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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 동굴 입구, 스산한 날씨였다. 2019년 8월 작곡가 김대성의 대표곡 ‘다랑쉬’가 연주되는 현장, 뒤덮인 칡넝쿨의 우듬지들이 해금 연주자 박솔지의 선율을 타고 울렁거렸다. 진한 슬픔의 곡조로 흐르는 선율임에랴 어찌 흔들리지 않을 잎이 있을 것이며 떨지 않을 가지가 있을 것인가. 낯익은 선율인 듯도 싶고 어쩌면 낯선 선율일지도 모를 이 가락을 듣자마자 나는 남도의 진계면 육자배기를 떠올렸다. 육자배기가 아니고서야 내면의 아픔을 이토록 헤집어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 곡이 발표된 것은 이보다 20여년 앞선 2002년이다. 해금...
2025.03.13 17:47종합예술 오페라는 세상의 삼라만상의 다양한 소재와 예술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지상 최대의 예술 콘텐츠 중 하나이다. 그러하기에 이 또한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전문화된 시스템 아래에서 분업화와 고도화를 통해 창조된다. 창작 오페라뿐만 아니라 오페라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크 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들이 세계 곳곳의 오페라극장에서 지역의 여건과 환경에 맞추어 제작된다. 특히 오페라는 사회의 지대한 관심과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유럽과 북미, 남미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 문화도시에서는 오페라를 그 도시의 대표 문...
2025.03.13 17:37“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중략.)/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위 글은 1926년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의 시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
#2025030901000187300006554#2025.03.09 17:33언제부턴가 산티아고 순례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 중에는 퇴직 후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는 것이 로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야고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이베리아반도가 순례길의 전거라고 하니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일까? 그것은 아닌 듯하다. 오늘은 산티아고라는 이름에서 따왔을 것이 분명한 ‘섬티아고’를 소개한다. 신안군 기점도와 소악도의 4개 섬을 잇는 길이기에 ‘섬+티아고’다. 증도면 병풍리에 속한 섬들이다. 이곳에...
2025.03.06 18:02버스커버스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여수밤바다’를 흥얼거리며 여수로 간다. 그렇다고 목적지가 ‘여수밤바다’는 아니다. 화려한 밤바다의 조명 속에 들어앉은 여수 당머리다. 당머리는 전라남도 여수시 대교동(大橋洞)에 속한다. 대교동은 오래전 남산동과 봉산동이 합해졌다. 남산동은 예암산의 다른 이름인 ‘남산’ 아래에 자리한다고 이름 붙었다. 남산은 전라좌수영성 남쪽 산을 가리킨다. 봉산동은 구봉산에서 구(九)를 버리고 ‘봉산’만 취했다. 당머리는 돌산대교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주민 4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 배를...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3.06 18:00고로쇠나무들이 물을 올리기 시작하고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지리산 의신면의 빗점골이 열린다. 빨치산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개울가의 커다란 바위가 불러서 찾아왔다. 이름하여 ‘이현상 바위’다. 은신처에서 멀지 않고 그의 주검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던 곳이기에 망각의 시간 속에 묻혀버린 역사의 진실과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종종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계곡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총소리.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
2025.03.06 18:01가장 이탈리아적인 선율을 성악가들이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후기 오페라 는 , 와 함께 그의 3대 오페라 추앙을 받는 작품이다. 이 세 작품 모두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의 대본으로 제작되었는데 당시 유부녀와의 불륜으로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해 빈으로 거처를 옮긴 다 폰테의 치욕적인 개인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각광을 받는 이 세 작품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해학과 풍자로 오페라 부파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열렬히...
2025.02.27 18:15보타산(普陀山)은 ‘보타도’라고도 한다.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에 있는 불교 성지다. 인근에 있는 ‘락가도’와 더불어 관음 신앙의 두 축을 이룬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포탈라카(Potalaka)라 한다. 한자로는 보타락가(補陀落迦)다. 관음보살이 산다는 전설의 산이자 섬이다. 남인도에 설정된 가상의 공간(실제 섬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불교 경전 ‘화엄경’에서 선재 동자가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 참고로 관음(觀音)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준말로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
2025.02.27 17:28“밥 먹어라!” “정돌이 밥 먹었니?” “귀철아, 밥 먹었어?”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일 수도 있을 인사말이 두고두고 머릿속을 배회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정돌이’(김대현 감독, 2월18일 광주 독립영화관) 얘기다. 14살 가출 소년 송귀철이가 고려대에 스며들어 성장하는 과정을 소재 삼은 영화다. 초점은 고려대를 중심으로 한 1980년대 학생운동의 내력에 있다. 어린 송귀철의 시선으로 학생운동 장면들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미묘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다큐멘터리 ‘정돌이’를 소개하면서 울먹거리는 모습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
2025.02.20 17:33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잇는 곳이 시나이반도다. 겉으론 척박해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지금도 민족문제, 종교 간의 갈등….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다. 한밤중에 출발해 걸어서 산을 오른다.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잘 보이지도 않는 길만을 따라 무릎이 깨져가면서 오르고 또 올랐다. 그 옛날 모세가 십계명 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워낙 성스럽게 전해져서 믿음이 있든 없든 이 시나이산에 오르고 싶었고 또 올라야만 했다. ...
2025.02.20 17:34겨울이 탄핵될 분위기다. 새봄을 인용하려는 듯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고로쇠 수액이 떠오른다. 자당과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철분 등 무기물을 많이 머금은 수액이다. 비타민 B1, B2, C도 많이 들어 있다. 뼈에 이롭다. 위장병에도 특효가 있다. 골리수(骨利水)로 불린다. 고로쇠 수액 한 사발을 그리며 백운산 자락 추산마을로 간다. 광양 백운산은 고로쇠 수액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마을 입구 담장부터 다르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수액에 얽힌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좌선을 오래 한 도선이 다리를 펼 수 없었는데, 수액을...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2.20 17:33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는 푸치니가 작곡한 세계인이 사랑하는 유명 오페라이다. 또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역시 베르디의 대표작으로 세계 오페라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인류가 낳은 최고의 공연예술인 오페라의 특별한 소재는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동아시아와 신비로움이 넘쳐나는 아랍을 소개하며 새로운 음악적 선율과 배경을 통해 유럽을 배경으로 획일화되는 오페라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현대에는 한국을 소개하는 오페라도 등장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서울 시립 오...
2025.02.13 18:29지난해 11월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천경자(1924~2016, 본명은 玉子)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열렸다. 성황을 이룬 관람객들 틈새에 끼어 고흥사람 천경자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9월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는 남도문화자원연구원 주관으로 한창기와 천경자를 주제로 한 학술토론회가 열렸고 답사가 이어졌다. 두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바들을 정리해 두고자 했으나 차일피일 해를 넘기고 말았다. 늦긴 했지만 적어도 몇 번은 짚어두어야 할 남도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내 게으른 탈고를 채근 중이다. 그저 생각했던 것은 내 전...
2025.02.13 18:01“예술은 답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매년, 아니 매일 새로운 예술 이론, 운동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의 생태계는 빠르게 돌아간다. 과거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회화에 대한 반발로 인상파(impressionism)와 야수파(fauvism), 입체파(Cubism)가 차례로 탄생했고, 20세기에 들어서 이미지 자체를 저항하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 등장한다. 올해 두 번째 칼럼에서는 개념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현대미술 작가를 소개한다. 할리우드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한...
2025.02.09 17:59붉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며칠 밤낮 동굴에 몸을 숨겼다가 연두색 바람이 시작하는 날에야 간신히 동굴을 나왔다. 동굴 안의 그이를 불러낸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연푸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새로 난 일곱 색깔 바람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애무하는 것인지 밀어내는 것인지 난무(亂舞)의 행로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바람에게 색깔을 입힐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이런 서술이 가능하리라. 어디 바람뿐이랴. 하늘에서 내리는 빛이야말로 사실은 색깔 자체 아니던가? 빛의 삼원색에서 색의 삼원색이...
2025.02.06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