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길처럼 반듯하게 쭈-욱 뻗었다. 그다지 길지 않지만, 품새는 유명 가로수길에 버금간다. 새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면서 안개까지 내려앉아 몽환적이다. 가로수길 입구에 문학비가 서 있다. 소고당 고단(1922~2009)의 규방가사를 새긴 비다. ‘고향이 그리워서 서둘러 온 친정길/ 우리친정 장흥평화 수려한 산천이여/ 사면을 바라보니 신구감회 갈마든다...’ 이 마을을 친정으로 둔 고단은 조부에게서 한학과 신학문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저수...
2024.02.15 10:35시베리아와 만나는 몽골의 서북쪽 ‘홉스골’ 호수 인근의 타이가 숲속 순록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차탄족’을 찾았다. 원래 북쪽의 시베리아에서 몽골 쪽으로 넘어 온 유목민족이다. 오늘날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몇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인류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부족이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집들과 흡사한 ‘오르츠’라는 이동식 움집을 짓고 산다. 살림살이라곤 그저 엉성한 이부자리와 장작 난로, 그리고 밥그릇 몇 개가 전부다. 이들의 일상은 오로지 ...
2024.02.15 10:13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 속 창작 과정 속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 많은 대중들은 신비스러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매번 독자적 세계관의 예술을 발견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늘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는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 창작의 원천은 예술가의 일상과 경험 그 어디에서 인가로 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보고,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영감은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예술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요소들은 더욱 다양하다. 정형화 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들, 새로운 심신...
2024.02.12 15:48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나는 정열의 사냥꾼이다. 먼저 거위를 쫓고,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고,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다!”라는 말을 했다. 지난 연재에서는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 푸치니, 막장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가정사와 여성 편력을 다루며, 그의 작품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는’ 푸치니의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 푸치니 오페라의 대본은 이탈리아의 문학보다는 프랑스나 독일, 미국 등의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단테의 , 와 를 빼놓고는 거의 이탈리아 이외...
2024.02.01 17:57진도군 의신면 내동마을 뒷산에 윷판바위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별초군들이 윷놀이하면서 새겨두었다고 한다. 졸저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민속원)을 쓰면서 이 정보를 얻게 되었으므로 답사한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책이 편집 완료된 시점이어서 졸저에 싣지는 못했다. 이후 전남지역의 윷판바위를 추적하던 차에 광양에도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에 있는 성혈 바위에도 윷판바위와 유사한 패턴들이 있다. 다만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전북 임실의 윷판바위에 대해서도 본...
2024.02.01 10:31세이레는 아이를 낳은 지 스무하루째 되는 날을 말한다. 출산일부터 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출생한 첫 7일째를 초이레, 14일째는 두이레, 21일째는 세이레라고 한다. 7일을 세 개로 묶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이레마다 새벽에 삼신(三神)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린다. 세이레째 금줄을 내리게 되면 비로소 일가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실과 돈 등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대면한다. 세이레를 보통 ‘삼칠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군신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칠일, 백일을 비롯해 천부...
2024.01.25 13:30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해외로 피란한 자국민의 모국 귀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구학적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쟁에 나가 싸울 군인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숙련된 노동력 또한 부족하다는 점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에도 인구 통계학적으로 심각한 쇠퇴를 겪었다. 수년 동안 사망률은 출생률을 크게 초과했으며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일하기 위해 떠났었다. 우크라이나의 인구가...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1.25 11:07광주호 주변엔 누정과 원림이 많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민간정원 소쇄원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식영정, 환벽당, 서하당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면앙정, 송강정과 함께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원림과 누정은 모두 1500년대에 들어섰다. 내력이 더 깊은 누정도 있다. 독수정(獨守亭)은 조선 초에 건립됐다. 고려 때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이 세웠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혼자라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건물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고려의 옛 도읍지 개경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4.01.25 10:46압록강 변의 겨울바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변방의 그 혹독한 겨울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대사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근세의 그 혹독한 가난 때문에 압록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청춘을 바쳐가며 말달리던 그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갔던 그 용사들. 이 모두가 이 변방의 칼바람 앞에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눈물조차 얼어붙어서 흘릴 수도 없었을지도. 중국 쪽 압록강 변의 작은 도시 ‘린지...
2024.01.25 10:2920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나는 정열의 사냥꾼이다. 먼저 거위를 쫓고, 최고의 오페라 대본을 쫓고, 매력적인 여성을 쫓는다”라는 말을 했다. 그에게 매력적인 여성을 향한 그의 열정은 삶의 일부분이었다. 스타로서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일으켜 바람둥이라 욕을 먹고 항상 가십 속에서 주목을 받는 푸치니, 그의 애정 행각은 자신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지만, 그의 아내 엘비라에겐 크나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음악사에서 심도 있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그 시대를 이끌었던 주요 작곡가의 생애이다. 특히 음악학자들은 가십 거리...
2024.01.18 12:40광주 어느 독서실 골방에서 한겨울을 나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완행버스 차창으로 눈을 돌리다가 느닷없는 울음이 쏟아졌다. 이런 해괴하고 뜬금없는 일이라니. 이유도 내력도 알 수 없는 복받쳐 오름에 나는 몹시 당황하였다. 옆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 꺽꺽대는 사이, 남도의 들녘이, 샛강이, 야트막한 언덕들이, 갓 올라온 연록의 이른 봄을 장식하며, 손잡아 달리듯 스쳐 지나갔다. 울음의 출처가 궁금했다. 단지 갓 올라온 들녘의 풀들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내 것 아닌 어떤 울음들이 들녘을 배회하다 터무니없이 심...
2024.01.18 12:31또 한 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좋은 꿈들 꾸셨는지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래보지만 올 한 해도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녹록지 않을 듯합니다. 크게는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고 연초부터 이웃 나라의 지진 소식에 이어 세계의 망나니 이스라엘군이 자행하는 무자비한 학살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네요. 안에서는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로 일찌감치 혼란스러운 정국을 예견케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인간 세상인 것을. 힘든 일들을 이...
2024.01.11 15:12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서 두 번의 큰 이주 물결을 가져왔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가장 큰 러시아로부터의 이주였으며, 모국을 떠나는 러시아인들에게는 패닉적인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2022년 3월 국경이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서둘러 나라를 떠났다. 이때 떠났던 많은 사람들은 국내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부분 동원령을 발표했다. 이 후 러시아인들은 다시 피신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가격보다 훨씬 상승한 항공권 구매 외에도 공항과 육지 국경에서는 수 킬로...
2024.01.11 14:31어릴 때 기억 중 하나, 친구 어머니가 아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출혈이 심해서였다. 출산이라는 축복이 장례라는 슬픔의 시공으로 일순간 바뀌었다. 사람들이 좁은 돌담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리 마을 유일하였던 한약방 어른의 얼굴도 순흑빛이 되었다. 이 경험이 어린 우리에게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왔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이리라. 삶과 죽음의 시공이 바뀌는 게 사실은 순간이자 찰나라는 것 말이다. 당골들의 분주한 발길이 괜한 마당만 즈려밟는 풍경의 중심, 작은 대나무 가지를 손에 잡고 죽은 이의 이야기에 집중하...
2024.01.11 13:31총소리가 울리고, 이순신이 두드리던 북소리가 끊긴다. 그것도 잠시, 다시 북소리가 울린다. 바다 위에서 치열한 백병전까지 펼친 전투는 조·명 연합수군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대장선의 분위기가 침울하다. 군사들은 모두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이순신이 전사한 것이다. 처절한 전투가 끝나고, 이순신의 장례 행렬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상여를 본 백성들이 통곡을 한다. 뛰놀던 아이들까지도 장례 행렬에 시선이 멈춘다. 상엿소리가 구슬프다. ‘본영으로 가자, 고금도로….’ 영화 ‘노량’의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의 대미가 고금도로 ...
2024.01.11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