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광주군공항 및 호남권 발전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광주전남사진기자단 |
지난 20년간 각 정권이 내놓은 호남 관련 주요 공약은 △공공기관 이전 △국책 SOC 확대 △미래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실행력은 기대에 못 미쳤다. 문재인 정부의 ‘AI 메가시티’ 구상은 국립 AI연구소가 서울 양재에 설립되며 수도권 중심으로 귀결됐고, 이명박 정부의 ‘남해안 시대’ 비전도 24조원 규모 계획 중 실제 집행은 약 5조원(실행률 22%)에 그쳤다.
공공기관 유치 실적도 아쉽다. 2023년 NST 통계정보 기준 수도권에는 국책 R&D기관이 42곳, 대전·충청권 17곳, 대구·경북 14곳이 있지만 광주·전남은 단 4곳(전자통신연구원 호남센터·생산기술연구원 서남본부·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광주센터·노화연구시설)에 그친다. 현재 논의 중인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싸고, 호남에서는 ‘1차 때 혜택을 받았다’는 논리가 작용해 이번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역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는 지역 격차를 구조화하는 대표적 제도로 지적된다.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 종합평가 자료집(2023)’에 따르면 2019~2023년 예타 통과율은 광주 약 30%·전남 약 10%였다. 같은 기간 영남권은 40%대를 기록했다. 경제성 중심의 평가 기준이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고위직 인사에서도 지역 불균형은 뚜렷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장·차관·수석 39명 중 호남 출신은 단 1명뿐이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전남 출신은 단 1명에 그쳤다. 최근 10년간 호남 출신 중앙부처 고위직 비율은 평균 9.4%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재명 정부 들어 수석·실장 11명 중 5명, 1기 내각 장관 후보자 19명 중 7명(36.8%)이 호남 출신으로 발탁돼 일정 부분 균형을 맞췄다.
문제는 지역에 유치된 기관조차 주요 예산과 정책 결정 권한은 여전히 중앙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광주 AI 집적단지는 실증과 데이터 가공 등 지역 실행 역할에 머무는 반면 R&D 기획 및 평가, 주요 예산 배분은 중앙부처가 주도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운영 구조는 지역이 전략적 중심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활 인프라 격차도 여전하다. 전남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이며 광주는 대형 쇼핑몰·국책병원·복합문화시설 유치에 번번이 실패해왔다. 2020년 이후 전국 각지에는 코스트코·스타필드 등이 잇달아 들어섰지만, 광주는 단 한 곳도 유치하지 못했다. 그동안 광주에서 가장 큰 복합쇼핑 공간은 백화점 단독 매장이나 충장로·상무지구 상권 정도에 불과했다.
이제야 최근 ‘더현대 광주’와 ‘신세계 광주터미널 복합시설’이 2028년 전 개점을 목표로 추진 중이지만, 아직 착공 전 단계다. 개점 시기도 유동적이고 유통시설 중심 개발이 지역 소비 구조나 중소상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책 논의도 부족하다.
광주시민단체인 내란청산·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은 지난 4월 민주당 호남권 경선을 앞두고 “호남뿐 아니라 수도권 외 지방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며 “지역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호남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실이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부처 본청의 서울 집중, 수도권·영남권 출신 편중, 폐쇄적인 예산 심의 구조 등이 지역 소외를 반복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모 사회학과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핵심 국정 기조로 내세우고 있지만, 핵심 시설이 여전히 수도권에 몰려 있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지역 청년층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공공기관 이전의 장점 중 하나는 지역 인재 채용 기회다. 호남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실질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락 광주전남정치개혁연대 공동대표는 “지역 균형발전은 특정 지역에 혜택을 주는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이제는 환심이 아니라 실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단순한 이전이나 지원이 아니라 권한과 예산·실행 로드맵까지 명확히 갖춘 중앙정부의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경준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회장도 “광주·전남은 전국 평균에 비해 경기 회복 속도가 더디고,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며 “AI·미래 모빌리티, 재생에너지, 교통망 확충 등 새 정부의 호남 특화 사업이 본격화된다면 지역 기업에 성장 발판이 될 수 있다. 단, 이를 체감할 수 있으려면 중소기업 맞춤형 정책 접근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