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 부는 바람 |
말로만 듣던 변방의 그 혹독한 겨울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대사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근세의 그 혹독한 가난 때문에 압록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청춘을 바쳐가며 말달리던 그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갔던 그 용사들.
이 모두가 이 변방의 칼바람 앞에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눈물조차 얼어붙어서 흘릴 수도 없었을지도.
중국 쪽 압록강 변의 작은 도시 ‘린지앙(臨江)’에서 이렇게 강바람을 맞는다.
강 건너 보이는 곳은 춥기로 유명한 북한의 ‘중강진’이다.
이른 아침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이쪽 강 위의 얼음판에서는
한 무리가 스케이트를 타기 전 몸 푸는 운동 중이지만
강 건너 저편에서는 아직껏 인기척이 없다.
관심이라 할 것 없지만 그래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노라니
몇 채 안 되는 움막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
내 저절로 몸 안의 온기가 느껴진다.
또 한 사내가 칼바람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다.
주변의 건물들은 철거 중인데 아직껏 의연하게 서 있는 이 누구인가.
중국 공산당 8대 원로 중 한 사람인 ‘천윈(陳雲)’이라는 걸쭉한 인물이었다.
중국 각지에서 마오쩌둥의 모습은 자주 봐 온 터라
이 변방에 무슨 인연으로 그를 세워두게 되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시대가 인물을 만들고, 역사가 그를 기억한다’라는 말처럼
한 인물의 평가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도 그는 인민의 표상으로
이 변방의 매서운 찬바람을 마다치 않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