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봉황과 일월오봉도, ‘K-컬쳐 시대’ 새롭게 발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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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봉황과 일월오봉도, ‘K-컬쳐 시대’ 새롭게 발현하자
450 청와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 입력 : 2025. 06.12(목) 10:19
일월오봉도 6폭 병풍(19~20세기 초).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전통회화(繪畵) 중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고르라면 선뜻 내놓을 수 있을까? 단순히 그림의 장르나 형태로만 고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난처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산수나 풍경이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관, 여백의 미나 담담한 선과 색채에 드러나는 감정선, 한이나 흥, 정 따위의 정서 구조, 기호나 도상이 가지는 회화적 구조 따위를 복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서나 철학, 미의식, 삶의 태도들 말이다. 말하자면 국보로 지정된 추사의 ‘세한도’를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중국 그림이나 일본 그림과의 변별성을 설명해야 하고 무엇보다 한국적이라는 게 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전통회화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대개의 작품이 그러하다. 하지만 민화라는 범주로 묶이는 그림들을 거론하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컨대 해외의 한국대사관이나 한국문화원 등에 전시하거나 장식하는 이미지들을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리랑이나 농악의 이미지, 태극기, 한지 예술품들을 포함해 일월오봉도나 까치호랑이 등의 민화가 대세를 이룬다. 왜 그럴까. 시대성과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정서적 접근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적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적’이라는 인식이 단순히 고유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화는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들이 그렸던 그림으로 산수, 화조 따위의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이미지다. 본래의 그림을 베껴서 그렸다고 해서 모방화(模倣畵)라고도 하지만 원본을 그대로 모사한 것을 오리지널로 인정하는 판소리나 산조 따위의 예술과 같은 인식이어서 구전심수(口傳心授, 일상생활을 통하여 전수한다는 뜻)적 의의를 지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소박함, 기원, 해학, 장식미, 탈권위성 등의 요소가 어우러진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현대 민화는 창작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복합적 내력이 동시대 세계 대중이 쉽게 감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의 상징으로 다가섰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민화학교 교장 정병모가 미국의 여러 대학에 한국의 민화 걸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요컨대 민화는 정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한국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문화콘텐츠라는 것이다. 요즘 회화계의 근황을 보면 세계 도처에서 민화가 실행 혹은 실천된다고 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K-뮤직, K-드라마, K-무비, K-푸드 등 K-컬쳐가 회자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월오악도. 박종회 작품
K-컬쳐의 시대, 가장 한국적인 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일월오봉도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를 그린 산수화풍의 그림으로 예전에 임금이 앉는 용상(龍床)은 물론 왕이 서거했을 때에 신주를 모셔두는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에 장식으로 그렸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이나 경기전(慶基殿) 같은 진전(眞殿)에도 이 그림을 걸었다. 오봉일월도, 오봉산병, 오봉병(병풍), 오봉도, 오악도, 오봉산일월도 등으로 부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중회화이자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실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왕이 앉는 자리 뒤편에 걸어두었다. 어떤 작품이든 구도가 일정하고 오방색 등의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며 좌우 대칭의 구도를 갖는다. 박현주의 논문 ‘조선왕실 궁중행사도 속의 일월오봉도 연구’(고궁문화, 2024)에 보면, “‘시경(詩經)’의 ‘소아(小雅)’편 천보(天保)에 언급된 천보구여(天保九如, 장수를 기원하는 상서로운 축원시)에서 비롯됐다는 견해, ‘주역’의 음양오행에서 비롯돼 해와 달, 오악(五嶽, 다섯 개의 산)과 소나무, 물결로 구성된 도상이 조선 초부터 사용됐다는 견해가 있다(김홍남의 글 인용).” 하지만 북경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太和殿)이나 일본의 궁궐에서도 일월오봉도 같은 의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국 특유의 전통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이 견해에 동의한다. 이 논문에서 분석한 대상은 18세기 그림 21점, 19세기 그림 7점, 20세기 그림 2점 등이고, 이들 그림의 화면 구성은 산, 해, 달, 수파문, 낭화(浪花-흰색 물결), 산 사이의 폭포, 소나무라는 자연의 요소들이다. 사실적이지 않고 단순하며 기하학적인 형상들이다. 그런데 궁중회화이던 이 그림이 민간으로 스며들어 오늘날 민화의 대표성을 띨 만큼 광범위하게 그려진다. 조선 후기 유교적 왕권이 약화되고 민간의 왕실에 대한 동경이 확산되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궁중의례와 기물들이 민간의 이상적 이미지로 수용되기 시작해 그려진 책거리나 궁중회화도와 유사한 맥락이다. 오늘날에는 더 주목할 만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십수 년 민화붐이 일더니 이제는 이 그림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변화하면 해석도 변화한다. K-컬쳐의 시대,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자리잡은 일월오봉도가 가지는 의미는 이미 왕조시대의 궁중화를 넘어섰다. 지난 칼럼에서 청와대의 봉황문에 대해 언급하며 호혜 대등과 젠더 등의 의미를 담아내는 이미지로 재구성할 것을 주문했는데, 일월오봉도 또한 그런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인식되는 그림이기에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의미를 담아 재구성해 청와대의 장식 그림으로 사용하기를 권한다.

일월부상도. 호암미술관 소장
남도인문학팁

청와대 장식 그림으로 ‘창작 일월오봉도’를...

중국의 자금성에도 없고 일본의 궁궐에도 없는 이 그림은 한국 특유의 전통 그림이다. 고려말에 고안되었다고 하나 그 시말을 알 수 없다. 조선 초부터 사용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본래 왕좌를 상징했으므로, 해와 달은 음양의 질서를 나타내고 다섯 봉우리는 오행 곧 우리나라 국토를 상징하며 소나무, 물결, 폭포는 생명력을 상징했다. 왕이 이 그림 앞에 앉음으로써 우주적 질서의 중심자가 되는 상징 연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왕실의 권위가 약화되고 왕실의 그림들이 민간으로 스며들어 민화가 되면서 의미가 변화하게 된다. 왕의 권위를 나타내던 구성 요소들이 대개 길상적 의미로 변한 것인데, 해는 생명력을, 달은 여성성이나 윤회를, 산은 불변성이나 조상을, 물결은 재물로 해석됐고 이를 가정의 평안과 번영의 상징으로 삼게 됐던 것이다.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은 전혁림의 통영항 그림을 청와대에 걸어두고 피카소보다 더 격조 있게 그렸다는 남해바다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 중 하나인 일월오봉도를 주권자 국민의 의미에 맞게 재창작해 장식 그림으로 활용한다면, K-컬쳐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되지 않을까? 당장 대통령이 왕이냐는 비판이 일겠지만,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는 점에서나 글로벌한 K-컬쳐의 시대라는 점에서 생각할 여지가 많다. 권좌의 상징이 아닌 방식으로 활용하면 될 일이고,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서 지혜를 모으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그림 자체가 좌우 대칭으로 조화를 꾀한 구도이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담은 창작은 물론 해석의 여지가 넓다. 태양과 달은 여야, 남녀노소 등 통합의 빛으로, 다섯 개의 산은 백두산 한라산 등 실제 국토로, 소나무는 기후위기 시대의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폭포와 물결은 권위가 아닌 공공의 목소리로 말이다. 지난 칼럼에서 청와대의 상징 봉황의 재구성을 말하며 여성과 노약자들의 인권 신장, 양성평등 의식의 정착을 언급했듯이 창작 일월오봉도의 활용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국가권위와 한국적 품격의 문화 아이콘을 구상해볼 만하다. 봉황과 일월오봉도, K-컬쳐의 시대 법고창신의 문화융성은 창의를 통해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