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당대의 역사적 맥락으로 읽어내는 이야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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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당대의 역사적 맥락으로 읽어내는 이야기의 ‘본질’
442. 두 ‘여울물소리’
  • 입력 : 2025. 04.10(목) 17:25
구룡계곡 여울물. 네이트뉴스 이완우 촬영
두 여울물이 있다. 하나는 소설로 쓰인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노래로 불린 이야기이다. 먼저의 이야기는 황석영이 ‘여울물소리’라는 이름으로 썼다. 나중의 이야기는 황호준이 같은 이름으로 창극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말 광주시립창극단 창단 35주년 브랜드작품으로 공연됐으니 4개월여 지났나? 하지만 소설 속 장별 제목이기도 했던 ‘여향(餘響)’의 기운이 시방도 내 몸에 남아 있다. 황석영이 말하고자 했고, 황호준이 노래하고자 했던 웅숭깊은 내력 탓일 것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남고 어떤 것이 사라지나, 다른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만든 이들은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설 ‘초판 작가의 말’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 3대 구라 중 한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대로 입담이 걸쭉하다 못해 절절하다. 나는 오랫동안 황석영이 우리나라 최초 노벨상 수상자이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장길산’에서부터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등 대부분 우리 문학사의 기점을 이뤘다. 구술담을 소설로 재구성한 이야기 역사의 맥락 때문이다. 한강 작가가 훌쩍 성장해 뛰어넘어버린 행간에 한승원이며 황석영이 있었음을, 아니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늘 생각한다. 입으로 전해진 구술담, 그림으로 그려진 이야기, 노래로 불린 이야기 등 이야기의 본질을 어떻게 당대의 역사적 맥락으로 읽어내는가가 나의 관심사다.

황석영 소설 ‘여울물소리’ 표지.
이보따리 이신통과 여울물소리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 박연옥이 사랑한 이신통은 이야기꾼 즉 전기수(傳奇叟)이다. 전기수는 조선 후기 소설이 유행할 적에 주로 한글 소설을 읽어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이었다. 이들이 점차 강담사, 강독사, 강창사 등으로 분화하거나 혹은 연극이나 음악 등 예능을 습합해 재창조한 것이 초기 판소리다. 이야기꾼 이신통의 행적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역시 이야기꾼이었다. 이를테면 동학을 천지도로 바꿔 쓴 것처럼, 실재 인물은 조금씩 바꾸거나 몇몇 인물을 유형별로 합쳐 놓거나...”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이신통을 단순한 이야기꾼이라고 하겠는가. 이신통을 최보따리 최시형의 페르소나 ‘이보따리’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이 박연옥처럼 보이지만 화자(話者)일 뿐, 사실은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이신통이거나 소리꾼들이거나 아니면 그 모두이다. 왜 그럴까? 여울물은 물여울이다. 강이나 바다 따위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왜 물살이 세게 흐르는가? 흘러가는 길에 온갖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여울물은 사이사이를 비집고 흘러 대하에 이르고야 만다. 이게 황석영이 주목한 지점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세하게 묘사했다. 개울물에서 샛강으로 다시 큰 강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여울물소리는 사실 동학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대하를 이룬 것에 대한 은유다. 소설 장길산과 더불어 이를 분석했던 정승진은 ‘역사소설이 꿈꾸는 민중의 유토피아와 그 현재성’(조선시대사학보 69)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울물소리는 혁명 이후의 여향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실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설령 민중의 혁명운동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당대의 민중들은 동학농민전쟁의 저 처절한 실패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으며, 해방·혁명의 메시지가 언젠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이 분석에 의하면 ‘장길산’의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 갱신이 ‘여울물소리’를 낳았다. 내 분석에 의하면 소설 ‘여울물소리’의 세계관이 창극 ‘여울물소리’를 낳았다. 이야기가 전기수에서 강창사로 다시 판소리로 변화했듯, 동학 이야기가 창극을 표방한 음악극 실험으로 재구성됐다는 뜻이다.

2024년 창극 ‘여울물소리’ 포스터.
창극 여울물소리의 여향(餘響)

‘여울물소리’를 창극무대로 올린 황호준은 ‘연출의 변’에서 연옥의 극 중 대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백성들이 저렇게 버젓이 살아있으니 죽은 이들의 노고는 잊혀지지 않는 법이란다. 지금 당장은 니 아버지가 꿈꾸었던 세상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저 작은 물길이 모여 다시 강물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란다.” 소설과는 다르게 연옥과 신통의 서사로 압축된 창극은 기왕의 창극과는 다르다. 작곡 및 연출의 변을 보자. “판소리 어법의 작창을 통한 소리들을 곳곳에 배치해 창극의 양식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지면서도 소리 배우들의 가창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노래들을 배치했다. 가창 음향의 다양한 색채를 구현하는 것으로, ‘도창’을 중창으로 편성했다. 인물들의 정서적 질감을 고려한 것이다...” 창극은 전통적인 판소리나 그 형식을 빌려 만든 가극(歌劇)을 말한다. 서양의 오페라에 견줄 수 있다. 양식이나 특성에 따라 노래극, 뮤지컬, 음악극 따위의 이름을 붙인다. 조동일은 ‘구비문학의 세계’(271쪽)에서 창극이든 영화든 혹은 뮤지컬이든 판소리를 개작하려는 시도는 어느 것이나 판소리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의식에 변질이 있고 민족예술을 파괴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기수나 강창사(초기 판소리꾼)라는 이야기꾼의 맥락에서 상고하면 눈높이가 달라진다. 판소리 자체가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음악 양식이라는 나의 판소리 정의에 토대해서도 그렇다. 황호준이 실험했듯, 음악을 각각의 캐릭터에 부응하는 수법으로 혹은 문법으로 특히 이야기의 향방에 맞춰 설계했음을 주목한다. 음악에 앞서 이야기를 고려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창극보다는 음악극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 듯싶다. ‘소리 배우들의 가창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고안됐기 때문에 이미 창극을 넘어선 작품이다. 현대적인 음악극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더욱 다양한 음악적 표현들을 통해 극의 감동을 배가시키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황석영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래서 여울물처럼 흐르고 흘러 도도하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이야기의 본질과 각양의 연행 추이를 살피는 나로서는 더 무슨 욕심을 내겠는가.



남도인문학팁

빛의 혁명단 키세스와 <여울물소리>의 여향(餘響)

제목이 ‘여울물소리’인 것은 이신통이 전해준 동학 이야기를 넘어 역사의 흐름, 기억의 흐름, 여향처럼 파동을 일으키는 풍경을 상징한다. 바윗돌과 자갈들에 부딪혀 이리저리 흔들리며 흐르는 여울물은 시대의 부침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민중들의 삶과 정신을 보여주는 메타포다. 그래서다. 윤석열 탄핵 와중에 키워드로 떠오른 것이 키세스 혁명단과 빛의 혁명단이란 이름이었다. 남태령대첩은 또 어떤가? 소설에서는 우금치전투에서 이신통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상황이 묘사된다. 소설과 다르게 창극에서는 이신통의 아이를 통해 하늘의 도(道)가 전해질 후대를 기약한다. 이 지점이 내겐 각별하다. 아버지 황석영과 아들 황호준의 말하지 않는 말, 이야기의 여향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모두 여울물소리의 은유에 부합한다. 아니, 이들의 이야기가 여울물소리다. 키세스혁명단과 빛의 혁명단, 이들의 남태령대첩은 어쩌면 이신통이 다 하지 못한 이야기 혹은 이신통의 아이가 자라나 지은 새로운 이야기일 것이다. 한강의 언설을 다시 빌리자면, 우금치가 2025년의 광화문과 여의도를 지켰다고나 할까. 지금 내게 남아 있는 여향의 진원지는 창극 여울물소리와 소설 여울물소리로, 장길산으로, 혹은 더 이전 사람이 중심되는 살만한 세상을 꿈꾸었던 이야기꾼 전기수들의 이야기로 거슬러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