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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군의 아이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거문고 소리 같기도 하고 가야금 소리 같기도 하였다. 혹은 이 둘을 합쳐놓은 듯한 음색이랄까. 아직 숙달되지 않은 솜씨지만 한 줄 한 줄 뜯고 튕기는 소리를 따라가노라니 2천 년 전 마한의 어느 도읍에 도달한 듯하였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작은북과 토용들을 매단 대형 솟대가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역죄인들이 도망을 와도 잡아가지 못한다는 신성한 공간, 바로 소도(蘇塗)였다. 지금의 광주 신창동, 당시 영산 바다 갯가에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
2024.11.07 17:41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 치부, 사생활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때로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예술로 다양하게 표현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유도하기도, 스스로 치유하기도 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미술사에서도 이야기되는데, 인간의 상처와 연약함을 드러내 예술적 감각으로 유일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인간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 지난 칼럼들의 주인공이었던 예술가로 프리다 칼로, 쿠사마 야요이, 니키드 생 팔, 루이스 브루주아 등도 이에 속한다. 영국 현대미술 작가 트레이...
2024.11.03 18:212024년 10월 10일 우크라이나의 언론에서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다는 주장을 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정보 캠페인이 폭발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이 “실질적으로 러시아 편에 서서 전쟁에 참전했다. 러시아 공장에 노동자를, 러시아군에 인력을 파견했다”라고 주장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1,500명의 북한 특수부대원이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을 타고 10월 8일부터 북한의 청진·함흥·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10월 29일 ...
2024.10.31 16:54“이 서사시 장르의 레퍼토리는 슬픈·평화로운·장난스러운·극적인 장면들이 교차하는 우회적인 이야기로 구성되며, 때때로 소리꾼이 몸짓 연기를 하며 공연한다. 소리꾼의 옆에서는 온몸으로 세계를 맞이하는 ‘고수’와 그의 소리북이 전 우주의 리듬을 바꾸어 놓는다. 줄거리가 펼쳐지는 이동식 무대 ‘마당’이라는 물리적 한계 안에서 공연되는 ‘판소리’는 그 자체로 특정한 표현 ‘공간’을 구성한다. 기후 변화 시대의 예술가들이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전시를 만들고자 하던 중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판소리’, 이 한국 민속의 한 분야는 오늘날...
2024.10.31 16:46우연히 만난 소녀다. 양림동 선교사들 흔적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비어있는 한 낡은 건물 안을 들여다보다가 그곳에 홀로 서 있던 그녀를 보는 순간 사실 좀 놀랐다. 낯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소녀 또한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다소 상기되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이 소녀는 지금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차림인지라 여기가 뭐 분장실이라도 되는가 하고 두리번거려 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은연중 문화적 잠식을 느끼게 하지만, 상상의 나래는...
죄를 면하고자 했다.2024.10.31 16:35‘나는 피가 머리로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다. 가뜩이나 그놈들과 한 차에 통학하면서도 민족 감정으로 서로 멸시하고 혐오하여 지내온 터인데, 그들이 우리 여학생을 희롱하였으니 나로서는 당연한 감정적인 충격이었다. 더구나 박기옥은 나의 사촌 누님이었으니, 나의 분노는 더하였다. 나는 박기옥의 댕기를 잡고 장난을 친 후쿠다를 개찰구 밖 역전 광장에서 불러 세우고, 우선 점잖게 따졌다.’ 박준채(1914~2001) 선생의 회고집 ‘독립시위로 번진 한·일 학생 충돌’의 일부분이다. 박준채는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1929...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10.31 16:29“낱낱의 기어감이 양적으로 쌓이고 쌓일 필요가 없다. 그것들이 기계적 운동의 차원에서 연속적으로 나열됨으로써 비로소 지나감과 넘어감이 생성하는 게 아닐 터이다. 포월을 통해 종래의 운동 개념이 바뀜으로써 역시 바뀌고 부서지는 것이 시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포월의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시간이 생성한다. 이 새로운 시간 속에서는 하나하나의 기어감이 이미 지나감이며 동시에 넘어감이다. 나름대로 이미 일종의 지나감과 넘어감을 견딘다. 하나의 개별성은 매우 느리고도 동시에 빠르다. 거의 제자리에서 머무는 듯하지만, 매우 멀리 간 것과 같고...
2024.10.30 15:55“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이히/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만나니 반가워라 이별을 어이 해/ 이별이 되랴거든 왜 만났든고/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 난다.” 몇 소절의 진도아리랑이 흐른다. 고음반이라 지직거리기는 하지만 비교적 노랫말과 반주악기 소리가 선명하다. 정창관이 제공한 1939년 진도아리랑 SP 음반이다. 음반 표지에는 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그런데 후렴의 끝 소절이 지금과는 다르게 뚝 잘라 하향 종지한다. 처음으로 김소희, 박종기 등에 의해 재구성될 때의 음반이니 이 형태를 진도아리...
2024.10.24 18:16우리는 타이머신과 같은 과학의 힘이라던지 신비한 현상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또한, 마법의 힘을 통해 젊음이나 많은 재화를 얻는 기적을 한 번쯤 상상해 본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기 있는 소재로 자주 소설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예술, 근래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특히 무료한 노년을 보내는 성공한 이들이 묘약이나 마법을 통해 청춘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나 사랑과 관련한 악마의 유혹은 매력적인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악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
2024.10.24 18:15제16차 러시아 카잔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은 2024년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정상회담에는 36개 국가와 6개 국제기구가 대표로 참석했으며, 주제는 ‘공평한 글로벌 발전과 안보를 위한 다자주의 강화’였다. 10월 23일 브릭스 지도자들은 최종 카잔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의 핵심 내용은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세계질서를 위한 다자주의 강화’, ‘세계 및 지역의 안정과 안보를 위한 협력 강화’, ‘공정한 글로벌 발전을 위한 금융 및 경제 협력 심화’,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한 인도적 교류 확대’에 관한 것이...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10.24 16:23남도에서는 장독대를 ‘장광’이라고 한다. ‘장(醬)’을 보관하는 ‘광’이라는 뜻이다. ‘광’의 사전적 의미는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두는 곳이다. 고(庫), 곳간, 곳집 등의 유의어가 있다. 한자말 광(廣)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전적 풀이는 자세하지 않다. 대개는 이 한자말의 뜻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자말 광은 너비, 넓이, 폭 등의 유의어가 있고 일정한 평면에 걸쳐 있는 공간이나 범위의 크기를 말한다. 광과 비슷한 말로 간(間)이 있으나 광(廣)과는 결이 좀 다르다. (間)에는 곡간(穀間), 곳간,...
2024.10.17 17:52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세계의 분열은 커지고 있다. 긴장 고조, 분열, 상황 악화를 초래하는 새로운 다극 세계가 등장하고 있다. 유럽과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제재, 수출 제한, 우크라이나 지원 및 러시아의 행동에 대한 반대를 통해 단결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에서 생존하고 군산복합체에서 지원받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국가들 사이에서 파트너를 찾았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의 비공식 연합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글로벌 사우스는 항상 북반구에서만 개발할 필요는 없는 국제관계 및 전...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10.17 17:53한때 1000명 넘게 살았다. 자연마을이 10여 개나 됐다. 인근 섬지역 물산도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어업협동조합 지점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인구는 반토막 났다. 빈집이 지천이다. 물산도 모이지 않는다. 분기점이 진도대교 개통이었다.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를 잇는 다리가 놓이면서 섬까지 자동차가 드나들었다. 물산은 차에 실려 보내졌다. 낚시꾼도 차를 타고 섬으로 곧장 들어갔다. 울돌목은 바닷물의 거친 숨소리보다 자동차 소리로 더 요란해졌다. 젊은이들은 학교와 일자리를 찾아 대처로 블랙홀처럼 빨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10.17 17:51일본 아스카에 있는 서양인이 백제가 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반가운 일이어서 안내 겸 동행했다. 대표적인 곳들을 거치면서 그의 진지한 눈빛에 놀라다가 익산의 미륵사 터를 찾았다. 참 거대하고 섬세한 백제의 석탑이다. 긴 세월에 온전한 모습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근래의 발굴 작업 과정에서 출토된 화려한 사리장엄구와 그 안에 들어있던 금제사리봉영기로 인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이 모습은 2009년 발굴하기 직전의 자태다. 물론 이 방향에서는 지금 모습...
2024.10.17 10:56이윤선의 남도인문학 416. 문자추상과 한글만다라 “무명의 검객이 칼 대신 큰 붓을 들어 글자를 써 내려간다. 글씨는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기도 하고 거대한 파도처럼 급습해오기도 하며 사막을 내닫는 말처럼 쏜살같기도 하다. 글자를 쓰는 듯한데 글씨가 아니요, 붓을 휘두르고 있어도 붓이 아니다. 때때로 모래판을 그어 내리는 지팡이가 되었다가 적의 목을 베는 예리한 칼이 되었다가 철학의 기운을 뿜어내는 장필(長筆)이 되기도 한다. 알지 못할 차원의 춤과 검객의 도술을 거쳐 마침내 진시황의 용좌에 검(劍)이라는 글자가 걸린다....
2024.10.10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