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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한(恨)을 품고 흐르는 두만강. 그 강변에 가랑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개울같이 가늘게 흐르는 상류의 강줄기라서 쉽게 건너 뛸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였다. 강 건너 북녘의 산모퉁이에서 검은 철마가 나타났다. 화물 열차의 지붕에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 어디론가 떠나는 피난민들을 연상케 했다. 그 순간을 놓칠 수는 없는 일. 밭도랑에 엎드려 카메라 셔터를 끊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날벼락 같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어딜 찍는 거야? 여기는 국경이야! ..." 뒤...
편집에디터2021.11.25 13:52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흔적을 남긴다. 일터도 그렇고, 잠 자리도 그렇고, 쉬어가는 자리도 그렇다. 하지만 어떠한 동물보다도 욕심이 많아서 인지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는 유난히도 요란하고 너저분하다. 특히 먹이를 먹고 난 자리가 더욱 그렇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 인간은 욕심많고, 나약하면서도 포악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그 먹이와 그걸 먹고 떠난 빈 자리다. 한 무리와 일을 하다가 때가 되어 식당에 들렸다. 별 생각 없이 이것 저것 주문해 ...
편집에디터2021.11.11 16:16가을이 깊어가는 날 무등산에 올랐다. 천 미터가 넘는 산이 이렇게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광주시민들의 무등산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립공원이 되고나서는 외지인들까지도 붐빈다. 산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장불재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다. 억세밭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눈길을 피해야 하는 것처럼. 하늘에는 구름들의 유희도 장난이 아니다.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을 때 입석대의 돌기둥들이 보였다. 가까이 가기 보다는 그 자리 그대로 있고 싶어진다. 만 리 변방의 잃어버린 신전이 바로...
편집에디터2021.10.28 09:06나뭇가지를 두 발로 밟고 그 사이로 끼워넣은 길다란 등나무 껍질을 좌우로 힘껏 당기는 것을 아주 빠르게 반복했다. 숨이 차는 가 싶을 때 연기가 피어나더니 그만 줄이 끊어져버렸다. 실패인가 했는데 잽싸게 입김을 불어 넣었다. 약간의 긴장 속에서 조심스럽게 다루다가 거친 손 안에서 병아리 갓 태어나듯 불씨의 탄생을 알렸다. 아직도 원시가 살아 숨쉬는 곳들이 있다. 파푸아의 열대 우림 속에는 지금도 발가벗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며, 20미터가 넘는 곧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돌도끼를 사용하며 생활의 모든 것을 자연속에서 구한다. 현대...
편집에디터2021.10.14 15:12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하는 풍경이다.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초가집. 순복이 누나네 집이었는데 헐린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아침 일찍 헐리기 전에 가보고 싶었다. 벌써 이곳저곳이 손을 탔는지 폐가의 모습이다. 나의 추억도 있고해서 애잔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때만 해도 기록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할 때지만 그냥 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변을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 누나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얼마동안 혼자 이 집에서 지냈는데 그래도 항상 밝은 성격이라 동네 또래들의 사랑방이었다. 우리 머슴아들은 신발을 감추는 등 짓궂은 장난...
편집에디터2021.09.30 15:30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우리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고,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만주지역을 떠돌다가 쉔양(瀋陽)의 북쪽에서 그럴싸한 조형물을 만나게 되었다. '9,18 만주사변역사관'의 상징물이다. 동북아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의 야욕과 더불어 '양세봉'을 비롯한 조선독립군의 활동도 엿볼 수 있어 꼭 들려봐야 할 곳이었다. 조선을 강탈하고 난 일본군은 대륙 침략에 대한 야욕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 시작의 단초가 된 사건이 1931년 9월18일 벌어진 '류타오후(柳條溝) 철도폭파사건'이다. ...
편집에디터2021.09.16 15:20영혼을 맑게 한다는 수미산 순례 길. 트럭의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갔다. 몇 날인가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부 티벳의 황량한 대지를 떠돌고 있자니 이제 내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영혼을 위한 구도의 길에서는 자신을 버려라 했던가. 어느 만큼 왔을까. 아무 것도 없는 노천에서 온천수가 품어 나오며 광야를 적시고 있었다. 떠도는 영혼을 위한 쉼터 같다고나 할까. 추위에 웅크렸던 몸을 펴고, 뒤범벅이 된 먼지를 씻으며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구 밖 먼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야릇한 시간이었다. 다시 길을 ...
편집에디터2021.09.02 12:56아프가니스탄이 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군의 침공으로 무너진 탈레반 정권이 20년의 끈질긴 투쟁 끝에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내전과 외세의 침략으로 초토화 된지 오래지만 영국과 소련에 이어 이번에는 그 잘난 미국까지도 손을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비귀환이 된 이번 카불의 함락이 1975년에 있었던 베트남 사이공의 함락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에 보잘 것 없어보이는 아프가니스탄이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강대국들의 수렁인 것이다. 겉으론 세계 평화를 외치지만 국...
편집에디터2021.08.19 12:44이 사진은 고고학 발굴의 현장이 아니다. 1937년 중일전쟁 때 일본군 5만여명이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하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 수많은 현장 중의 하나를 발굴해 보여주고 있는 광경이다. 한 무리가 처형되고 나면 대기하고 있던 다른 무리들이 나와 그들의 시신을 그 자리에 묻는다. 다음은 그들이 처형되고 또 다른 무리가 나와 똑같이 그들을 묻는다. 이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어 갔다. 하지만 이것은 그래도 봐줄만한 학살이었다. 기관총 난사, 생매장, 일본도 참수, 생체실험, 불에 태우거나 몽둥이 찜질... . 6주 동안 ...
편집에디터2021.08.05 08:57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하면서 더불어 산다. 그 집단들이 모여 사는 곳을 도시라 말한다. 물론 크고, 작고 하는 면에서 그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그곳은 언제나 번잡하고, 바쁘고, 소음과 탁한 공기 속에 노출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문제점들을 간직한 채 진화에 진화를 거듭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본다면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간에, 민족간에, 또는 사회적 이념에서 비롯한 색깔이다...
편집에디터2021.07.22 13:06세상은 언제나 빠르게 변해왔다. 이제 국가 간에, 민족 간에도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어 문화를 비롯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어떻게 보면, 걱정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저버릴 수 없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왜? 온갖 것에서 서구문화의 지배를 받아 가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자세가 부족한 것일까. 문화란 주고받는 것이기에 섞일 수는 있지만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에 휩싸이고 생경하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밀려드는 문화에 무조건적으...
편집에디터2021.07.08 15:196.25 전쟁 당시인 1951년 2월, 한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산청과 함양의 학살에 이어 거창군 신원면 일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만행은 작전명 '견벽청야(堅壁淸野)' 산간마을들을 지나면서 무차별적으로 이어졌다. 빨치산 토벌이라는 구실로 이루어진 신원면 일대의 학살은 덕산리 청연골에서 주민 84명 대현리 탄량골에서 주민 100명 과정리 박산골에서 주민 517명 기타 지역에서 주민 18명을 포함하여 불과 사흘 동안에 이루어진 전체 희생자는 719명으로 58%가 노인과 어린이였다. 이 사건은 부산 피난 국회에...
편집에디터2021.06.24 16:11우리의 삶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 아리송한 시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한다면 그 잔잔함과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꿈들을 꿔보지만 남는 것이란 그 흔적과 기억들뿐이다. 그것은 마치 물웅덩이에 떠있는 부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름날의 오수 속에서나 느껴보는 정적 같은 아스라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멈추어버린 시간'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결국 멈추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시간이고, 그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면서 기억 속으로 흘러간다. 그 도도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오늘도 나는 누...
편집에디터2021.06.10 14:24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물을 생기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이 없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근본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물질과 정신은 하나라고 하는 가르침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 곳곳이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병들어 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현실이다. 지도자가 없다거나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원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개개인이 사회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정의의 편에 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
편집에디터2021.05.27 09:57며칠 있으면 석가탄신일이다. 물처럼 흐르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모든 것이 빙빙 돌아서 다시 오는 것을 보니 지구의 자전과 공전 따라 돌고 도는 것 또한 시간인가 보다. 남도의 명산 월출산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구정봉 아래 용암사지의 석탑과 마애불이 보이는 곳. 고려시대의 흔적으로 시간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바위 위에 올려진 석탑도 재미나고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을 나뭇가지들 사이로 바라보는 맛도 일품이다. 종교의 힘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세상에 지쳐 잠시 쉬고 싶을 때 마음을 편안케 한다면 그게 좋은 것 ...
홍성장 기자2021.05.13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