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가 부인 엘비라, 하녀 도리아 등과 함께 한 모습. |
20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나는 정열의 사냥꾼이다. 먼저 거위를 쫓고,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고,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다”라는 말을 했다. 그에게 매력적인 여성을 향한 그의 열정은 삶의 일부분이었다. 스타로서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일으켜 바람둥이라 욕을 먹고 항상 가십 속에서 주목을 받는 푸치니, 그의 애정 행각은 자신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지만, 그의 아내 엘비라에겐 크나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푸치니가 아내 엘비라, 아들 안토니오와 함께 한 가족사진. |
음악사에서 심도 있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그 시대를 이끌었던 주요 작곡가의 생애이다. 특히 음악학자들은 가십 거리로 취급받는 음악가의 연애사를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다양한 연구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음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감정은 이성 관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표출되며, 이성 관계에서 내뿜는 사랑, 배신, 분노, 열망 등의 감정 소산물은 예술로 승화되어 작곡가의 손끝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음악학자들은 작품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수많은 학위 또는 학술 논문 등의 연구에 시대를 아우르는 작곡가와 연주가의 연애사에 관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훗날 책과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베토벤의 연애사를 영화화한 <불멸의 연인> 외 다수 작품과 쇼팽, 슈만, 브람스, 파가니니 등 수많은 예술가의 혼을 불사르는 영화에 그들의 연애사가 재료로 사용되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20세기 당대 최고의 스타 푸치니 역시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을 소재로 한 <푸치니의 여인>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는 수많은 여인과의 염문뿐만 아니라 작품의 여주인공을 자신이 생각한 뮤즈로 여기고 작품에 등장시키곤 했는데 이러한 사건을 살펴보면 좀 더 푸치니 음악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 엘비라와 아들 안토니오와 함께 있는 푸치니(1900년). |
푸치니의 결혼 생활은 못된 사랑이 낳은 고통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1884년 가을, 푸치니는 이탈리아 중부 루까에서 자신의 고향 친구 제미냐니의 아내인 엘비라(Elvira Gemignani, 1860-1930)와 격정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푸치니와 엘비라의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가난한 푸치니를 위해 친구인 제미냐니가 그의 아내 엘비라의 피아노 교습을 소개하며 시작되었으며 그녀와 푸치니는 첫눈에 반해 일주일 만에 밀라노로 세아이의 엄마인 엘비라와 야반도주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 일로 제미냐니는 푸치니와 엘비라를 극도로 저주했으며 자신이 살아생전에 이혼해 주지 않아서 푸치니와 엘비라는 1904년 초에 제미냐니가 죽은 후 결혼할 수 있었고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인 안토니오를 합법화할 수 있었다.
엘비라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푸치니에게 상당히 집착했다고 알려진다. 당대 스타였던 푸치니 주변엔 항상 많은 여인이 함께했으며, 푸치니는 그녀들과 수많은 염문을 뿌렸는데 이에 관하여 엘비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이러한 문제로 말미암아 의부증을 앓고 푸치니와 극한 대립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항상 뮤즈를 찾았던 푸치니는 엘비라 외에도 <마농 레스꼬>와 <라 보엠>을 푸치니와 함께 했던 소프라노 페라니(Cesira Ferrani)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여가수들과도 자주 불륜을 저질렀고, 이 외에도 친구 동생, 귀족 부인들과도 염문을 일으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푸치니의 스캔들로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을 들 수 있다.
자동차 운전광인 푸치니는 1903년에 큰 사고로 심한 다리부상을 얻게 되었다. 거동이 어려운 푸치니를 위해 집안일을 도와줄 소녀 ‘도리아 만프레디(Doria Manfredi)가 가정부로 고용되었으며, 그녀는 성심성의껏 푸치니를 돌봤으며, 이러한 지극정성의 병간호로 푸치니는 빨리 안정과 치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고마운 도리아를 향한 다정한 푸치니의 모습에 의부증이 심했던 부인 엘비라는 그와 도리아가 불륜에 빠졌다며 두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엘비라는 도리아를 향한 질투와 학대로 어린 그녀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1909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살한다. 이후 도리아는 부검을 통해 그녀가 처녀라는 결과를 얻고 죽음으로서 불륜의 멍에를 씻게 되었다. 이에 도리아의 가족들은 엘비라를 법정에 고소하게 되고 엘비라는 법원에서 5개월 형을 받았지만, 푸치니는 거액의 위자료를 주고 용서를 빌었다. 이 사건은 도리아의 죽음부터 부검, 재판과정이 언론에 주목을 받으며, 유럽을 뒤흔든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푸치니는 훗날 도리아의 모습을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주인공 하녀 류 역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2000년이 되어서 도리아 후손인 나디아 만프레디가 소유하고 있는 문서의 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푸치니는 당시 자살한 하녀 도리아의 사촌인 줄리아 만프레디와 실제로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푸치니 사망 이후 그가 남긴 서신이나 다른 기록 등을 통해 많은 여성과의 불꽃 같은 그의 사랑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여성 편력에 관하여 푸치니의 작품을 위한 열정이라고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만약 현대에서 이러한 푸치니의 여성 편력은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범죄자로 취급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파시즘이 득세하던 시절 반페미니즘의 사회 기류로 약자인 여성을 향한 희생을 암묵적으로 용인하였으며 이처럼 여성 편력을 영웅화한 것도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여인들은 스타인 푸치니에 매료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오페라계의 거물이었던 그의 손길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어찌 보면 강요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악처로 알려진 푸치니의 아내인 엘비라 역시 그녀의 의부증이라던지, 괄괄한 성격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녀가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며, 이해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매번 푸치니가 발표하는 오페라의 여주인공과 사랑을 했던 푸치니는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주요 작품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죽음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최대 히트작인 <라 보엠>에서는 원작에서 당당하고 바람기 많은 미미를 가녀린 순정파 여인으로 바꿔가며 결말에 애절한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역할이었던 <나비부인>의 여주인공 쵸쵸상 역시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여성으로 남자 주인공 핑커톤의 불장난 같은 사랑에 희생되는 여인으로 자살로 결말을 맞이하는 비련의 주인공으로 제작했다. 다른 그의 주요 작품인 <토스카>, <마농 레스꼬>, <외투>, <수녀 안젤리카> 역시 여주인공은 결말에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 베리즈모 오페라의 한 축이 비극적 삶을 마감하는 여주인공이 다수 등장한다고 하지만, 유난히 푸치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공식은 여타 작곡가 다른 특별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호사가는 그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언급하며, 강한 성격을 지닌 아내 엘비라 때문에 그녀와 반대되는 성품을 지닌 여인을 푸치니가 자신에 작품에 등장시켜 그녀들을 사랑했다고도 한다.
마농 레스꼬를 열연하는 소프라노 페라니. 출처 위키피디아 제공 |
푸치니는 자신을 “나는 극장을 위해 작곡하도록 신의 명령을 받았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그는 신의 도구로 사용 받으며,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성을 쫓았을까? 우리는 그가 펼쳐내는 화성과 애절한 선율에 담은 여주인공의 무대와 노래를 듣고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가 평소 했던 말로 열정의 사냥꾼으로 여성을 쫓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감동을 위해 그를 쫓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추천 영화: 2011년 작 <푸치니의 여인, Puccini e fanciulla>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화제를 이끌었던 작품이다. 1909년 푸치니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마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토레 델 라고’에서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작곡에 몰두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던 푸치니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그의 작품에 녹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독 하녀인 도리아에게 친절하고 친밀한 모습에,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는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집착과 의심을 하게 되는데…. 파올로 벤베누티, 파올라 바로니(감독), 리카르도 모레티, 타니아 스퀼라리오(주연).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