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사람도, 풍경도 넉넉한 산골… “살기 좋은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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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사람도, 풍경도 넉넉한 산골… “살기 좋은 내 고향”
●곡성 흑석마을
‘마을 검은 돌’이 검은들 ‘금평(琴坪)’으로
지세 평탄한 산골, 넓은 들서 벼농사 주업
터널로 ‘쌍둥이 저수지’ 연결 물 걱정 덜어
수변 개발사업, 체육공원·전망대도 들어서
  • 입력 : 2025. 03.20(목) 10:16
  •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흑석저수지 둔치에서 내려다 본 흑석마을 전경. 분지로 둘러싸여 평화롭게 보인다.
‘우리 마을에 이불 빨래방 맹그러 줘서 참말로 고맙소잉. 다들 복 많이 받을 것이오. 나도 여러분님들 덕택에 얼마 안 남았지만 편히 살다가 가겠소. 징하게 감사허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편지글의 일부분이다. 편지는 곡성군의 ‘마을 빨래방’ 사업에 지정 기부를 한 기부자가 공개했다.

편지를 읽은 누리꾼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기부자가 좋은 일 했다는 칭찬에서부터 ‘어르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편지만 읽었는데 눈시울을 적신다. 진한 사투리에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는 등 감동을 받았다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편지는 어르신 돌봄 사업의 하나로 고향사랑기부제(지정기부)를 통한 마을 빨래방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는 곡성군이 기부자에게 보냈다. 편지글은 ‘마을 빨래방’이 설치될 지역의 주민이 썼단다. 마을 빨래방은 입면 소재지에 설치 예정이다.

담양댁의 손편지 글. ‘마을 빨래방’ 설치 사업에 지정기부를 한 기부자에 대한 감사 글이다.
손편지를 쓴 어르신이 궁금해 마을을 찾았다. 손편지를 쓴 주인공은 곡성 입면 흑석마을에 사는 담양댁(양현숙·81)이다.

“여기로 시집와서 50~60년 살았소. 다 좋은 곳이요. 사람도 좋고, 산도 좋고, 들도 좋고. 내집도 편안허고. 교통도 좋아요. 광주 가깝고, 순창 남원도 가깝고.”

담양댁뿐 아니다. 김하나 곡성군 행정과 팀장도 매한가지다.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면입니다. 그중에서도 흑석은 정 많고 심성 고운 분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외지인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곳이에요. 언제 찾아도 편안한 마을입니다.”

김 팀장은 6년 전 입면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마음 편하게 해주는 흑석마을이라는 것이다.

흑석마을은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속한다. 입면 소재지에서 가깝지만, 모두들 ‘두메산골’, ‘오지(奧地)’라고 한다. 마을에 검은 돌이 있다고 ‘검은들’, ‘금평(琴坪)’으로 불렸다. 금평이 ‘검은들’로 변하고, 검은들이 ‘검은돌’로 잘못 인식되면서 ‘흑석(黑石)’이 됐다고 전한다.

마을은 400여년 전 옥천 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이뤄졌다. 선조 때 청송 심씨 심민겸이 정착하면서 자작일촌을 이뤘다. 흑석마을은 지리적으로 입면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상대적으로 넓은 들을 갖고 있다. 산골이지만 지세가 평탄한 편이다.

심형섭 흑석마을 이장이 마을 현황도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마을 뒤로는 해발 735m의 동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동악산은 암반과 계곡이 아름답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 동악산에서 이어지는 형제봉, 서리봉, 마산봉이 병풍처럼 흑석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이 분지 형태를 보인다. 마을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주민은 50여가구, 80여명이 산다. 특별한 소득작목 없이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마을이 풍요롭다. 저수지 덕분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이른바 ‘쌍둥이 저수지’다. 흑석저수지와 매월저수지다. 마을주민들이 농업용수로 쓰던 흑석저수지는 1945년 준공됐다. 유효저수량이 44만톤으로 많지 않았다. 저수량이 적다 보니, 가뭄 땐 주민들이 맘고생을 많이 했다.

저수지 활용법을 고민하던 농어촌공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작은 산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한 흑석저수지와 매월저수지의 연결을 제안했다. 1998년 농업기반 정비사업이 추진됐다. 사업비만 수백억원 투입됐다.

사업 시작 6년 만에 두 저수지가 터널로 연결됐다. 유효저수량 총 479만톤에 달하는 큰 저수지로 거듭났다. 당초 흑석저수지의 10배가 넘는 저수량이다. 농번기 때 물이 부족하면 섬진강 물을 끌어다 저수지를 채우는 구조도 만들었다.

흑석저수지. 흑석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엔간한 가뭄에도 끄떡없이 농사지을 수 있는 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몸집을 키운 저수지는 홍수 조절 능력도 커졌다.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려도 견딜 수 있게 됐다.

‘쌍둥이 저수지’로부터 농업용수를 받는 수혜면적이 넓다. 둔치 아래 흑석마을과 입면은 물론 겸면, 옥과면까지 1000여㏊에 이른다.

“쌍둥이 저수지를 개축할 때 우리마을 사람들이 협조 많이 했습니다. 농어촌공사의 토지 매입을 적극 도왔어요. 대신,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 이설을 요구했죠. 덕분에 농사용 물 걱정을 덜고, 홍수 때 물난리가 나 침수되는 걱정도 사라졌습니다. 상부상조한 거죠.”

심형섭 흑석마을 이장의 말이다. 흑석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심 이장은 6만6000여㎡에 농사를 지으며 한우를 키우고 있다.

저수지 주변 등산로 개설 등 수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마을에 체육공원이 들어선 것도 그 덕분이다. 이후 전망대와 유산각이 건립되고, 재활용 쓰레기 배출장도 설치됐다.

골목벽화가 그려진 흑석마을 풍경. 길손을 편안하게 맞아준다.
몇 년 전엔 골목 담장에 벽화도 그렸다. 옛 작두질에서부터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풍경, 말뚝박기 놀이, 참새와 허수아비 등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덧칠된 그림이 눈에 거슬린다. 최근 저작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면서 색깔을 덧입혀 가렸다고 한다.

마을에 특별한 문화유산이나 볼거리는 없다. 수령 150년 된 팽나무가 마을과 어우러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을주민들 자긍심은 높다. 출향인들도 ‘살기 좋은 내 고향’이라며 엄지척을 한다. 사람도, 풍경도 넉넉한 산골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