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정돌이’ 스틸컷. |
‘정돌이의 밥’과 ‘정돌이의 장구’
정돌이의 본명은 송귀철, 14살 가출 소년이다. 어머니의 가출과 죽음, 아버지의 학대 등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내력을 상기하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우여곡절을 거쳐 고려대로 스며들어 형 누나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정경대에 살고 있는 꼬마라는 의미에서 ‘정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이때부터 운동권 학생들과 일거수일투족 생사고락을 같이하게 된다. 고려대 학생들에 의해 양육(?)되는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오죽하면 정돌이 한 명을 잡으면 고대 운동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 시기 정돌이에게 떠오른 가장 큰 관심은 ‘밥’이었다. 형과 누나들이 정돌이만 보면 “밥 먹었니?”라고 묻고 늘 밥을 사 먹였기 때문이다. 정돌이가 고려대에 머물기로 작정한 이유도 밥이다. 영화 개봉과 비슷하게 장편소설로 출판한 김미경의 ‘정돌이’(어나더북스)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오징어볶음 반찬에 김치찌개와 함께 먹는 따뜻한 밥을 포식하면서 귀철은 뜬금없는 결심을 한다. ‘형들한테 잘 보여서 이런 데서 같이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비로소 가난과 학대에서 벗어나 따뜻한 밥 한 끼를 더불어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굶주림에서 벗어나 밥을 포식할 수 있게 된 정돌이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밥만 얻어먹고 자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귀철의 자존감을 북돋웠다.” 이때 정돌이에게 들려온 것이 농악반의 장구소리다. 차차 형들에게 장구를 배우고 시위에 동참하며 화염병 난무하는 실전에 참여한다. 사물놀이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 귀철이가 장구에 몰입하고 임실 필봉농악을 거쳐 사물놀이패 ‘미르’를 창단하게 된 내력이 1987년 봄과 4·13 호헌 조치에 대항해 개헌을 쟁취하는 풍경 속에 무색의 간지처럼 끼어있다. 그래서다. 학교를 다닌다거나 졸업을 한다거나 그래서 고려대인이라고 불리는 정체가 무엇일까? 오히려 정돌이가 14살에 조기 입학해 가장 오랫동안 학교에 머무른 진정한 고려대인 아닐까? 교육의 기능과 결과를 놓고 보면 수업 하나도 듣지 않고 입학이나 졸업도 필요치 않았던 정돌이야말로 가장 진솔한 학생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우호성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대가 자신의 집이자 고향이며 영육의 거처였다고 고백하는 귀철의 증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도인문학팁
고려대 소도(蘇塗)와 밥의 힘
“밥 먹었어?” “이리와 밥 먹자!” 이제 이 말은 고려대 형과 누나들의 말이 아니다. 정돌이 송귀철이 제자들을 향해 일상적으로 던지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물놀이패 ‘미르’를 창단해 운영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오면서도 그렇고, 누군가를 만날 때도 그렇다. 손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먹였던 태도가 일종의 습관이 되기라도 한 것일까. 이 마음의 출처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궁금한 것은 송귀철의 어린 시절이 매우 불우하고 비참했음에도 어쩌면 가장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힘의 근원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우선 거론할 것은 가출 소년 정돌이가 성장해 독립하기까지 의지하였던 고려대 정경대의 소도(蘇塗)적 공간이다. 어디 고려대뿐이겠는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교에 일종의 소도가 있지 않았나. 전남대와 조선대만 하더라도 정돌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거론되는 것은 대학마다 일종의 소도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장차 마한의 소도에 대한 시선, 예컨대 치외법권적 장소성의 이면을 재해석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정돌이를 폭압과 압제로부터 보호해 준 소도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사실 따뜻한 밥이라는 행위가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밥의 철학이라고나 할까. 동학 교주 최시형이 선포한 ‘밥이 하늘이다’라는 말씀을 상고한다. 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혼밥의 시대가 돼버렸다. 정돌이의 밥이 주는 메시지가 더욱 긴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익중 외 ‘혼밥이 아동·청소년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빈곤여부에 따른 차이를 중심으로-’(한국사회복지학, 2023)에 의하면, 아동·청소년의 혼밥 횟수가 증가할수록 이들의 주관적 행복감은 감소한다. 빈곤하다고 해서 행복감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정돌이의 사례를 통해서 충분히 검토됐다. 여기에 정돌이의 장구가 가지는 울림 곧 공명(共鳴)의 방식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홀로 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우는 것을 공명이라 한다는 점 거듭 강조해 둔다. 그이와 얘기를 나눠보았더니, 정돌이가 지키고자 하는 세상이 있었다.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지키고자 하고 변하지 않아야 하는 그 중심에 뭐가 있을까? 정돌이의 장구가 공명하는 세상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중심이었다. 고려대 혹은 전국 대학의 소도를 거쳐 생사의 길로 나섰던 이들이든 영욕의 길로 나아갔던 이들이든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을 듯하다. 정돌이는 14살 때 고려대 형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똑같이 말하고 실천할 뿐이다. 얘들아, 이리와 밥 먹자!
![]() 영화 ‘정돌이’ 포스터. |
![]() 영화 ‘정돌이’ 상영 시간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