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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구상한 제목이 만경보(萬景譜)이다. 문자 그대로 만 가지의 경치를 노래하겠다는 뜻이다. 고은의 에 기댄 작명이긴 하나 그와는 결이 다르다. 김지하가 초기에 ‘이야기 시’를 써서 담시(譚詩)라 이름 붙였던 바를 상고한다. 고은이 1986년부터 2010년까지 다룬 인물이 5,600여 명에 이른다던가. 30권 4,000편이 넘는다고 하던가.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던 방대한 작업이니 어찌 구닥다리 시집 한 권 내고 그에 비길 수 있으랴. 다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표방처럼 시가 갖는 선한 의지를 우리 공...
2023.06.01 14:48내친김에 덧붙인다. 지난주 칼럼에서 나는 우리 고전의 백미라는 향가 제망매가를 다루었다. 기왕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이메일 칼럼으로 다루었던 후반부도 마저 끄집어 내둔다. 독자층이 다르므로 설명이 친절하지 못하다는 꾸중을 들을 수 있어서이다. 나무라는 이들의 생각을 새로이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서남북 간데 마다/ 형제같이 화목할거나/ 오영방에 깊이 들어/ 형제투쟁을 마다하였네/ 여래연불(염불)로 길이나 닦세/ 남무야 남무여/ 냄무아미탈 길이나 닦세/ 여비 옥여갖춰...
2023.05.25 12:38죽고 사는 길이/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고/ 그대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낙엽처럼/ 같은 나뭇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 모두어지누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길 닦으며 기다리리/ -제망매가 전문-(기왕의 번역을 이윤선이 일부 수정함). 제망매가만큼 사랑받는 향가는 없을 것이다. 숱한 사람들이 애송하였고 숱한 연구자들이 해석하였다.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우리 문학의 정수라 아니할 수 없으니, 어떤 한두 가지 말로 온전히 형용할 수 있으며 어떤 한가지 이론만으로 해명할 ...
2023.05.18 12:26멀리 돌았기에 온전하고, 굽었기에 곧다(曲則全, 枉則直)(도덕경, 22장). 김상준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팽창 문명에서 내장 문명으로』(아카넷)에서 이 문장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우회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빠르고 마침내 옳은 길을 말하는 것이다.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토끼와 거북이 설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전통사상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음양오행론 중에서 상생과 상극의 길도 또한 그러하다. 천지만물과 우주원리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나누어 그 이치를 밝혀둔 이론이자 실천방식이다. 일월이니 ...
2023.05.11 10:15작년 김지하 작고 후, 본지면에 흰그늘의 내력을 썼다(2022. 8. 19). 오늘 다시 소환한다. 먼저 썼던 글을 해체하여 보완한다. 김지하의 흰그늘은 1999년 「율려란 무엇인가」에서 등장한다. 그 이전부터 언급은 있었겠지만, 개념으로 확정한 것은 이때 즈음이다. “중심음 발표하기 이틀 전인데, ‘흰그늘’이라는 말이 자꾸 아른거려요. 이게 뭘까? 그늘의 이중성의 안에서부터 생성되는 무궁 신령한 아름다움, 문채, 무늬야!” 김지하의 『율려란 무엇인가」(1999)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음’이 이후 내내 김지하가 주...
2023.04.27 15:07신기루(蜃氣樓)의 출처, 초원벨트일까 바다섬일까? 신기루(蜃氣樓)는 공중에 뜬 누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래 아바타 시리즈까지 수많은 영화를 통해 형상화된 이미지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대의 감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상상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할 때 흔히 사용한다. 북반구 초원벨트에서는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다. 9개 10개까지 보이기도 한다는데...
2023.04.20 15:04누가 나에게 ‘너의 안태 고향이 어디냐?’ 라고 물으면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개골 마을이오 하고 대답한다. 안태는 ‘태(胎)’의 남도말이다. 행정명으로는 길은리(吉隱里), 자연마을 이름은 고길리(古吉里)이다. 소포만(灣) 들머리 원둑(堤防)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곳, 1970년대만 해도 골짜기 안쪽까지 모두 천일염 염전이었다. 개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갯골(개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다. 그래서 내 어머니 댁호가 ‘개골네’이다. 잔등(고개) 너머가 ‘용골(龍洞里, 용골짜기)’이고 그 건너편 마을이 ‘원창개(水門, 漕運倉)’와 ‘개들...
2023.04.13 12:51바실홀(Basil Hall)의 조도(鳥島) 정박과 만조해(萬鳥海) “그 외에 우리가 본 네발짐승이라고는 개뿐이었다. 비둘기, 매, 독수리는 있었으나 작은 새들은 거의 없었다. 이곳의 까마귀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많았다.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돌아왔다가 우리가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몇 리그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 섬으로 소풍을 갔다. 상륙하려는 길에 인공으로 된 수평선과 함께 태양의 자오 고도를 보았다. 우리는 그곳의 고도가 북위 34도 22분 39초라는 것을 확인했고, 두 개의 정밀 계기로 측량한 결과 그곳은 동경 126도...
2023.03.30 15:26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1969년에 신중현이 작사 작곡하고 박인수가 부른 노래다. 십수 곡에 이르는 봄비 노래들이 있지만 그중 으뜸이다. 이희우 작사 김희갑 작곡 봄비를 부른 이은하가 서운해하려나. 그래도 근자에 떠오르는 선율은 KBS 불후의 명곡에서 알리가 불렀던 봄비다. 낯설게 말...
2023.03.30 14:28알몸으로 밭에 나가 쟁기질하는 풍속을 나경(裸耕)이라 한다. 주로 입춘에 행하던 풍속이기에 ‘입춘나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정보를 말할 때는 으레 미암 유희춘의 문집 기록이나 농경문 청동기를 인용한다. 제주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입춘굿도 인용한다. 중국에서 전승되고 있는 목우희(木牛戱)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규태도 여러 지면을 통해 나경 풍속을 언급하였다. 진도지역에도 관련 의례가 있다. 경향신문 이기환 기자가 나경 풍속을 다루면서 진도지역을 언급하였다. 진도에서도 추석 전에 어린이들이 벌거벗고 나이 수대로 밭고랑을 가는...
2023.03.16 16:47발산(鉢山)마을, 지금의 무안군 해제면에 있다. 에 보면 무안군은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 물아래)’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하였다 했고, 이 군에 속한 현(縣)이 넷이라 했다. 이 중 하나가 해제현이다. 지금의 목포를 포함한 함평, 무안, 신안, 진도 일대를 포함한 서남해 지역을 무안군이 총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산마을의 역사가 해제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지는 알 수 없다. 전 무안문화원장 백창석에 의하면 17세기 중엽에 입향조가 들어왔을 것이라 한다. 밀양박씨 입향조 박만기가 이 마을에 들어온 연대를 추정하여 말한 것...
2023.03.09 13:49일반적으로 사장구(沙器로 만든 장구), 와고(瓦鼓, 기와장구), 청자장구 등으로 부른다. 활방구, 물방구, 못방구 등이 북(鼓)의 불교적 차용인 법고(法鼓)에서 왔다는 점 지난 칼럼을 통해 밝혀두었다. 장구 또한 맥락이 비슷하다. 긴북이라는 뜻에서 장고(長鼓)라 한다. 장구의 원말이다. 장고(杖鼓)와 장고(長鼓)를 병행해 쓰다가 어느 시기 장고(長鼓)와 우리말 ‘장구’로 정착되었다. 그렇다고 노루(獐)와 개(狗)가죽으로 장구를 설명하는 것은 견강부회다. 따로 시간을 내 설명하겠다. 도자기장구는 울림통을 흙으로 구워 만든 장구다. 진...
2023.03.02 15:59“두리둥퉁 두리둥퉁 쾌갱매 쾌갱매 쾡매 캥, 어럴럴럴 상사뒤여, 어여허 여여루 상사뒤여, 선리건곤(仙李乾坤) 태평시으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康衢) 미복(微服) 동요(童謠) 듣던 요님군의 성군일래, 여여어 여여루 상사뒤여 어럴럴럴 상사뒤여~~” 때는 오뉴월 농번(農繁)시절이라, 각댁 머음(머슴)들이 보리밥(麥飯)에 보리술(麥酒)을 마시면서 부잣집 모를 심고 있다. 중 이도령이 과거 급제하여 남원으로 내려오다가 모내기를 하는 일군의 농부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조선 후기 중인층과 양반층의 기호에 맞춰 한자 일색의 풍미로 사설이...
2023.02.23 14:06“한국에서는 근래에 와서야 국가와 중앙에 종속된 지방사 연구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다. 지리지와 읍지, 지방지 편찬의 오랜 역사가 강고한 지방사의 전통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중앙집권적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가질 여지가 별로 없었고,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하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시하도록 강요했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 허영란의 「지방사를 넘어, 지역사로의 전환-한국 근대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새로운 모색」(지방사와 지방문화, 2017)이란 글의 시작 대목이다. 국어사전에는 지방(地方)을 ...
2023.02.16 16:00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라는 가전체(假傳體, 사물을 의인화하는 형식의 문학) 글이 있다. 규중은 여자들이 기거하는 방이다. 칠우는 척부인(尺夫人)-자, 교두(交頭)각시-가위, 세요(細腰)각시-바늘, 청홍각시-실, 감투할미-골무, 인화(引火)낭자-인두, 울(熨)낭자-다리미를 말한다. 주부인이 잠자는 사이 칠우들이 나와 갖은 논쟁을 하다가 끝에 주부인이 이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감투할미(골무)의 조정으로 무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부인은 수궁가의 별주부를 닮았다. 연대나 작자 미상이지만, 작자가 여자인 점은 분명하다. 「한국문학통...
2023.02.09 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