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암 오르는 길/ 우두커니 서 있다/ 비자(榧子) 고목 한그루/ 겉껍질은 세월에 벗겨주고/ 속껍질은 가슴애피로 벗겨주었나/ 작은 바람에도 위태롭게/ 지팡이 짚으신/ 부르튼 피부 비집고 몇 개/ 위태롭게 난 잎들/ 백토 진토 비집고 나온/ 나의 배내옷/ 바람인가 오음(五音)의 노래인가/ 숭숭 뚫린 껍질 새/ 채 다 못 부르신/ 아, 그대로만 서 있어도 좋으실/ 어머니 『그윽이 내 몸에 이르신 이여』(다할미디어 시선 08)에 실린 졸작 ‘불일암 오르는 길’이다. 이 시를 인용한 서평이 올라왔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누구인지는 ...
2024.04.25 13:49많은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은 민스크 협정이 잘 이행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에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할 때까지 그중 단 하나도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민스크 협정 실패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이러한 협정을 방해했다고 서로 비난해 왔다. 따라서 민스크 협정이 어떻게 채택되었고, 왜 협정 조항들이 이행되지 않았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은 앞으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2024.04.18 15:01꽃잎 진다 설워 마라 한 번 가면 그만인 것이 우리지만 너는 다시 내년 봄을 기약한다. 봄바람에 휘날리면 그것 또한 꽃이지만 그 꽃바람조차 춘몽이던가 날이면 날마다 가시는 걸음마다 꽃길이면 좋으련만 세상일이 천 근이요, 꿈길에서도 만 근이라. 봄바람에 눈물짓는 꽃잎들아 그 많던 벌 나비, 산새들은 어딜 갔나 화사하던 네 모습도 화석이 되어가고 장자의 나비도 나른한 오후에 봄날은 간다
2024.04.18 14:03동해의 하늘은 바다를 사모해 쪽빛이 되었고 바다는 하늘을 사모해 쪽빛이 되었다. 성경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이런저런 창조 후에 이윽고 사람을 짓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의 생령이 된지라.” 동양에서는 천지창조와 인류의 기원 신화로 여와(女媧)와 복희(伏羲)를 등장시킨다. 마치 머리 둘 달린 하나의 뱀처럼 두 개의 가닥이 비비 꼬인 형상을 하고 있다. 후한 시대의 응소라는...
2024.04.18 11:16시간 참 빠르다. 매화 흐드러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매실이 달렸다. 휑-하던 들녘도 마늘, 양파와 유채꽃으로 생기를 띠고 있다. 산자락과 과원엔 배꽃, 사과꽃,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봄까치풀, 광대나물, 별꽃, 꽃마리 등 들꽃도 지천이다. 앙상하던 나뭇가지도 어느새 연둣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파리 한 줌 쥐어짜면 손바닥에 연녹색 물이 들 것 같다. 도로변 마을 앞에 나무가 길게 줄지어 있다. 팽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도 보인다. 도로변 가로수이고,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이고, 마을숲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수령 수백 ...
2024.04.18 10:4420세기, 최대 걸작으로 뽑히는 푸치니의 완성된 마지막 오페라 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적 요소, 그리고 파토스적 요소를 모두 보여준 작품이다. 이처럼 최고의 평가를 받는 은 완성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푸치니는 가 작곡될 무렵 세 편의 단막 오페라를 묶어 이라 명명하고 이 세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기를 희망하였다. 은 이탈리아에서 세 폭짜리 그림 혹은 ‘병풍’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푸치니는 이 단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3개 오페라를 나열하는 식의 독립적 작품으로 제작하길 원했다. 은 줄거리나 대본의 시간적 배경,...
2024.04.11 17:552014년 4월 14일 우크라이나 돈바스에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조로 거의 8년 동안 지속 되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지역 일대를 가리킨다. 돈바스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2014~2015년에 벌어졌고, 이후 분쟁은 심한 단계에서 진지전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에서는 군인과 민간인, 성인과 어린이 등 많은 사람이 죽었다. 타스통신에 의하면, 이 기간에 14,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난민과 국내 실향민이 되었다고 했다. 또한...
<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4.11 14:57“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 버렸어/ 발자국이 지워진 거리/ 여기 넘어져 있는 나/ 혼자 가네 시간이/ 미안해 말도 없이/ 오늘도 비가 내릴 것 같아/ 흠뻑 젖어버렸네/ 아직도 멈추질 않아/ 저 먹구름보다 빨리 달려가/ 그럼 될 줄 알았는데/ 나 겨우 사람인가 봐/ 몹시 아프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BTS(방탄소년단)의 “라이프 고즈 온” 선율이 온통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반복되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엇박자의 발디딤을 유도했던 것일까. 유장한 ...
2024.04.11 13:38‘네오 아방가르드(Neo Avant-garde)’는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적인 고안들, 즉 콜라쥬와 앗상블라쥬, 레디메이드와 그리드, 모노크롬 회화와 구성 조각 같은 것들을 재활용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북미와 서유럽 미술가들의 자유와 상상력을 표현했던 것들을 묶어서 20세기 후반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미술사적 후속이자 저항으로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유럽의 반미학적 미술을 가르킨다. 이후 대지미술, 미니멀리즘, 건축적이고 장소 특정적 미술, 퍼포먼스...
2024.04.07 14:28일군의 농악대들이 재미나게 놀다가 갑자기 중지한다. “앗, 꽹과리가 없어졌다!” 상쇠의 꽹과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모두 수군거리며 꽹과리 찾기에 돌입한다. 꽹과리를 훔친 것은 필경 도둑의 소행일 것이다. 재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일련의 연극놀이들이 진행된다. 상쇠가 말한다. “수상한 놈이 다니더니 꽹과리 한 짝이 없어졌다!” 상쇠가 갑자기 잡색 중의 대표격인 대포수의 멱살을 잡고 말한다. “이놈이 수상한 놈이다!” 대포수를 비롯해 여러 잡색들의 재담이 이어진다. 며칠 전 일이다. 영광읍 옛터에 새로 전수관을 리모델링한 우...
2024.04.04 13:56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하였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행동이었다. 그러면 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필요하겠지만, 푸틴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침공의 핵심적 원인이나 배경으로 냉전 종식 이후 나토(NATO)의 확장 정책을 지목했다. 러시아로서는 NATO의 동진을 러시아 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 인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2024.04.04 13:48가란도는 신안 압해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갯골을 사이에 두고 압해읍 분매리와 마주하고 있다. 거리는 불과 200여m 남짓. 조붓한 바닷길 위로 분매리와 가란도를 잇는 나무다리가 2013년 개통됐다. 길이 275m, 폭 2.5m의 가란목교다. 햇볕을 피할 파고라와 전망 공간도 중간에 만들어져 있다. 섬인데도 배를 타지 않고,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목교는 사람과 함께 이륜차의 통행만 허용된다. 섬주민이 마실 수돗물도 이 다리를 통해 들어간다. 장흥댐 물을 공급할 상수도관이 해상보행교 밑에 설치됐다. 댐물은 길이 ...
2024.04.04 10:32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난다. 발길을 어디로 돌려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4월이다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총선의 열기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인지 제주에 다녀온 후로 꽃향기 속에서도 악몽을 꾼다. 꽃놀이에 취해가도 설움과 잔인함이 감추어진 4월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가 제주4.3사건의 흔적을 더듬어 가다 찾아간 곳은 한림 갯거리오름길에 있는 만벵듸 공동장지. 경작지 근처에 수십 기의 무덤이 몰려있는 곳 48년 4.3사건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대혼란기에 예비검속 자들이 모슬포 인근 섯알...
2024.04.04 10:2120세기 초반 세계 영화계를 휩쓸었던 서부극,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를 패러디한 한국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역시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등 한국 최고의 배우가 출연해 절찬리에 상영하였다. 또한 스타워즈, 매드맥스 등의 영화가 서부극의 범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를 보면 권선징악을 다루는 서부극은 현대인에게도 인기 있는 장르임이 분명하다. 서부극의 기원은 19세기 중엽에 출현한 미국의 싸구려 소설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미국에서 문명사회를 열며...
2024.03.28 17:47고려 시기 서해안 뱃길이 매우 중요한 대외교역로였다. 신라, 백제, 마한으로 거슬러 오를수록 그랬을 것이다. 뱃길의 여정에 흑산정(黑山亭), 벽파정(碧波亭), 군산정(群山亭), 안흥정(安興亭), 경원정(慶源亭), 벽란정(碧瀾亭) 등 기항지들이 보인다. 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중국 남경과 주산군도에서 뱃길 따라 개성에 이르는 길목들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항, 고속도로 터미널, 철도의 중요한 역(驛)이었던 셈이다. 정요근의 (지방사와 지방문화)에 의하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전남지역 역로망 구성은 총 34곳이다. 전남...
2024.03.28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