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62>화가는 고난의 시대를 예술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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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62>화가는 고난의 시대를 예술로 밝힌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 입력 : 2025. 03.09(일)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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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 작 ‘남향집’. 이선 제공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중략.)/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위 글은 1926년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의 시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을 이 시에 담았다. 나라를 빼앗겨 얼어붙은 땅에 봄이 되면, 국토와 조국을 통해 자조적인 한민족의 혼과 저항을 일깨운다는 저항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 3월의 봄비가 내린다.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도,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무수한 목숨들을 앗아갔던 때에도,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도 언제나 봄은 온다. 이론가들은 사회와 시대가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좋은 예술가가 탄생한다고 했다. 최근 광주·전남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도작가 및 민중미술 작가의 회고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많은 애호가들과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방문하고 있다. 필자는 그중 3곳의 미술관을 다녀와 공통점을 도출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오지호와 인상주의’展은 우리나라 ‘국가등록문화재 제536호’로 지정된 근대미술작품, 오지호의 ‘남향집’이 전시 중이다.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오지호가 살았던 개성의 초가집을 그린 작품이다. 짱짱한 초겨울 햇살을 받는 초가집과 빨간 옷을 입은 딸 금희, 그리고 낮잠 자는 하얀 개(삽살이)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화가가 특히 주력한 부분은 집 앞의 커다란 대추나무인데, 나무 본체보다는 나무의 그림자에 작품의 ‘포인트’가 있는데 화가는 대추나무 그림자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늘에도 빛이 있다”는 작가적 이론을 증명하듯 대추나무 그림자는 그저 단순한 검은 색이 아닌, 푸른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진 오묘한 점묘법 색채로, 담벼락과 지붕 위에 넓게 드리워져 있다. 어두웠던 일제강점기 시기, 화가 오지호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자를 그렸을지 상상해 보게 하는 부분이다.

작가는 나무의 그림자처럼 맑고 밝은 조선의 자연환경이 어둡고 습한 일본의 자연환경과 구별되는, 고유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오지호는 ‘조선’의 인상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철저한 한민족주의자였다. 작가는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했지만, 그의 후기 작품에서는 스승 후지시마 다케지의 일본화된 인상파 화법보다는 오히려 조선 후기 전라도에서 일어난 남종화 경향과 유사한 모습을 띠기도 했다. 작가 자신이 그림을 배우는 것이 잃어버린 한국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 뒤, 민족적 자각이 뒤따라 고향으로 귀국해 한국적 인상주의적 그림을 그리려 애썼다. 작가는 결국 오랜 노력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들어낸다. 특히 후기에 이르면 특별히 뛰어난 명승보다는 한국 어디에서나 늘 볼 수 있는 자연풍경을 그리고,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을 그렸다. 오지호의 붓끝에는 별스럽지 않은 소재조차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재주와 매력이 있었다.

“조선 사람은 예로부터 명랑하고 선명한 색채를 좋아하고 요구한다… 새로운 미술은 이와 같은 조선인의 생리적 감각과 감정적 요구에 적응할 것을 제일 요건으로 해야 할 것이다… 민족미술이란 본질상 국민예술인 것이다. 국민의 생활감정을 반영하고 그들의 생활의욕을 앙양하는 예술, 즉 국민의 벗이라야 할 것이다.” - 오지호, ‘해방이후 미술 총평’(경향신문 1946.12.05.)

민족주의를 지향했던 작가도 사회적 실천의 진보성에 비해 화가로서 회화 자체의 순수성만을 고집한 점이 남달랐다. 작품활동과 정치적 실천 관계를 통합시키지 못한 민족미술론(民族美術論)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광주시립미술관의 ‘신학철, 시대의 몽타주’展은 민중미술 작가 신학철의 예술세계 60년을 회고하는 전시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시대를 거대한 시공간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해 이를 하나의 몽타주로 형상화하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왔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담아내며, 시대적 통찰과 그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기회가 될 것이다. 소주제로 신학철 작품을 ‘해체와 재구성의 신체 몽타주’, ‘망각된 역사의 소환’, 그리고 ‘시대를 위한 기념비’ 등 세 가지 섹션으로 나눠 시대순으로 구성했다. ‘해체와 재구성의 신체 몽타주’에서는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경향과 다양한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 현실을 고민한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 전시된다. 위 작품들에서 시대를 시공간적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한 작가의 포토몽타주 기법의 생성 과정과 그 특징을 볼 수 있다. 특히 ‘망각된 역사의 소환’ 주제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사건을 환기하며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민중 미술적 메시지를 담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 연작이 전시되고 있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빠르게 변화한 한국 사회의 흐름과 함께, 거대 담론에서 개인의 서사로 전환되는 과정을 작가의 작품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신학철의 회화 작업은 역사적 격동과 민중의 삶과 힘의 내밀한 호흡이 느껴지는 현장을 담은 시대의 일기장 같은 것이었다.

신학철 작 ‘묵시’. 이선 제공
신학철 작 ‘한국근대사 종합’. 이선 제공
마지막으로,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에서는 2025년 소장품전시 ‘이강하’의 아! 광주展이 진행되고 있다. 전시는 ‘무등산의 화가’이자 오월시민군 화가, 故 이강하의 ‘광주’ 이야기가 담긴 남도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작고 직전까지 천착하며 작업했던 ‘무등산’ 연작 두 주제로 구성됐다. 기획 배경은 지난해 12월 3일,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 사건이었다. 비상계엄은 즉각 대응에 나선 국회에 저지돼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6시간 만에 막을 내렸고,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비슷한 기간 ‘소년이 온다’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강연문에서 ‘광주’가 언급됐다.

그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시기적으로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관객이자 미래의 후손들에게 ‘광주’는 어떤 의미였는지 상기한다. 특히, 전시된 작품들은 회화와 판화, 아카이브(작가노트, 신문 스크랩, 법원판결문, 1980년 친필 경위서 등) 자료들로 나뉘는데 작가 이강하가 1980년대 지명수배와 옥고를 치르고 난 후, 예술 세계의 형상과 구도, 색이 변화되면서 당시 자신이 경험하고 마주한 시대가 얼마나 어둡고 처절한 시기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소개했던 작가와 작품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조형미를 추구하는데 ‘예술가가 살아냈던 시대의 굴절된 정치·사회적 수난의 역사’를 한국적이고 민족적인 독자적 방식으로 그림에 담아냈다. 그리고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머물렀는지 작품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예술적 혼과 숨결을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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