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마을에 촘촘히 뿌리내린 생활 협동계는 주민 삶의 지지대이자 자치 의제의 산실이었다. 마을 대동계는 생활 협동계들의 연합체이자 생활과 순환경제를 결합한 주민 자치단체였다. 이런 전통마을 자치 정신에 따라 생활 자치 운동과 순환경제 운동을 결합한 농촌 마을 모델을 둠벙마을이라고 개념지었다. 여기에 가치농업과 가치혁신을 더하고, 관계인구를 더하면 전환시대 농촌이 새 희망을 얻을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박상일이 쓴 ‘전환시대 농촌의 길’(드림북, 2025. 2) 한 대목이다. 둠벙마을은 논에 물을 대려고 판 둠벙이 스스로 생태...
2025.04.17 16:04두 여울물이 있다. 하나는 소설로 쓰인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노래로 불린 이야기이다. 먼저의 이야기는 황석영이 ‘여울물소리’라는 이름으로 썼다. 나중의 이야기는 황호준이 같은 이름으로 창극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말 광주시립창극단 창단 35주년 브랜드작품으로 공연됐으니 4개월여 지났나? 하지만 소설 속 장별 제목이기도 했던 ‘여향(餘響)’의 기운이 시방도 내 몸에 남아 있다. 황석영이 말하고자 했고, 황호준이 노래하고자 했던 웅숭깊은 내력 탓일 것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
2025.04.10 17:25“공심은 저러시고/ 나무남산 본이로세/ 조선은 국이옵고/ 팔만은 사두세경/ 허궁천 비비천/ 삼화도리 열시왕/ 이덕 마련하옵실 때/ 경상도 칠십삼관/ 전라도 오십삼관~”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씻김굿 거리 중 ‘초가망석’의 내드름 부분이다. 지역이나 가창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대개 수도 서울의 본디 내력을 줄거리 삼는다. 우리의 근본과 이 땅의 내력을 반복해 선포하는 셈이다. 바리데기, 당금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무속 신화에 속하는 공심에 대해서는 2017년 6월 9일자 본 지면에 다뤘다. 곡성 옥과에 터를 마련한 ...
2025.04.03 16:22한복 입은 예수, 장삼을 두른 성모 마리아, 역설적으로 낯선 이 그림들이 출현한 것은 근자의 일이다. 장발의 성화를 비롯해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혹은 배운성이나 장우성의 성모화 등이 손에 꼽히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듣자 하니 무명작가 허솔의 성화 일러스트에 대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해외 파견 신부들의 요청이라 한다. 왜 이들이 허솔의 성화 일러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주문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한복에 있다. 흑인 예수상이라던가 갓을 쓴 예수상 등 기독교의 토착화에 기댄 각 나라의 성찰이 부상된 것도...
2025.03.27 15:49어떤 알곡들이 튀어 오르는 소리일까. 어떤 생명이 땅속을 헤집고 올라오는 진동일까. 파도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치는 풍경일까. 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는 상투적 표현만으로는 다 말하기 어려운 청아한 음들의 향연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면, 재잘거리기도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며 새싹 오르는 뒤꼍이며 고샅이며 매화봉우리 터지는 나무 곁을 종종걸음으로 달려 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아니라도 좋다. 어미를 쫓아 장난질하는 강아지들 혹은 고양이어도 무방하다. 통통 뛰어다니는 선율을 따라잡는 앵글이 분주...
2025.03.20 16:25다랑쉬 동굴 입구, 스산한 날씨였다. 2019년 8월 작곡가 김대성의 대표곡 ‘다랑쉬’가 연주되는 현장, 뒤덮인 칡넝쿨의 우듬지들이 해금 연주자 박솔지의 선율을 타고 울렁거렸다. 진한 슬픔의 곡조로 흐르는 선율임에랴 어찌 흔들리지 않을 잎이 있을 것이며 떨지 않을 가지가 있을 것인가. 낯익은 선율인 듯도 싶고 어쩌면 낯선 선율일지도 모를 이 가락을 듣자마자 나는 남도의 진계면 육자배기를 떠올렸다. 육자배기가 아니고서야 내면의 아픔을 이토록 헤집어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 곡이 발표된 것은 이보다 20여년 앞선 2002년이다. 해금...
2025.03.13 17:47언제부턴가 산티아고 순례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 중에는 퇴직 후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는 것이 로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야고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이베리아반도가 순례길의 전거라고 하니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일까? 그것은 아닌 듯하다. 오늘은 산티아고라는 이름에서 따왔을 것이 분명한 ‘섬티아고’를 소개한다. 신안군 기점도와 소악도의 4개 섬을 잇는 길이기에 ‘섬+티아고’다. 증도면 병풍리에 속한 섬들이다. 이곳에...
2025.03.06 18:02보타산(普陀山)은 ‘보타도’라고도 한다.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에 있는 불교 성지다. 인근에 있는 ‘락가도’와 더불어 관음 신앙의 두 축을 이룬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포탈라카(Potalaka)라 한다. 한자로는 보타락가(補陀落迦)다. 관음보살이 산다는 전설의 산이자 섬이다. 남인도에 설정된 가상의 공간(실제 섬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불교 경전 ‘화엄경’에서 선재 동자가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 참고로 관음(觀音)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준말로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
2025.02.27 17:28“밥 먹어라!” “정돌이 밥 먹었니?” “귀철아, 밥 먹었어?”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일 수도 있을 인사말이 두고두고 머릿속을 배회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정돌이’(김대현 감독, 2월18일 광주 독립영화관) 얘기다. 14살 가출 소년 송귀철이가 고려대에 스며들어 성장하는 과정을 소재 삼은 영화다. 초점은 고려대를 중심으로 한 1980년대 학생운동의 내력에 있다. 어린 송귀철의 시선으로 학생운동 장면들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미묘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다큐멘터리 ‘정돌이’를 소개하면서 울먹거리는 모습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
2025.02.20 17:33지난해 11월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천경자(1924~2016, 본명은 玉子)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열렸다. 성황을 이룬 관람객들 틈새에 끼어 고흥사람 천경자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9월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는 남도문화자원연구원 주관으로 한창기와 천경자를 주제로 한 학술토론회가 열렸고 답사가 이어졌다. 두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바들을 정리해 두고자 했으나 차일피일 해를 넘기고 말았다. 늦긴 했지만 적어도 몇 번은 짚어두어야 할 남도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내 게으른 탈고를 채근 중이다. 그저 생각했던 것은 내 전...
2025.02.13 18:01붉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며칠 밤낮 동굴에 몸을 숨겼다가 연두색 바람이 시작하는 날에야 간신히 동굴을 나왔다. 동굴 안의 그이를 불러낸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연푸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새로 난 일곱 색깔 바람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애무하는 것인지 밀어내는 것인지 난무(亂舞)의 행로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바람에게 색깔을 입힐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이런 서술이 가능하리라. 어디 바람뿐이랴. 하늘에서 내리는 빛이야말로 사실은 색깔 자체 아니던가? 빛의 삼원색에서 색의 삼원색이...
2025.02.06 17:15북소리 둥둥 징소리 꽝꽝/ 장구는 동당동당 각(角)은 뛰~뛰/ 깃발은 펄럭펄럭 춤은 사뿐사뿐/ 짐승 얼굴 사납고 호랑이 모자 드높네/ 집뜰 우물 부엌에서 우렛소리 땅을 울리며/ 나아갔다 물러났다 조수처럼 분주하네/ 문호(門戶)의 신령께 새로 치성을 더하니/ 숲과 시내 도깨비들 도망가기 바쁘네/ 종규(鍾馗)가 눈동자를 움켜쥐고 서서 먹고/ 피를 뿜어 불 만들어 온몸을 태우네/ 귀신도 간 있다면 떨어지고 말았을 터/ 살려달라 애걸하며 머리를 조아리다/ 후다닥 정신없이 문밖으로 도망쳤나/ 천지가 말끔하고 달과 별이 찬란하네/ 징을 치고 ...
2025.01.30 18:23을사년을 푸른뱀의 해라고 하니 푸른색이 어쩌고 뱀이 어쩌고 호들갑을 떨었다. 예외 없이 질문이 들어온다. 그거 음력 설날 기점 아닌가? 맞다. 갑오개혁 이후 태양력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본래 음력 설날이 육십갑자 구성의 기점 아닌가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025년 시작되던 날 본 칼럼을 통해서 을사년과 뱀의 의미를 말한 바 있다. 설날이라는 기점이 동짓날, 양력 설날, 음력 설날, 입춘, 심지어 삼월삼짇날까지 변화해 왔다. 설날이 고정되어 있던 게 아니다. 물론 오랫동안 음력을 사용해 왔으니 그...
2025.01.23 17:52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체포하는 것으로 응원봉 혁명이 일단락됐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성명을 발표해 우리를 지지했다. “미국은 한국 국민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한다. 법의 지배에 대한 우리 공동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한국과 한국 국민이 헌법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기울인 모든 노력에 감사한다.” 윤 수괴의 계엄령 선포와 의회의 해제 가결 이후 헌법적 절차대로 꾸준하게 진행되는 민주 질서 회복에 대한 지지 성명이다. 미국뿐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모토 삼는 세계의 여러 나라가 이른바 응원봉 혁명의 과정을 생중계하듯 지...
2025.01.16 18:20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 대통령 윤석열에 의해 위헌·위법한 계엄이 선포됐다. 1972년 10월 박정희의 10월 유신 이후 5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이었다. 다행히 국회의 계엄해제 가결로 일단의 수습을 했지만, 온 국민 모두 가슴을 쓸어내린 시간이었다. 계엄해제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다. 그중에서도 발 빠르게 대처했던 국민들의 마음이 핵심이라는 게 중론이다. 전남대 박구용 교수는 이를 학습된 효과라고 말한다. 동학으로부터 5·18에 이르는 시민들의 학습과 경험이 일촉즉발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2025.01.09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