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쿠폰 색깔 논란…공직사회 검증 체계 ‘도마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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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소비쿠폰 색깔 논란…공직사회 검증 체계 ‘도마 위’
기획 단계부터 문제 인식 못해
시·자치구·행안부, 매뉴얼 부재
14개 시도 금액 표기 ‘소득 노출’
인권행정 강화 가이드라인 시급
  • 입력 : 2025. 07.24(목) 18:04
  •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
광주광역시가 1차 지급한 민생회복 쿠폰 카드. 독자 제공
광주광역시가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가 지급 금액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제작돼 소득 계층을 색으로 구분했다는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번 사안은 단순한 지역 실수나 행정 착오를 넘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위탁기관 등 행정 전반의 인권 감수성 부재와 검증 체계 실종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24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1일부터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선불카드 형태로 배부하기 시작했다. 일반 시민 18만원, 차상위·한부모 가정 33만원, 기초생활수급자 43만원 등 지급 금액에 따라 카드 색깔도 붉은색, 녹색, 남색으로 나뉘었고, 카드 전면에는 지급 금액이 명시됐다. 이로 인해 수령자의 소득 수준이 카드만 봐도 식별 가능한 구조였다.

카드 디자인은 지난 6월 광주시 경제정책과와 광주은행 간의 실무 협의를 통해 결정됐고, 이후 경제창업국장의 결재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보고·승인됐다.

7월 초부터 본격 제작에 들어간 카드는 자치구와 동 행정복지센터에 전달됐고, 21일부터 시민들에게 지급되기 시작했다.

카드 기획부터 디자인, 승인, 제작, 배포까지 두 달 가량에 걸친 행정 절차가 진행됐지만, 색상 차등이나 금액 표기 방식에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나 문제를 제기한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선불카드 지급이 시작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색깔만 봐도 누가 기초생활수급자인지 보인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부터다. 시민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문제의식이 제기되기 전까지는 행정 시스템 내부 누구도 이 사안을 인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논란이 확산하자 광주시는 긴급 브리핑을 열고 공식 사과와 함께 지급 중단·디자인 교체 등 대책을 발표했으나 이미 지난 22일 오후 11시 기준 6만1998건(168억원 규모) 이상이 발급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조치”라며 질타하고 시정을 지시하고 나섰다.

다만 이번 사안의 최종 관할 부처이자 카드 디자인 승인 주체였던 행정안전부에 대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국비 90%(12조2000억원), 지방비 10%(1조7000억원) 등 총 13조9000억원 규모의 사업으로, 사실상 중앙정부의 예산과 행정 지침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다. 실제로 각 지자체가 카드 디자인을 선택하고 신청하더라도 행안부의 협의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그러나 행안부는 구체적인 디자인 매뉴얼 없이 자율적 설계를 허용했고, 광주시의 색상 차등 지급안에 대해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았으며 오히려 논란이 확산된 이후에야 전수조사와 후속 조치에 나서는 ‘사후 대응’에 그쳤다.

광주시에 따르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자체별 지급수단 현황 파악 결과 17개 시도 중 선불카드 형식으로 지급하지 않는 대구와 인천을 제외하고 서울만 선불카드에 금액을 미표기했을 뿐 나머지 지자체(부산,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모두 선불카드에 대상별 금액을 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색상까지 구분한 곳은 광주가 유일했지만, 기본적으로 금액을 드러내는 설계 구조는 전국적으로 유사하게 적용된 셈이다.

지역의 한 행정 전문가는 “정책 설계·승인 단계에서부터 인권 관점이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보다, 아무도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매뉴얼 부재와 점검 체계의 미비가 결합되면서, 사실상 전국적으로 유사한 문제가 재현될 수 있는 구조였다”며 “인권 행정 강화를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수립과 점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