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 독도. 이효웅. |
아름다운 섬 독도. 이효웅. |
독도답사. 이윤선. |
삼봉도(三峯島)인 독도와 이윤선의 안섬-바깥섬론
삼봉도는 독도의 다른 이름이다. 김낙현, 이효웅, 홍옥숙이 공동으로 쓴 ‘김한경의 울릉도·독도 탐사 항해(1471~1480)와 그 의의’(도서문화 제62집, 2023.12) 의하면, 두 가지를 근거로 삼봉도가 독도라고 주장한다. 먼저는 성종 연간에 진행된 삼봉도의 탐사 관련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울릉도에서 내다보이는 독도에 관한 것이다. 이 논문은 ‘아틀라스뉴스’에 이효웅이 기고한 ‘15세기 해양탐험가 김한경’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이효웅이 손수 만든 요트를 타고 수차례 독도를 탐험하여 항로를 실측하고 관찰한 명실상부한 현장 보고서다. 물론 위 논문에서 지적하듯이 지금까지 손승철 등 여러 학자가 문헌상의 삼봉도를 독도로 비정(比定)하는 것을 비판해오기는 했다. 하지만 이효웅 외 논문이 최근의 성과라는 점에서 이전 논의들을 뒤엎었다고 생각된다. 김한경이 목숨 바쳐 탐사했던 울릉도와 독도 항해(1471~1480)의 연표를 보면 보다 자세한 내력을 엿볼 수 있다. 기록상 최초로 1471년 5월 김한경과 김흥이 항해했던 삼봉도는 무릉도(울릉도)이다. 결론적으로 김한경 등 6명이 1475년 5월 3차 항해에서 삼봉도까지 표류하였다가 살아 돌아오면서 그간 소문으로 전해지던 실재의 섬 삼봉도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삼봉도(三峯島)가 지금의 독도이다. 그간 울릉도를 삼봉도로 비정하였던 논의를 뒤집게 된 것이다. 이 글에 의하면, 울릉도는 사방을 살펴보아도 세 개의 봉우리가 없다. 삼봉도는 문자 그대로 세 개의 봉우리 섬인데 말이다. 오히려 독도는 주봉인 서도의 대한봉(168.5m), 탕건봉(97.8m), 동도의 우산봉(98.6m) 세 개의 봉우리가 뚜렷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울릉도에서 남동쪽으로 항해하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나는 무엇보다 울릉도 주산인 성인봉(984m)에서 바라보거나 혹은 어부들이 배를 타고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육안으로 확인하였을 독도의 실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섬의 지형을 형제섬 등 가족관계로 설명하거나 안섬, 바깥섬 등 한 쌍의 묶음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섬을 답사해보면 금방 느끼겠지만 크고 작은 섬들은 대개 두 쌍 혹은 세 쌍 등으로 묶이거나 적어도 몇 개의 쌍으로 인식된다. 예컨대 충남의 외연도/내연도, 진도의 내병도/외병도, 신안의 앞삼섬/주삼섬, 흑산도의 내영산도/외영산도 등 수도 없는 용례가 있다. 본섬에 대해, 안쪽에 있어 접두어 ‘안’이나 ‘내’를 쓰거나, 바깥쪽에 있어 ‘외’나 ‘바깥(밖)’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례 등이 그것이다. 나는 지난해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40주년 기념학술대회 기조 발제를 통해 ‘섬 인문지형으로서의 안섬과 바깥섬’(2023. 2. 10)에 대해 발언한 바 있다. 인문현상의 종합적인 형세와 인문주체(개인과 공동체)의 활동상을 관계와 영역의 관점에서 새롭게 주목하고자 만든 용어가 인문지형이라는 점을 전제한 제목이다. 주체와 타자, 랑그와 빠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에믹과 에틱의 의미들을, 내륙과 해양, 뭍과 물, 남자와 여자, 서양과 동양(洋의 語義는 바다다) 등 댓구와 대칭의 사유를 빌려 안섬과 바깥섬에 인유(引喩)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동양의 음양이론과 생극론으로 펼쳐나가기 위한 징검다리 논의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거칠게 결론지어 말한다면 독도는 울릉도와 한 쌍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울릉도는 안섬이고 독도는 바깥섬이다. 따라서 울릉도 빼고 독도를 말할 수 없으며 독도를 빼고 울릉도를 말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전경수의 논의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전경수는 그의 책 ‘울릉도 오딧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울릉도가 전면에 나서서 독도를 관리해야 한다. ‘우익’이라고 지목받는 단체가 아니라 울릉도 주민이 시마네현과 일본 외무성을 설득해야 한다. 울릉도 주민이 국제정치적 전면에 나서서 독도를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독도 일상화의 주역은 울릉도 주민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이라는 것도 자칫 잘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 일상화라는 개념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하기에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그래서 전경수는 이렇게 질문한다. “울릉도에서 사람이 살아왔다는 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국토로 삼아 지켜왔다는 뜻이다. 이 논리가 그렇게도 이해하기 어려운가?” 이 선언을 받아 나도 질문한다. 안섬 울릉도와 바깥섬 독도라는 논리가 그렇게도 이해하기 어려운가?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섬을 바깥에 두고 수천 년을 살아왔는데, 아니 무엇보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겼던 것도 억울한데, 독도가 국제분쟁지역 가능성이 있다니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를 방조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정권과 세력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광복 79년, 분열절이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며 애오라지 두려운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한다.
남도인문학팁
이효웅의 독도 탐사와 나와의 인연
이효웅은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베테랑 탐험가이다. 강원도 동해시를 기점 삼아 스스로 고안하여 제작한 요트를 타고 독도, 어청도, 거문도 등 우리나라 해양영토를 수십 번 답사한 해양전문가이다. 내가 10여 년 전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HK 교수직을 내던지고 우리나라 무인도를 답사하던 중 그를 만났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섬 전문가로 통하는 이재언 목사의 통통배를 타고 서해의 격렬비열도에서 거문도까지 일주일에서 십여 일 이상 세 번의 탐사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나는 이 시기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정보를 축적하였다. 배가 전복되는 등 실제로 죽을 고비를 세 번 이상 겪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재언 목사 왈, 이윤선 교수는 남들이 평생 겪을 일들을 단 1~2년의 탐사에서 겪었다고 했다. 이후 이효웅과는 여수 소재 코리아나호(선장 정채호)를 타고 나가사키에 다녀오는 등 교우 관계를 유지해왔다. 몇 번의 과정에서 나는 이효웅으로부터 바다와 해양과 무엇보다 해양 영토에 대해 많이 배웠다. 이효웅 외 논문이 근자에 나오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공유한다. 독도를 지키는 첩경은 전경수의 지적처럼 울릉도 주민들이 영토 일상화를 주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