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문홍 기증 민화 권정순의 까치호랑이. 뉴시스 |
<규중칠우쟁론기>와 <수궁가> 상좌다툼
올해 설날(2023. 1. 20), 토끼의 해를 맞아 수궁가의 상좌다툼을 본 지면에 소개했다. 김준수가 <풍류대전>에서 불렀기에 국민가요가 된 판소리다. 이 대목을 인용하며 상좌다툼의 의미는 무엇이고 최후의 승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했다. 김동건은, 호랑이에게 수난당하는 동물들, 수탈과 억압이 가득 찬 사회 현실 고발과 지배층의 권위에 대한 대결의식의 표출이라고 말했다. 최혜진은 토끼가 별주부를 설득하는 과정을 주목했고, 이 ‘설득’에 성공함으로써 <수궁가>의 서사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 논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상좌다툼>이다. 판소리 수궁가의 상좌다툼 대목은 ‘날짐승 상좌다툼-길짐승 상좌다툼-호랑이의 횡포로 구성되어 있다. 창자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날짐승으로는 봉황새, 까마귀, 부엉이, 길짐승으로는 노루, 너구리, 멧돼지, 토끼 등이 나와 상좌다툼을 한다. 길짐승 다툼에서는 나이가 많은 이가 권좌에 앉는다는 설정이다. 노루는 이태백과 동갑이라 하고, 너구리는 조맹덕, 멧돼지는 소중랑, 토끼는 엄자릉과 동갑이라 한다. 하지만 호랑이가 나타나자 모두 물러나버린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들어 있다. 하지만 임방울의 수궁가 등 일부에서는 토끼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호랑이해 작년 설날 본 지면에 인용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흥앵흥앵하는 호랑이는 해남 관머리에 내려왔다가 의주 압록강까지 쫓겨난다. 마른 쇠똥처럼 생긴 별주부(자라)가 허벅지 거시기를 꽉 물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다급히 쫓겨났는지 숨 좀 돌리려 헐떡이고 있는데, 바위틈에 남생이 한 마리가 ‘배쪼쪼름’하니 눈에 비친다. 깜짝 놀라 다시 도망쳐 간 곳이 함경도 쇠소나무 고개다. 나는 이를 민화(民畵) 까치호랑이로 읽어낸 바 있다. 민화에서 사팔뜨기 눈을 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호랑이가 ‘범내려온다’의 호랑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든 민화(民畵)든 풍자와 해학이 겹겹이 숨어있다. 날짐승 다툼에서는 골계(滑稽)가 더 명료하다. 앵무새는 사람과의 소통을, 봉황새는 성인들과의 인연을, 까마귀는 왕희지나 불세출의 영웅들과의 인연을 앞세운다. 정실인사(사사로운 의리나 인정에 이끌리는 인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상좌다툼의 최후 승자가 지닌 덕목은 무엇일까?
토끼의 간사한 꾀일까 설득의 논쟁일까
지난 칼럼에서 <구토지설(龜兎之設)>에 대해 소개했다. 삼국사기 김유신조의 구토지설은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을 속이고 신라로 돌아와 장차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토끼가 간을 빼내 바위에 널어놓고 왔다고 용궁의 자라를 속인 이야기가 모티프다. 김춘추는 보장왕을 간사한 꾀로 속였던 것일까? 판소리 <수궁가>의 이야기는 토끼가 용궁의 자라에게 속임수를 써서 생명을 보전했음을 말하려는 것일까? <규중칠우쟁론기>에서 바늘과 실 혹은 가위와 골무가 서로 속이면서 상좌다툼을 한다는 뜻일까? 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고 또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게 있다. 의인화된 바느질 도구든 날짐승과 길짐승이든, 상좌다툼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해학과 골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수궁가>의 길짐승 상좌다툼에서 내세우는 요건은 나이 혹은 경륜이다. 나이가 많은 이가 상좌, 곧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오래 산 사람, 연령이 높은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읽는 것은 단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상좌다툼의 이면(裏面)은 설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김춘추가 고구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며 이후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김춘추가 폭정과 가렴주구로 백성들을 제압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을까? 두 이야기의 메시지는 상좌다툼의 방식과 설득 혹은 협상의 기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도인문학팁
임금과 이빨의 문화사
상좌(上座)는 윗사람, 혹은 가장 높은 사람이 앉는 자리라는 뜻이다. 옛말로 하면 임금 정도 되겠다. 임금이란 말이 ‘이사금’과 ‘잇금’에서 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신라초기 3대 유리왕부터 16대 흘해왕까지 유지된 임금 호명이었다. 신라본기 유리이사금조에 의하면 ‘이사금’은 ‘치리(齒理)’라는 뜻이다. 이(齒)가 많은 사람 곧 연장자는 성스럽고 지혜롭다 했다. ‘니슨금’-‘닛금’-‘니은금’-‘임금’ 등으로 변화 과정을 설명한다. 송나라 관상학서인 <마의상법(麻衣相法)>에는, 치아가 38개인 사람은 왕이나 제후, 36개는 관료나 갑부, 32개는 중인, 30개는 보통사람, 28개인 사람은 하층민으로 나눈다. 치아 수를 논쟁과 설득력의 지혜로 해석할 여지는, 초기 신라 ‘이사금’이 여러 성씨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김춘추 관련 설화 <구토지설>이 본래 불전설화 중의 하나인 용원(龍猿)설화에 토대가 있음을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다. 수궁가의 토끼가 간사한 꾀를 쓴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래된 논쟁의 어떤 기술이 상대방이나 세력을 설득했다는 취지였다. 이 전통은 빛이 바래고 와전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이어진다. ‘이빨이 좋다’, ‘이빨깐다’라는 말의 본래 의미가 설득력이 높다는 뜻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이 아니라면 왕의 호칭을 이빨이 많은 사람이라는 ‘잇금’ 곧 ‘임금’으로 불렀을 이유가 없다. 판소리 기법 ‘시김새’가 동사 ‘삭이다’에서 왔듯이, 이사금과 잇금에서 임금으로 변했고, ‘이끔’의 15세기의 표기 ‘잇그다’가 지금의 동사 ‘이끌다’가 되었다. 오늘날 대통령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민화(民畵)에서 약육강식의 호랑이를 사팔뜨기 멍청이로 그렸던 것은,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와 폭압을 풍자하고 권면하는 것이다. 이빨과 잇금 곧 임금의 오래된 ‘이끔’의 덕목, 설득 및 협상의 기술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