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브레겐츠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한 장면. |
고대 중국인들의 고대 문헌에 우리 한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설해문자’에서 이(夷)는 큰 활을 지칭하며 동이족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이 활을 잘 다루는 민족임을 방증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역시 명궁이었으며, 양반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가 활쏘기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왕부터 평민까지 사냥을 위해 활과 함께 총포류도 잘 다루었다고 전해진다. 사냥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과거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맹수나 전설의 용과 괴물 등을 사냥하거나 사탄과 겨루는 신비한 이야기는 세상에 차고 넘치며 이러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 작품 역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설화부터 세계 어디를 가나 사냥과 관련하여 내려오는 무용담은 특히 문학에서는 단골 소재이자 이러한 문학을 바탕으로 재생산되는 연극이나 오페라 역시 제작자들과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1822년 ‘마탄의 사수’ 일러스트레이션. 시작 장면의 막스와 킬리안. 출처 위키피디아 |
독일 낭만 오페라 선구자라 불리는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는 당시 대중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인 사냥을 주제로 독일어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 1821>를 작곡했으며 1821년 자신의 지휘로 이 작품이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는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마탄의 사수>는 독일 오페라 징슈필(Singspiel: 오페라의 대사 부분을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인 레치타티보와 달리 연극의 대사처럼 독일어로 읽는 형식)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제작한 징슈필이 존재하나 그들의 대표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전 유럽을 지배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견주어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독일 오페라가 인정을 받고 세계 오페라 극장에 주요 레퍼토리로 서게 된 것은 바그너 이후라 할 수 있는데, 바그너가 가장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작곡가가 바로 베버이다.
‘2024브레겐츠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한 장면. |
베버는 당시 유럽의 주요 극장을 점령하고 있던 이탈리아 음악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오페라 극장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효율화를 극대화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곡, 성악, 피아노, 미술 분야 등에서까지 다재다능한 인물로 39세란 나이로 단명했지만, <마탄의 사수>로 그는 모차르트에서 시작되어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 오페라의 계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독일의 유령과 관련된 전설 모음집인 ‘괴담집-Das Gespensterbuch’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인 ‘마탄의 사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버의 3막 오페라로 슬픈 결말의 원작과 달리 이 오페라는 해피 엔딩이다. 이 작품은 얼핏 제목을 보면 판타지물로 환상적인 장면 연출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여기에 더해 꽤 탄탄한 줄거리를 갖춘 작품으로 사랑과 명예에 목을 맨 나머지 악마와 거래해 마탄을 얻은 사냥꾼 막스가 이틀 동안 겪는 고뇌와 슬픔을 담고 있다. 마탄의 사수가 된 막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막스의 연인인 아가테가 그의 승리를 기원하는 애절함이 잔존 하는 판타지 심리극을 보는 듯하다.
‘2024브레겐츠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한 장면. |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7세기 보헤미아 영주 오토카가 주최하는 사냥 대회가 열린다. 이 시골 마을에 명사수로 소문난 사냥꾼 막스는 이번 사격 대회에서 우승하면 자신의 애인인 아가테의 아버지 삼림감독관 쿠노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으며, 그녀와의 결혼까지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대회 전 시범 경기에서 컨디션 난조를 겪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킬리안이라는 시골 농부가 모든 과녁을 맞히면서 그는 불안에 떨며 조급해한다. 막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본 사악한 사냥꾼 카스파는 그에게 접근해 마법 탄환을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다며 유혹하고 하루 동안 자신에게 영혼을 팔라고 거래를 제시한다. 카스파가 이러한 거래를 제시한 이유는 3년 전 악마와 거래를 통해 그가 ‘마탄의 사수’로 임명되었으며 3년 안에 후임 사수를 구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카스파는 막스를 데리고 늑대골짜기에 도착해 악마와 흥정을 시작한다. 카스파는 막스의 영혼을 일곱 발의 마탄과 교환을 요구한다. 이에 악마는 카스파의 요구에 조건 하나를 붙이는데 일곱 발의 마탄 중 여섯 발은 막스가 원하는 대로 날아가지만, 마지막 한 발은 멋대로 날아가 막스의 연인인 아가테를 죽일 것이다고 이야기하고, 아가테가 죽지 않으면 카스파 네가 죽는다고 말한다. 카스파와 악마의 거래는 성사되고 카스파에게 마탄을 받은 막스는 사격 대회에 출전하여 마탄의 힘으로 승승장구하며 영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리고 영주는 마지막 표적으로, 날아가는 비둘기를 제시하고 막스는 마지막 탄을 장전하고 쏜다. 마지막 탄에 걸린 마법을 모르는 막스, 그가 쏜 우승을 위한 마지막 한 발이 아가테를 향하지만, 다행히 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해 탄의 경로에 숨어있던 카스파가 그녀를 대신해 마탄을 맞고 죽게 된다. 그리고 사격과 동시에 기절했다가 깨어나 액막이 부적에 대해 언급한 아가테를 통해 마탄의 존재를 인지한 영주는 막스의 부정행위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막스를 영구 추방할 것을 명하지만 이때 아가테에게 부적을 만드는 백장미를 준 현명한 은둔자가 나타나 구명해주고, 철저한 반성을 한 막스는 모두의 축복 속에서 아가테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약속받게 된다.
‘2024브레겐츠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한 장면. |
<마탄의 사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에서 벗어난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오페라였기 때문에 독일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준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민속적인 선율과 독특한 화음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독일 오페라만이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였다. 특히 극적인 화성 전개의 과감함은 등장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더욱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게 하였으며, 탁월한 관현악 기법에 담긴 다이나믹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화려함을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독일 오페라의 가능성을 여는 작품으로 당대에는 인식되었다.
베버는 뛰어난 관현악 기법을 구사하는 작곡가이다. 오페라 작곡가로 이른 나이로 운명했지만, 그는 1813년 프라하 가극장의 지휘자, 1816년 드레스덴의 가극장 지휘자, 궁정 예배당 지휘자로 활약했다. 오페라 작곡뿐만 아니라,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미사곡, 칸타타 등등 클래식 음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내놨으며, 음악적 우수성을 인정받는 작곡가였다. 베버의 우수한 관현악 기법은 <마탄의 사수>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 오페라보다 덜 대중적이지만 실제 오페라를 보면 음악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특히 이 오페라의 서곡은 독립된 연주곡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데, 서곡의 호른 연주 부의 선율은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가사가 붙어 기독교 찬송가로 널리 불리고 있고 3막의 ‘사냥꾼의 합창’ 역시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명곡이다.
악마의 유혹으로 얻으려던 명예와 사랑은 오히려 당신에게 절망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을 가졌으며 마법의 힘마저 무력화시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볼 수 있다. 수많은 유혹 속에 사는 현대인, 성공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간절한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속삭이는 오류의 유혹, 악마의 유혹 같은 속삭임을 듣고 있다. 근래에 경제, 사회에 펼쳐지는 난관 등을 극복하기 위해 악마의 수하에서 여러분은 마탄을 날리는 방아쇠가 될 것인가? 우리는 언론과 다양한 매체 등을 통해 또는 주변에서 수많은 ‘마탄의 사수’들을 보고 있다. 온유와 배려가 가득 담긴 ‘사랑’이 격랑을 겪는 작금의 ‘상실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탄환이 아닐까?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추천명곡 : 독일인들의 애창곡인 <마탄의 사수> 3막의 ‘사냥꾼의 합창’은 사냥의 즐거움을 호쾌하고 박력있게 그려냈다.
추천 음반 : 독일의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지휘 빈 국립 오페라 합창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5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녹음 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