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은 세상이다. 내뱉는 말도 거칠고 격하다.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지적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요즘 정치인과 일부 지식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매천 황현(1855∼1910)이 떠오르는 이유다. 황현은 매사에 진지하고 엄격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풍자한 문장가로, 시대를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록한 역사가로 살았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의 선비로 살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졌다.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선비의 자존심을 지키며 목숨을 ...
2023.03.02 15:12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어 벌써 1년이 넘었다. 러시아와 서방의 대결은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보다 오늘날이 더 위험해 보인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국가들은 군대와 전투기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를 무장시켰다. 미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폭격하여 인프라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했다. 전쟁으로 발생하는 인적?물적 손실은 재앙적 수준이다. 현재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만 적어도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
2023.03.02 14:36‘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의 시조다.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것이라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지만 그 많은 산들 중에서 태산을 들고 나온 것이 항상 궁금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해서 결국 중국 산동성에 있는 그 태산에 올랐다. 정상인 옥황정이 1,545m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이곳을 오악의 으뜸이라 했다. 산의 높이와 멋스러움 보다는...
2023.03.02 13:45여행을 하다보면 성탄절과 새해를 타국에서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곳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보려고 노력했다. 오키나와에서는 공식적인 카운트다운 행사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키나와라서가 아니라 코로나로 모든 나라가 침묵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조촐하게 2022년 마지막 날은 나하 시에서 술 한 잔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화려하고 복잡한 것이 싫어서 뒷골목으로 빠졌던 것이 의외로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어둠 속, 불 밝힌 홍등 ...
2023.02.23 17:07“두리둥퉁 두리둥퉁 쾌갱매 쾌갱매 쾡매 캥, 어럴럴럴 상사뒤여, 어여허 여여루 상사뒤여, 선리건곤(仙李乾坤) 태평시으 도덕 높은 우리 성군, 강구(康衢) 미복(微服) 동요(童謠) 듣던 요님군의 성군일래, 여여어 여여루 상사뒤여 어럴럴럴 상사뒤여~~” 때는 오뉴월 농번(農繁)시절이라, 각댁 머음(머슴)들이 보리밥(麥飯)에 보리술(麥酒)을 마시면서 부잣집 모를 심고 있다. 중 이도령이 과거 급제하여 남원으로 내려오다가 모내기를 하는 일군의 농부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조선 후기 중인층과 양반층의 기호에 맞춰 한자 일색의 풍미로 사설이...
2023.02.23 14:06이탈리아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청순가련형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 여주인공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상대방을 위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희생을 기꺼이 하면서 죽음을 향해 불나방처럼 쇄도한다. 너무나 숭고한 나머지 이러한 내용만 찾아 제작자나 작곡가가 작품을 고른 것인가 살펴보면 웬걸? 원작이 팜므파탈 여성일지라도, 극 중에서는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새로운 여성으로 탈바꿈시킨다. ‘팜므파탈(famme fatale)’의 반대어는 ‘옴므파탈(homme fatale)’이다. 사전적 의미로 옴므파탈은...
2023.02.23 09:43“한국에서는 근래에 와서야 국가와 중앙에 종속된 지방사 연구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다. 지리지와 읍지, 지방지 편찬의 오랜 역사가 강고한 지방사의 전통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중앙집권적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가질 여지가 별로 없었고,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하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시하도록 강요했던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 허영란의 「지방사를 넘어, 지역사로의 전환-한국 근대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새로운 모색」(지방사와 지방문화, 2017)이란 글의 시작 대목이다. 국어사전에는 지방(地方)을 ...
2023.02.16 16:00현대 역사에서 대량으로 무국적자를 초래한 사건 중 하나는 소련의 붕괴였다. 소련의 후계 국가들이 시민권을 획득하고 상실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들의 법률에 여러 격차와 갈등이 있었다.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특정 사람들과 전체 집단의 사람들이 제 시간에 소련 여권을 새로 형성된 국가의 여권으로 교환하지 못해 무국적자가 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구소련 지역의 많은 국가에서는 유효한 신분증이 없으면 권리 행사에 대한 접근 권한을 박탈당하지만 무국적자의 합법화를 위한 효과적인 절차는...
2023.02.16 14:09나는 누구이고 당신은 또 누구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철학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들의 나라, 철학의 땅이라 불리다보니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말하는 인도여행 길에 나서면 여기저기의 힌두 사두들한테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무슨 말장난인가 하고 가볍게 웃고 넘기곤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말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어언 듯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여기까지 왔음에도 아직도 진정 내가 ...
2023.02.16 13:48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의 흔적을 찾아간다.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이다. 지동마을은 만지산과 조봉산, 안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0여 가구 30여 명이 살고 있는 산골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마을 주변에 지동제 등 큰 저수지가 있어 물 걱정도 없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자로 연못 지(池)를 써서 ‘지동(池洞)’이다. “괸돌바위 앞에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고, 괸돌바위에 앉아 낚시질도 즐겼겠죠.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고 ‘못골’로...
2023.02.16 11:17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라는 가전체(假傳體, 사물을 의인화하는 형식의 문학) 글이 있다. 규중은 여자들이 기거하는 방이다. 칠우는 척부인(尺夫人)-자, 교두(交頭)각시-가위, 세요(細腰)각시-바늘, 청홍각시-실, 감투할미-골무, 인화(引火)낭자-인두, 울(熨)낭자-다리미를 말한다. 주부인이 잠자는 사이 칠우들이 나와 갖은 논쟁을 하다가 끝에 주부인이 이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감투할미(골무)의 조정으로 무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부인은 수궁가의 별주부를 닮았다. 연대나 작자 미상이지만, 작자가 여자인 점은 분명하다. 「한국문학통...
2023.02.09 15:27아침 일찍 숙소 공용 휴게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바깥을 보는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실은 일주일 내내 나하 시에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했다. 이곳도 제주도처럼 하루에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다행인지, 내가 가는 곳은 날씨가 내 편인 경우가 많았다. 비바람이 불었지만 맞을 만해서 편의점에서 650엔 주고 비닐우산을 하나 사서 숙소 근처 국제거리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과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일일 버스 패스 티켓을 샀다. 1,820엔이다. 2만원 상당의 요금을 하루에 다 사용해...
2023.02.09 12:54프랑스어 ‘팜므파탈(femme fatale)’은 여성이란 의미를 지닌 ‘팜므’와 치명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파탈’의 합성어로 치명적인 여인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름답고 매혹적인 외모의 여성이 남성에게 다가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상대 남성을 파멸로 몰아넣는 인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열연한 여주인공 캐서린 트라멜 역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팜므파탈은 과거에는 부정적 시각이 다수를 차지했다. 요부나 악녀를 지칭하는 단어로, 여성으로서의 매력보다는 그들의 행위를 ...
2023.02.09 10:022023년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며 쓰는 38화 칼럼의 주제를 고민하며 현대 미술의 영역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문화(文化, culture) ’란? 사회에서 자연의 상태를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으로 의식주를 비롯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재능 많은 토끼의 발랄한 기운처럼 작년에 이어 코로나를...
편집에디터 2023.02.05 13:54‘방구’라 하면 십중팔구 ‘방귀’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방귀를 ‘방구’라 하기 때문이다. 한자어로는 방기(放氣)인데, 이런 맥락에서 보면 표준어를 ‘방귀’가 아닌 ‘방구’라 했어야 맞다. 혹시 ‘반고’나 ‘버꾸’의 다른 이름인 ‘방구’와 구별하기 위해서였을까? 실제로 국어사전에서는 ‘방구’를 ‘북처럼 생긴 농악기의 하나’로 설명한다. 자루가 없고 고리가 있어 줄을 꿰어 메고 치는 악기이며, 소리는 소고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루가 있는 방고도 있다. 대개 솜활을 이용해 악기 대용으로 사용하는 ‘활방...
편집에디터 2023.02.02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