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달 아래 첫 동네’ 풍경·인심에 반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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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달 아래 첫 동네’ 풍경·인심에 반해 머무는 자리
●강진 월하마을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 살기 좋은 전원마을
'호남 3대 정원'인 옥판봉 남쪽 백운동정원
다산 ‘백운동 12경’·초의 ‘백운동도’서 복원
차 문화 산실… 강진차밭 맞닿은 전시관도
  • 입력 : 2025. 06.19(목) 17:43
  •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월하마을 풍경. 귀촌인과 외지인들이 늘면서 전원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고샅길이 조붓하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담장 벽화도 정겹다. 농악놀이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활기가 묻어난다. 나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실린다. 달 상징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월하(月下)마을이다. 입간판엔 ‘달 아래 첫 동네’라고 적혀 있다.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이다. 나도 모르게 노래 한 소절이 흥얼거려진다. 하춘화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한 ‘영암아리랑’이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월하리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 속한다. 월하, 안운, 죽전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마을이 월출산 남쪽에 있다고 ‘월하’다. 안운(安雲)은 월출산 아래 따뜻한 자리라고, 죽전(竹田)은 주변에 대밭이 많다고 이름 붙었다.

풍경과 인심에 반한 외지인 여럿이 들어와 눌러앉았다. 대처에서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귀촌인도 많다. 살기 좋은 전원마을로 입소문이 나 있다.

월하리에선 월출산 자락의 역사와 문화, 사람과 자연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옥판봉 남쪽 백운동정원이 맨 앞에 선다.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정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힌다. 국가유산청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됐다.

백운동정원. 봄과 여름은 물론 사철 아름다운 정원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백운동정원은 숲속 계곡을 끼고 있다. 마을과 완연히 구분된다. 정원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마을 고샅을 따라 동백나무 숲길도 들거나, 차밭 길을 따라간다.

백운동정원은 별서(別墅)다. 살림집 아닌, 세속을 떠나 자연에 기댄 별도 거처다. 다산, 초의, 소치 등도 찾았다. 강학과 풍류 공간이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원은 원주이씨 이담로(1627~1701)가 만들었다. 이담로는 1692년 전후 여기에서 거문고와 서책을 홀로 즐겼다. 이담로가 살던 집은 백운동에서 6㎞가량 떨어져 있다. 지금의 성전면 금당리다.

이담로는 손자 이언길과 함께 20여년간 원림을 일궜다. 이담로가 백운동을 지은 연유와 풍광을 적은 글이 ‘백운세수첩’에 전해진다.

월출산 옥판봉. 백운동정원 내 정선대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백운동은 월출산 천불봉 남쪽 기슭에 있다. 앞쪽으로 석대가 있어 올라가 굽어볼 수 있고, 뒤로는 하늘을 뚫은 층층의 바위산이 옥처럼 우뚝 서 있다. 주위에는 동백나무와 대나무 숲이 무성해 길이 희미한데, 골짜기 맑은 물이 길을 비추고 흰 구름을 피워 하늘에 띄운다. 마당으로 흘러든 시냇물이 아홉 구비를 만드니, 섬돌을 타고 물소리가 울린다. 이곳에 ‘백운동(白雲洞)’ 세 글자를 새기고 군자 살아가리.’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인으로 산 다산 정약용(1762~1836)도 백운동을 찾았다. 다산은 1812년 가을 제자들과 월출산에 갔다가 백운동에서 하룻밤 묵었다.

다산은 초당에 돌아와서도 백운동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백운동 12경’을 시로 읊었다.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이 쓴 시와 함께 엮었다.

다산이 쓴 ‘백운동 12경’과 초의가 그린 ‘백운동도’를 토대로 복원한 정원이다. 이담로가 냇가 바위에 새긴 ‘白雲洞’ 세 글자를 토대로 위치를 확정했다.

강진차밭.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백운동정원은 우리나라 차 문화 산실로 불린다. 다산, 초의, 이시헌 등이 차를 만들었다. 이시헌은 해마다 차를 만들고,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간 스승 다산에게 차를 보냈다.

‘지난번에 보내준 차와 편지는 도착하였네...(중간 생략)... 금년들어 병으로 체증이 심해져 잔약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茶餠(떡차) 덕분일세. 이제 곡우 때가 되었으니 다시금 이어서 보내주기 바라네.’

다산이 1830년 3월 이시헌에게 차를 청하면서 보낸 편지글의 일부분이다. 이시헌의 차 선물은 다산이 죽은 뒤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이시헌과 다산은 백운동정원에서 만나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백운동정원 안뜰에 계곡물을 끌어들이고 유연한 물길에 술잔을 띄운 유상곡수(流觴曲水) 흔적도 보인다. 술잔 대신 댓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우는 재미가 별나다.

백운동정원 전시관. 정원의 조성과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백운동정원 전시관도 최근 만들어졌다. 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이다. 정원 조성 배경과 역사, 조형미를 보여준다. 드넓은 강진차밭도 전시관과 맞닿아 있다. 차밭 이랑이 기암괴석의 월출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입장료도 따로 없다.

하룻밤 묵으며 농촌을 만나는 ‘푸소(FU-SO)’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옥도 마을에 있다. 이한영 차문화원도 지척이다. 1920년 ‘백운옥판차’를 선보인 이한영(1868~1956)의 맥을 잇고 있다. 이한영은 이시헌의 후손이다. 차문화원 앞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호젓하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