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백일의 경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이의 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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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백일의 경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이의 시공
379)백일(百日)기도
“갑진년 청룡의 해에 소망들을 담아 백일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백일의 의미를 천기누설하여 준 웅녀가 있다. 곰 동굴의 아가씨가 가르쳐준 대로 행하면 틀림없이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넘게 된다.”
  • 입력 : 2024. 01.11(목) 13:31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는 모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릴 때 기억 중 하나, 친구 어머니가 아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출혈이 심해서였다. 출산이라는 축복이 장례라는 슬픔의 시공으로 일순간 바뀌었다. 사람들이 좁은 돌담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리 마을 유일하였던 한약방 어른의 얼굴도 순흑빛이 되었다. 이 경험이 어린 우리에게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왔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이리라. 삶과 죽음의 시공이 바뀌는 게 사실은 순간이자 찰나라는 것 말이다. 당골들의 분주한 발길이 괜한 마당만 즈려밟는 풍경의 중심, 작은 대나무 가지를 손에 잡고 죽은 이의 이야기에 집중하던 얼굴들이 겹친다. 때때로 겁에 질리고 때때로 의연했던, 불빛 약한 마당 모퉁이의 얼굴들, 어떤 시간들, 거기엔 늘 ‘손대잡이’ 풍경이 선명한 사진처럼 인화되어 있다. 죽은 자의 넋이 대나무를 타고 내려와 여러 가지 까닭을 말해주는 장면들이다. 넋과 육신이 분리된 친구 어머니의 말을 그들이 어떻게 공수하였는지, 지금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저 쏟아지는 졸음을 순간순간 내쫓았던 당골의 외마디 말들과 선율들과 리듬들이 또 다른 기억 안에 버무려져 있을 뿐이다. 상여굿이 또 하나의 축제였던 우리에겐 무덤을 꾸미는 풍경과 곽관(槨琯)도 없이 매장하는 전 장면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다. 그날의 마당과 시간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 이것과 저것을 가르거나 합하는 경계의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아기를 낳을 때, 산모가 제 신던 신발을 댓돌에 거꾸로 벗어두고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산하다 죽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니 산실(産室) 자체가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 어찌 아니하겠는가. 내 친구의 어머니는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이승의 공간으로 다시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어머니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어머니와 생사를 뒤바꿔 이 땅에 온 아이에게는, 삼칠일이나 백일, 돌잔치가 그러하다. 의례 문법으로 말하면 삶과 죽음, 이것과 저것의 정반대 방향이 공존하는 게 전이(轉移)의 시공(時空)이다.



전이(轉移)의 기억, ‘백일(百日)’이라는 시공(時空)의 의미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대문에 금줄을 친다. 이 기간이 지나야 바깥사람들의 출입이 허용된다. 안과 밖을 경계 짓는 금줄과 21일은 리미널 시공이다. 신성한 권역에 왼새끼를 걸어 안과 밖을 경계 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칠일 관련해서는 해야 할 이야기가 많으므로 다음 회차에 따로 다룬다. 이 시공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다. 신을 영접하고(迎神), 모시고(娛神), 보내는(送神) 절차가 모두 이런 구조다. 삼신할미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는 이 전이를 거쳐 이승이라는 시공으로 나온다. 거꾸로 가면 저승이다. 불교의 49재, 유교의 삼년상(만 2년) 등의 설정도 유사하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출생도 마찬가지다. 열 달 동안 어머니의 배 안에 있다가 마침내 이승의 공간으로 나오는 사건을 출생이라 한다. 삼칠일, 백일, 돌 등 크고 작은 전이의 시공이 있다. 전이(轉移)공간, 역(逆)공간 등으로 풀어 말해도 좋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하여 말하면, 내륙과 바다의 중간지대 곧 갱번과 갯벌의 리미널존(Limianl Zone)도 그러하다. 내가 오랫동안 뭍과 물의 교직, 있음과 없음의 전이지대(轉移地帶)라고 말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백일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과정과 기점이 포괄된다. 어떤 무엇이 달라지는 시간이다. 크게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기점이다. 작게는 어떤 다짐이 무르익거나 완성되는 지점이다. 백일기도의 의미가 그렇다. 백일 의미가 수십 가지다. 가장 보편적인 게 백일잔치다. 백일상(百日床)을 마련하여 친척과 이웃을 초대해 성대하게 잔치를 연다. 경계가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백일옷을 입히고 백일떡을 한다. 백일상에는 흰밥, 미역국, 백설기, 수수경단, 송편, 인절미 따위의 음식을 놓는다. 모두 경계를 넘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를 가진 여자 사형수가 아이를 낳은 뒤에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시간을 말하는 경우도 백일이라고 한다. 백일상(百日喪)은, 삼년상(三年喪)을 앞당겨 100일 만에 치루는 경우를 말한다. 백일종제(百日終制), 백일탈상(百日脫喪)이라고도 한다. 백일몽(白日夢)은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이고 백일장(白日場)은 글짓기 대회를 말하는 것으로 백일(百日)과는 상관이 없다. 백일이 부정적으로 다루어진 사례도 많다. 백일기침이라는 백일해(百日咳)는 3~6세의 어린이들에게 걸리는 질병으로 100일 동안 이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일천하는 1815년 3월에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 일세가 파리에 들어가 제정(帝政)을 부활한 후부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여 퇴위할 때까지 약 100일간의 지배 기간을 말한다. 백일개혁은 중국 청나라 덕종 때 변법자강을 목표로 일어난 개혁 운동을 말한다.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이 중심이 되어 1898년 6월에 시작하였으나 그해 9월에 무술정변이 일어남으로써 100일 만에 끝났다. 무술변법이라고도 한다. 백일이 부정적으로 쓰인 사례도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긍정적인 맥락으로 사용한다. 곰 동굴의 신화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백일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이의 시공이다. 내 친구 어머니가 만약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한 시절에 그러하셨다면 거뜬히 전이의 마당을 박차고 걸어 나오셨을 것이다. 매년 새해 다짐하는 일들이 또한 그러하다. 예컨대 누군가 갑진년 벽두를 기점 삼아 백일기도를 시작하였다면, 그 기도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분기점처럼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기도여야 한다.



남도인문학팁

곰 동굴의 백일, 완성을 향하는 백일기도

곰 동굴의 백일에서 배운 바가 많다. 우스갯소리로 호랑이는 담배가 피우고 싶어 동굴을 나왔다고 하지만 곰은 마늘과 쑥을 먹고 버틴 탓에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는 겨울잠을 자고 깨어나는 갱생이라는 의미, 동굴이라는 자궁 모티프, 호랑이와 견주어 생각할 수 있는 음양론의 여성성 등 수많은 함의가 있다. 물론 호랑이와 곰 토템 부족들의 군웅할거와 복속 이야기가 기본이다. 그럼에도 삼칠일, 백일로 이어지는 출생이라는 의미를 톺아보지 않을 수 없다. 백일이라는 전이의 시공을 지나 이승이라는 광명의 세상으로 나오는 사건을 출생의 또 다른 이름 곧 백일이라 호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 유년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리미널 시공으로서의 백일은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경계이자 기점이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의 인식일 수도 있다. 이 경계를 넘지 못한 내 친구 어머니는 저승으로 가셨고, 비극 속에서도 아이는 이승을 향해 걸어 나왔다. 이 땅의 수많은 수험생 부모들이 백일기도를 통해 합격을 기원하는 풍속이 자리 잡은 이유를 상고해보라.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을 통해 불교의 정수를 보여준 사건을 보라. 어는 것 하나 허투루 고안된 게 있겠나. 백일기도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중간지대의 궁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혁명적인 전이의 시공에 든다는 뜻이다. 갑진년 청룡의 해에 크고 작은 소망들을 담아 백일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많다. 석달 후에는 총선도 치러진다. 이상도 높고 꿈도 많을 것이나,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캉유웨이와 량치차오의 백일개혁을 반면교사 삼을 일이다. 내가 말하는 백일은 그런 백일이 아니다. 곰처럼 마늘과 쑥으로 버티며 캄캄한 자궁의 동굴에서 백일을 지내는 인내, 생사 전이의 시공을 가로지르지 않고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다행히 백일의 의미를 천기누설하여 준 웅녀가 있다. 곰 동굴의 아가씨가 가르쳐준 대로 행하면 틀림없이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넘게 된다. 새해 벽두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뜻이 마땅히 그러하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