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칸토 오페라 중 가장 걸작으로 손꼽히는 ‘노르마’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2022-23 시즌 실황 장면.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벨리니(Vincenzo Salvatore Carmelo Francesco Bellini, 1801~1835)가 작곡한 벨칸토 오페라 <노르마-Norma, 1831>다. 칼라스 하면 <노르마>, <노르마>하면 칼라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금의 추앙받는 칼라스를 만들어 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르마>는 20세기 중반 세기를 양분하며 엄청난 경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소프라노 테발디와 칼라스와의 구도를 허물며 테발디를 제치고 최고의 프리마돈나로 칼라스를 오르게 한 오페라이다.
도니제티와 함께 벨칸토 오페라로 쌍벽을 이루던 벨리니(Vincenzo Salvatore Carmelo Francesco Bellini, 1801~1835)가 작곡한 <노르마>는 1831년 초연된 작품이다. 벨리니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올려진 이 작품은 화폐가 유로로 통용되기 이전 단위가 리라일때 5000리라 지폐에 벨리니의 초상화와 함께 새겨진 유일한 오페라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 노르마 역에 조안 서덜랜드와 아달지사역의 메조 소프라노 마를린 혼.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이탈리아 화폐에 등장할 정도로 벨리니의 <노르마>는 벨칸토 오페라 중 가장 걸작으로 손꼽히며 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탈리아 오페라 중에서 단연코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작곡가 벨리니는 “만일 내가 바다에 빠진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오직 하나 <노르마>는 건지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한, 이탈리아 오페라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바그너 역시 1837년에 이 오페라를 지휘하고 대본과 음악에 대해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작품이라며 호평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부터 <노르마>가 자주 극장에 올려지지 못했던 것은, 이전의 개재했던 벨칸토 오페라의 한계, 특히 프리마돈나에 편중된 작품이다 보니 곡의 극한 난이도와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두로 점차 쇠퇴한 영향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노르마>는 오페라의 여주인공이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음악에 필사하듯이 치밀하게 표현해야 하며, 또한 벨리니가 이러한 묘사를 당대의 최고 소프라노였던 주디타 파스타의 목소리와 연기 스타일에 맞춰 작곡하여 이를 연주하기에 다른 소프라노들은 많은 부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페라 ‘노르마’에 출연한 마리아 칼라스의 커튼콜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밀라노에서의 초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노르마 역의 주디타 파스타의 피곤한 목 상태로 난조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주부터는 점차 긍정적인 평을 내기 시작했으며 네 번째 연주에서 드디어 엄청난 찬사가 쏟아지는 대성공을 이루게 된다. 첫 시즌 내내 40회 공연이 이루어지고 이후 전 유럽 주요 극장에 올려지며 벨리니는 당시 베르디 못지않은 명성을 얻게 되고 1887년 베르디의 <오텔로>를 이전까지 이탈리아 최고의 비극 오페라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벨칸토 오페라의 쇠퇴와 함께 잊혀가던 <노르마>는 마리아 칼라스를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로 등극시킨 1951년 라 스칼라 극장 연주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인 프랑코 제피렐리는 “노르마 역으로 칼라스는 오페라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한계에 도달했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이 때문이었을까? 칼라스도 그녀가 찬사를 받았던 또 다른 작품인 푸치니의 <토스카>의 토스카 역이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비올레타 역보다 노르마 역을 가장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무대에 오른 ‘노르마’ 공연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
<노르마>는 알렉상드르 수메 및 루이 벨몬테의 비극 ‘노르마’를 원작으로 펠리체 로마니의 대본으로 1831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지배를 받는 고대 프랑스 갈리아 지방의 여사제 이름으로 사랑을 위해 조국을 버린 여인 노르마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리고 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 지방의 여사제 노르마는 점령군 수장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지만, 그의 배신으로 삼각관계에 빠지고 시기와 질투, 복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성 모독의 여론 재판에 내몰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전에 몰래 침입한 폴리오네가 잡혀서 노르마 앞으로 끌려오는데 노르마는 이때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이들 앞에서 정결의 서약을 어긴 여사제가 자신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화형대에 오른다. 이 모습을 본 폴리오네는 그녀의 고귀한 희생에 감동해 함께 자신도 자발적으로 화형대로 향한다. 그리고 노르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부탁하며 이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오페라 <노르마>는 원작과 다른 결말을 지녔다. 대본가 로마니는 원작인 수메의 희곡 ‘노르마’에서 여주인공 노르마가 광란에 빠져서 그녀의 아이 중 하나를 살해한 다음 다른 아이와 함께 절벽을 뛰어내린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삭제하고 대신에 숭고한 자기희생이라는 거룩한 결말을 삽입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대본가 로마니에 의해 노르마는 광란의 여인이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해 그가 내뿜었던 시기와 질투를 삭제시키고 사랑하는 남자와 백성들을 감동하게 하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게 했다. 한편으로 반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이 작품을 통찰해보면 여주인공 노르마는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노르마는 권력을 가진 여성이면서 누군가의 연인이자 엄마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화형에 처한 것은, 사회가 편향적으로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와 종교의 통념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노르마>를 향한 소프라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한때, 너무 어려운 테크닉과 표현 때문에 실패라는 두려움이 <노르마>를 침묵의 강에 잠들게 하였지만, 20세기 마리아 칼라스를 통해 부활한 이 작품은 이제 프리마돈나로 등극하기 위한 소프라노들의 필수 작품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극한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성악가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난이도를 오선지 위에 음표를 자유롭게 날게 하여 소프라노를 떨게 했다. 그리고 여기에 벨리니는 한 여인의 갈등과 고뇌, 그리고 광란에 가까운 질투와 시기와 이 모두를 사라지게 하는 희생을 연기해야 하는 변화무쌍한 표현으로 극이 요구하는 소리를 넘어, 배우로서 또 하나의 새로운 특별한 소프라노 장르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노르마>를 소화해 낼 수 있는 특별한 소프라노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노르마>를 통해 진정한 프리마돈나가 되기 위한 필사의 노력과 그들의 경쟁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칼라스의 <노르마>는 스튜디오 음반 2종, 실황 음반 4종이 있다. 그중 전성기 칼라스의 ‘Casta diva(정결한 여신)’를 들어보고 싶다면 EMI 1960년 제작된 음반을 추천해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녹음은 역사상 칼라스와 지휘자 세라핀이 왜 거장인지 알 수 있는 녹음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