음이다. “중심음 발표하기 이틀 전인데, ‘흰그늘’이라는 말이 자꾸 아른거려요. 이게 뭘까? 그늘의 이중성의 안에서부터 생성되는 무궁 신령한 아름다움, 문채, 무늬야!” 김지하의 『율려란 무엇인가」(1999)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음’이 이후 내내 김지하가 주...
2023.04.27 15:07이팝나무꽃이 피고 있다.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피어난 꽃이 순백색이다.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봄날의 신록을 본 수필가 피천득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다. 남도에는 ‘명물’ 이팝나무가 많다. 순천 평지마을에 수령 4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광양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도 천연기념물이다. 순천 평촌리에도 400살 된 이팝나무가 있다. 장흥 용곡리에는 수령 370년 된 나무가 있다. 해남 맹진리엔 수령 3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
2023.04.27 14:49미국에 의한 불법 도·감청 사건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맹국까지 이루어지면서 한국에서는 주권과 한미동맹 문제를 넘어 한?러 간 새로운 갈등의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불법 도·감청 유출 문서에서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여 지원하겠다는 것이 드러나 있었고, 최근 실제로 국내의 전시비축물자 155㎜ 포탄이 해외로 반출되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유출 기밀문서에는 한국산 포탄 33만 발이 우크라이나로 반출되는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 있었다. 더구나 4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의 로이터와 인터뷰에...
2023.04.27 13:58신기루(蜃氣樓)의 출처, 초원벨트일까 바다섬일까? 신기루(蜃氣樓)는 공중에 뜬 누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래 아바타 시리즈까지 수많은 영화를 통해 형상화된 이미지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대의 감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상상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할 때 흔히 사용한다. 북반구 초원벨트에서는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다. 9개 10개까지 보이기도 한다는데...
2023.04.20 15:04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북촌 너분숭이에 하염없이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연중 관광객들이 넘치는 제주 섬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날씨가 좋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4.3 유적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기는 하지만 웃고 즐길만한 것이 없는 곳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 날 한 시에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다 널려있는 몇 개의 작은 돌무더기 울며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것도 못마땅했나 왜 그랬을까 왜 이 어린애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70년이 ...
2023.04.20 13:55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망라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어디서 약을 팔어?”란 말은 흔히 쓰이고 있다. 상대에게 속임수를 쓰지 말라는 이 어구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검증도 되지 않은 가짜 약을 화려한 말재주로 환자를 속여넘겨서 파는 사람을 향해 하는 말로 진실하지 못한 상대방의 말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과거 30여년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약장수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동네 공터에서 사람들을 불러 놓고 쇼 등 볼거리를 제공하며 피부병을 비롯해 젊게 해주는 묘약, 만병통치약 등을 소개했다. 요즈음 이렇게 쇼를 펼치며 돌아다니는 ...
2023.04.20 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