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국가의 1000년 내다보는 ‘공동체 감수성 회복’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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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국가의 1000년 내다보는 ‘공동체 감수성 회복’ 필요한 때
451 배냇소 프로젝트
  • 입력 : 2025. 06.19(목) 17:41
1972년 진도에서 장원 머슴을 일소에 태워 축하하는 남도들노래 길꼬냉이 장면. 이또 아비토 촬영
소는 누가 키우나? 처음 들으면 그냥 웃자고 던지는 농담 같지만 곱씹을수록 이 말엔 우리 사회의 핵심 질문이 담겨 있다. 풍자와 자조가 섞인 유행어이기도 했다. 이상은 좋은데 현실은 누가 책임져? 기획은 좋은데 정작 실무는 누가 해? 다들 말은 잘하는데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냐고? 대개 이런 뉘앙스다. 이 말이 자조적으로 유포되면서 책임회피형 농담이나 허탈함을 표현하는 풍자어가 됐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이 말은 매우 구체적인 질문이었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기본 시스템이기도 했다. 농사일에 절대적인 것이 소였다. 소를 사람과 다르지 않은 인격체로 대한 사례들이 무수하다. 돌봄과 책임의 상징이기도 했다. 나는 지난 2021년 1월8일 본 지면을 통해 씨압소와 배냇소의 내력에 대해 소개했다. 신축년을 맞이하는 새해 칼럼의 성격이었다. 오늘 그 일부를 다시 인용해 배냇소의 내력을 살피기로 한다. “씨압 갖다 키워서 새끼 낳먼 쉬앙치 받기도 허고, 아니먼은 어린 쉬앙치를 가져다 한 2년 정도 키워서 고놈을 팔아갖고 주인하고 절반썩 돈으로 나누기도 허고 그래. 돈으로 나눈 것보고 ‘바넷소’라고 그러고...” 이기갑 외(‘새로 발굴한 방언’, 한국방언학회, 2014)이 정리한 ‘씨압소’ 용례다. ‘씨압소’의 표준말은 ‘배냇소’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남의 소를 송아지 때 가져다가 길러서, 다 자라거나 새끼를 낳으면 원래 주인과 그 이득을 나눠 가지기로 하고 기르는 소라고 풀이해 뒀다. 제주에서는 ‘벵작쉐’ 혹은 ‘멤쉐’라고 한다. 유사한 형태로 ‘반작소’가 있지만 배냇소와는 좀 다르다. 경남에서는 ‘배내이세’ 혹은 ‘배내기소’라 하고, 경북에서는 ‘배미기’, 또 일부 지역에서는 ‘어울이소’라고도 한다. 진도에서는 ‘어시소’, 영암에서는 ‘도짓소’ 보성에서는 ‘배냇소’ 곡성에서는 ‘씨압소/갈라먹기’ 등으로 부른다. 남도지역에서는 ‘씨압소’가 보편적으로 통용되기에 이를 준거 삼아 얘기해 왔지만, 배내옷 등의 용례가 긴요하기에 통칭해 배냇소로 부르기로 한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 가장 먼저 입는 옷을 배냇저고리라 한다는 점에서 이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1972년 진도에서 한 아이가 소 풀을 뜯기러 가고 있다. 이또 아비토 촬영
소는 누가 키우나? 배냇소 프로젝트와 청년예술인 생애주기 지원 정책

열네 살이 되면 배냇소를 부릴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입학생부터 그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무상으로 분배받은 송아지가 생후 6개월이 되면 ‘목매기’ 즉 목에 고삐 걸이를 한다. 이후 뿔이 나오고 생후 1년여 후에 코뚜레를 뚫어 채운다. 생후 13달 정도 되면 새끼를 밴다. 임신 기간이 280일로 사람과 거의 같으므로 생후 2년이면 새끼를 분만하게 된다. 이 새끼를 분양받은 청소년이 소유하고, 어미소는 분양해줬던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청소년이 16세가 되면 자기의 소를 갖게 되는 것이고, 혼인할 수 있는 자격이랄까 성년으로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청년창업자금 정도로 퇴화했지만, 절대 인구가 농업에 종사할 시기만 해도 통과의례와도 같은 중요한 일이었다. 나랏일을 맡아 하는 이들이 주목할 지점이다. 전통사회의 배냇소 시스템은 품앗이나 계 등 대동사회의 기반이 되는 자생 제도였다. 생애 초기 자산을 무상 혹은 조건부로 분배해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는 제도였다고나 할까. 씨앗 같은 자산을 나누고 그것을 돌보는 인내를 요구하며, 공동체의 신뢰로 성장과 책임을 교환했던 자생적 시스템이었다. 오늘의 문제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2025년 대선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있다. 세대 갈등, 젠더 혐오, 지역 편 가르기 등의 정서적 분열 말이다. 일회적인 선거전략을 넘어 이게 고착되는 게 아닌가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 정서의 파편화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니 말이다. 그래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외과수술처럼 당장 대응해야 하는 측면과 오랫동안 끊임없이 대응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국가가 더 이상 정치적 이익을 위한 감정 소비를 용납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이것이 급기야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정서를 통합하고 미래적 비전을 형성할 수 있는 문화예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히 K-컬쳐의 확산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문화융성의 시대 아니던가. 먹고 사는 문제가 외과수술 같은 처방이라면 청년예술 지원 정책은 국가의 100년 혹은 100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마치 한의학 처방 같은 것이다.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대동 세상을 꿈꾸었던 선대들을 상고한다. 현재 문체부 및 지방문화재단 중심의 청년예술인 지원 정책은 대부분 성과 중심의 공모 지원에 치우쳐 있으므로 생애 초기 자산 부족, 지속 가능한 창작공간 미확보, 장기 프로젝트 수행 불가능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안정적인 청년예술 지원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국민 정서 기반의 갈등 완화 및 공동체 감수성 회복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기초학문 보장이 필요하듯이 기초예술 기반 창의 인력의 고용 및 산업연계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K-컬쳐의 지속 가능한 구축 및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을 도모할 수 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비전에 관한 얘기는 기회가 되면 풀어 말하겠다. 배냇소형 청년기초예술 자산제 도입을 통해 문화국가 대한민국의 정신적 체질을 재구성하는 세상으로 거뜬거뜬 나아가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



남도인문학팁

배냇소 프로젝트와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소득제, 청년문화예술 생태계 구축 정책까지

한 나라의 문화정책은 단기성과가 아니라 백년지대계로 접근해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적 갈등과 정서적 분열, 심지어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까지 제반 문제들이 이러한 문화적 근력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예술지원 사업은 넘치지만 모두 경쟁 공모 중심이고 결과 중심 평가만 존재한다. 실험은 위험하고 실패는 인생 탈락이며 지속성 없는 정책은 창작자를 고립시키고 만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쳇말로 소를 키울 청년들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청년문화예술 생태계만 언급하지만, 배냇소 정책은 K-컬쳐의 확산과 융성을 부르짖는 법고창신의 국가정책 전반으로 확대할 만하다. 전통분야로는 국가유산청의 정책, 넓게는 문체부 정책 전반에 해당할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돼 K-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배냇소 정책을 포섭하는 국가백년지대계 청년문화예술 생태계가 구축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초예술, 공공문화, 청년예술인 지원을 구조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교육에서 기초학문이 나라의 정신을 담보하고 재구성하듯이, 문화정책의 기초는 공공성과 창의성 기반의 기초예술 생태계를 재구성할 수 있다. 배냇소 정책은 공동체가 미래 세대에게 자산을 무상 분배하고, 노동과 책임을 통해 자립 기반을 형성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성숙과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발판으로 기능하게 된다. 유럽의 클래식이나 한국의 판소리처럼 기업 메세나와 패트런(후원자)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국가 부담도 줄어든다. 기초자산과 공동체 환원이라는 청년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이미 성남시와 경기도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기본소득 정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논의되었던 베이비 본드(Baby Bonds)의 씨앗 자금이나, 이보다 훨씬 전에 고안됐던 영국의 아동신탁기금(CTF), 싱가폴의 에듀세이브(Edusave)기금,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등 벤치마킹할 대상들이 많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던 김구의 유훈을 실천할 때다. 씨를 나누면 숲이 자라고 배냇소를 나누면 나라가 기운생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