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치명적 ‘팜므파탈’의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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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치명적 ‘팜므파탈’의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열망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1875년 초연… 프랑스 대표적 오페라 걸작
집시·노동자 등 천대받는 여성, 주인공 부각
메조소프라노 통해 적나라한 사실 묘사 특징
남성 중심 반페미니즘적 가치관에 정면 도전
  • 입력 : 2023. 02.09(목) 10:02
최철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등장.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랑스어 ‘팜므파탈(femme fatale)’은 여성이란 의미를 지닌 ‘팜므’와 치명적이라는 의미를 가진 ‘파탈’의 합성어로 치명적인 여인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름답고 매혹적인 외모의 여성이 남성에게 다가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상대 남성을 파멸로 몰아넣는 인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열연한 여주인공 캐서린 트라멜 역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팜므파탈은 과거에는 부정적 시각이 다수를 차지했다. 요부나 악녀를 지칭하는 단어로, 여성으로서의 매력보다는 그들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섰으며, 이는 지극히 남성 중심의 반페미니즘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나 역할론에 대해 한계를 뒀던 과거 시대 팜므파탈은 비난의 대상이었으며, 악의 근원으로 두려워해야 할 여인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팜므파탈에 대한 긍정적인 다수의 시각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현대 여성들은 이를 로망으로 여기기도 한다.

오페라 카르멘 중 2막 세비야의 선술집. 카르멘과 그의 친구들이 춤을 추는 장면.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단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rmen)’은 1875년에 등장했다. 밝고 화려한 소프라노가 현란한 기교로 주인공 역을 맡았던 보편적인 오페라와 달리, 어둡고 매혹적인 목소리의 메조소프라노가 여주인공인 카르멘 역을 담당했다.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 이 작품은, 사실주의 오페라이다보니 적나라한 묘사를 위해 이전의 귀족과 영웅을 묘사해오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하류 인생의 여주인공 카르멘은 매혹적인 여성이지만 집시, 담배공장 노동자, 밀수꾼의 일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요부로 주목을 받는 여인이다. 이러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선택된다는 것은 당대 보수적 시각을 가진 관객들에게는 충격이었으며,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됐다. 특히 당시 한 평론가는 이 오페라의 담배 공장 여공들에 대해서 “지옥에서 쏟아져 나온 여자들이여, 저주받아라!”라고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비제는 ‘카르멘’에 대단한 애착과 만족을 했었기에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비난에 굉장히 힘들어했으며, 카르멘 초연 3개월 후 세상을 떠나는데 사인이 ‘카르멘’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모차르트, 베르디, 푸치니의 최고 인기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자주 공연되며 프랑스 오페라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모습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2017년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카르멘 공연 중 담배공장 밖 카르멘의 등장과 하바네라.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스페인 세비야 담배공장 앞, 뜨거운 태양 아래 군인들과 마을 사람들, 담배공장의 여공들이 잡담하며 쉬고 있다. 그 사이로 요염한 자태의 여주인공 카르멘이 걸어나와 ‘하바네라’를 부른다. “사랑은 길들이지 않은 새, 아무리 애써도 길들이지 않아”라는 가사가 말해주듯 자유분방한 그녀의 음성과 움직임에 어느새 주위의 모든 이들이 주시한다. 그녀가 던지는 매혹적인 추파와 유혹은 남자 주인공 돈 호세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남자의 심장을 뚫어버리고 있다. 눈 부신 태양을 먹고 사는 나라 스페인 세비야에서 그녀를 직관하고 있는 듯한 묘한 오페라의 분위기는 카르멘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진다. 카르멘에게 빠져버린 성실한 군인 돈 호세는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된 후 자신의 명예와 삶을 버리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도적의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곳의 무료한 삶 속에서 호세는 그녀와 갈등을 빚게 되고, 카르멘을 사모하는 투우사 에스까미요의 등장과 함께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이제 호세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카르멘, 어머니의 병세 때문에 떠나야 하는 그와의 관계도 정리됐다. 하지만 헤어짐은 일방적인 카르멘의 생각이었고, 그녀는 새로운 사랑 투우사 에스까미요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투우장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며 매달리는 호세를 만나다. 하지만 카르멘은 호세와의 징표인 반지를 던지며 단호히 거절하고, 호세의 질투로 가득찬 살기 어린 칼날에, 아무에게도 길들여질 수 없는 ‘자유로운 새’ 카르멘은 죽음을 맞이한다.

2017년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카르멘 공연 중 호세의 칼날에 죽음을 맞은 카르멘.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사랑에 울고 사랑에 죽는 여자주인공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신파극처럼 억울하게 죽는 여자주인공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 오페라는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여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카미유 생상스의 작품 ‘삼손과 데릴라’의 여주인공인 메조소프라노 데릴라와 마스네의 작품 ‘마농’의 여주인공 마농 역시 프랑스 오페라의 대표적인 팜므파탈이다.

프랑스 오페라의 여주인공이 특별한 매력을 갖는 이유는 시민 혁명을 통해 이룬 피의 민주화로, 사회의 틀을 깨고 태동한 새로운 욕망에 대한 발로 때문이 아닐까?. 남자를 자기 뜻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인생을 망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침없이 죽음으로 이끄는 프랑스 오페라의 팜므파탈은 자신이 원할 때 사랑하고, 싫으면 남성을 버린다. 순종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따라 남자를 대한다. 이렇듯 독하고 이기적인 팜므파탈에게 열광하며 한 번쯤 이런 여자의 노예가 되어보고 싶은 허영심 많은 19세기 프랑스 남성들의 욕망이 오페라 카르멘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당시 대혼란의 시대 반복되는 혁명의 피로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새로운 기류였을까? 아니면 억눌려져 있던 페미니즘의 몸부림일까?

2001년 제주오페라단의 카르멘에 출연한 카르멘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학남과 필자, 필자 제공
오페라 카르멘은 시작 서곡부터 파이널까지 우리 귀에 익숙한 명곡들이 즐비하다. 화려하고 흥겹고 격정적인 음악들로 채워진 오페라 카르멘은 감동과 함께 강력한 에너지를 주는 특별함을 가진다. 오페라 카르멘은 화면을 통해 접하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공연장에서 생생하게 사랑과 죽음의 현장을 직관할 수 있다. 우리는 열정이 가득한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여인인 카르멘의 춤과 노래를 만난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투우사와 조우를 하고 그들의 열정에 취해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오페라를 통해 만나는 음악과 장면이 바로 행복 여행이며 감동의 감로수가 흐르는 마당이다.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시립오페라단을 가진 축복 받은 도시다. 종합예술의 극치인 다양한 오페라를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광주가 문화도시로서 품격을 갖춰나가는 반증이 될 수 있다. 2023년 새 단장을 한 광주문화예술회관의 재개관과 함께 올려질 품격있는 오페라가 기대된다. 뜨거운 열정의 카르멘을 다시 한번 광주 무대에서 만나길 바라며….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추천 음악: 오페라 카르멘 중 아리아 ‘하바네라’ ◇추천 음반: 도이치그라마폰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실황공연 중 메조소프라노 마를린 혼의 연주

하바네라는 쿠바에서 생겨나 스페인에서 유행한 민속 춤곡을 일컫는 말이다. 변덕스러운 사랑에 대해 경고한다.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 새와 같아. 원하지 않으면 불러도 소용없지...’ 노래를 마친 카르멘은 무관심한 돈 호세에게 꽃을 던지고 자리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