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여서 ‘케데헌’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얘기다. 세계 영화시장을 파죽지세로 점유하는 모양이다. 케이팝은 2000년대 전후로 유행하는 한국의 대중가요를 지칭하는 말이다. 데몬(demon)은 문자 그대로 악령이나 악마다. 헌터스는 사냥꾼들이란 뜻으로 데몬 즉 악령을 퇴치하는 그룹이다. 지난 6월20일 공개 이후 현재 50여개국 이상에서 1위, 전 세계 93개국 내 톱10에 진입했다고 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빌보드 앨범 순위에서도 1위를 달리며 미국 Spotify 차트에서는 BTS를 추월했다고도 한다. 영화와 노래 순위를 모두 석권하는 중 가상 아이돌 그룹이 현실 차트를 장악하는 놀라운 성과다. 이런 확산세라면 지금보다 훨씬 방대한 실적을 거둘 듯하다. 넷플릭스 최고 애니메이션으로 기록을 경신 중이니 후무(後無)는 모르겠으나 전무(前無)한 것은 분명하다. 주목할 점은 이게 한류 재창출의 콘텐츠이자 한국형 드라마라는 점에 있다. 애니메이션과 뮤직비디오는 물론 K-드라마를 융합했다고나 할까. 물론 제작사는 일본 자본인 소니이고 배급사는 미국 자본인 넷플릭스다. 그런 점을 두고 웬 호들갑이냐는 핀잔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총감독을 비롯해 주요 제작진, 작곡가, 가수, 성우 등이 케이팝 관련 한국인들이거나 한국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구나 배경 자체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이고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다. 어렸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총감독 매기강의 인터뷰가 매우 흥미로웠다. 반가운 마음에 여러 차례 영화를 돌려보면서 몇 가지는 내가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노래, 도깨비, 민화였다. 랩이 중심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노래로 전달하는 방식의 철학, 악귀로 등장하긴 했지만 한국 도깨비들의 수많은 이미지, 까치호랑이를 잘 잡아내 보조 캐릭터로 활용한 한국 민화가 그것이다. 셋 다 사실은 내 전공과 깊이 관련돼 있다. 내가 단행본이나 기타 저널에서 오랫동안 거론해 온 장르이기에 그렇다. 분석이든 전통문화 담론 창출이든 내가 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다. 기회를 만들어 장르별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한국민화 까치호랑이에 대해 다룬다.
호작도(19세기). 출처 아모레퍼시픽 조선민화전 |
‘케데헌’의 한국문화 오마주, 까치호랑이의 내력
쏟아지는 영화평을 보면, 기와집, 남산타워, 북촌거리 등 한국을 상징하는 여러 장소가 특정되는 점을 주목하는 듯하다. 김밥과 곰탕, 한약, 심지어 오뎅 무침과 숟가락들까지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다. 고증을 확실하게 했다는 뜻이겠다. 더욱 내가 주목한 것은 한국 민화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한 까치호랑이다. 이름을 왜 ‘더피’로 지었는지는 확인하지는 못했다. 영화에서는 ‘사자보이즈’의 리더 ‘준우’의 보조 캐릭터로 등장해 아이돌그룹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와의 교신을 담당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너무 많은 정보를 늘어놓기는 그렇지만, 호랑이가 입에 물어 전달하는 편지라든가 까치가 쓴 갓이라던가, 까치의 눈이 세 개라는 점들이 모두 상징적이다. 면을 달리해 저승사자와 도깨비를 다룰 때 설명하겠지만, 전통적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역할의 방상씨(方相氏)는 눈이 네 개다. 까치가 저승사자의 갓을 쓰긴 했지만, 오히려 휴대폰 카메라의 눈과 닮아있기 때문에 눈 밝은 기업이라면 틀림없이 관련 홍보로 활용할 것이다. 호랑이의 이미지는 수많은 까치호랑이 민화 중에서 고른 듯싶다. 영화의 캐릭터와 매우 유사한 까치호랑이 그림이 실제 있기 때문이다. 주로 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傳令者)로 그려진다. 하지만 본래의 까치호랑이 그림은 벽사(闢邪)와 길상(吉祥)의 기능을 하는 그림이다. 호랑이는 나쁜 것을 내쫓는 벽사를 담당하고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상을 담당한다. 한국민화학교 교장 정병모의 ‘민화는 민화다’(다할미디어, 2017)에 의하면, 호랑이는 부패한 관리를 대표하고 까치는 민초를 대변한다. 그러면서 민화 까치호랑이의 진정한 주인공은 호랑이가 아니라 까치라고 말한다. 일반 민중들이 기득권층을 조롱하거나 나무라는 이미지다. 이 해석은 조선 후기 도도하게 전개된 근대정신의 발아와 길항에 가 닿는다. 어디 민화뿐이겠는가? 근대를 딱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인의 발견’이라고 하듯이, 전근대기의 이념적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든 수많은 장르의 예술과 학문이 근대적 자아로 재편되는 맥락에서 까치호랑이 그림이 재구성된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우스꽝스런 모양으로 만든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명나라 길상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무시해도 될만한 주장이다. 풀어 말하면 논문이 되겠기에 지면상 짧게 언급하면 사실 까치호랑이의 시원은 전국 각 사찰의 산신각에 모신 산신도에 있다. 흰 수염을 늘어뜨린 산신 아래 늘 엎드려 복종하는 호랑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또한 벽사와 길상의 메신저다. 호랑이는 액을 내쫓는 벽사의 역할을 하고 산신은 종교적 신격들과 인간을 매개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이것이 조선 후기 민화로 이어지면서 호랑이만 그대로 둔 채 산신을 소거시키고 그 자리에 까치를 놓게 된다. 산신이 종교적 신성을 매개하는 존재였는데 민간으로 오면서 소소한 복음을 전해주는 메신저로 기능이 바뀐 것이다. 이것이 내가 분석하고 있는 까치호랑이 그림의 전통적인 맥락인데, 영화에서는 ‘더피’라는 이름을 내세워 민화의 까치호랑이를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주인공들의 피부에 나타나는 천형으로서의 낙인과 더불어 감독이며 제작진들이 가진 백인사회 내의 유색인 콤플렉스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 부분은 차차 풀어 말하기로 하자. 어쨌든 더피는 한국 민화의 까치호랑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해 인류의 웃음과 공포, 사랑과 수호의 경계를 지키는 캐릭터로 재탄생하게 됐다. 관심 있는 분들은 까치호랑이와 농악의 대포수를 견줘 설명한 몇 년 전 내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남도인문학팁
기초예술 진흥, K컬쳐의 뿌리를 다져야 K강국의 미래가 있다.
“K컬쳐의 뿌리가 우리 문화유산에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에 집중하겠다.” 국민주권 정부 첫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한 유홍준 교수의 일성이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했으니 당연한 포부이기도 하겠지만, 이즈음 오픈런(상영, 공연 따위를 폐막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무기한 연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국박 뮷즈샵 풍경이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의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판매하던 상품 중 ‘까치호랑이’ 배지가 순식간에 다 팔려버린 것이다. 영화 공개 뒤 3주 만에 2만개 넘게 팔렸고 온라인 판매도 품절이어서 지금 예약을 해도 연말이나 돼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사자보이즈’의 갓 상품도 다르지 않다. 어디 굿즈 뿐이겠는가. 기초예술, 즉 K컬쳐의 뿌리를 주목해야만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케이팝의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한 호랑이 더피와 까치가 민화 까치호랑이의 토대 없이 어찌 나왔겠으며 본래 구상했던 오컬트 드라마의 감성이 K샤머니즘이나 설화적 토대가 아니었으면 어찌 나왔겠는가. 글로벌 AI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기초과학 교육이 필요하고 기초 인문교육이 필요하듯이 장차 세계를 뒤흔들 K컬쳐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초예술 교육과 진흥이 선행돼야 한다. ‘케데헌’의 성과를 면밀히 따지면, 미국과 자본이라는 틀 외에 오로지 한국문화의 바탕이 토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청년예술인 지원사업 ‘배냇소 프로젝트’ 같은 기반 다지는 작업이 긴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박물관에 이어 장차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국악원, 나아가 민화 관련 단체나 공간이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될 것이다. 한국의 도깨비와 저승사자 이야기, 오로지 노래로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자 하는 한국판 노래하기 철학이 주목받는 시대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