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리골레또’.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홈페이지 |
‘팜므파탈(famme fatale)’의 반대어는 ‘옴므파탈(homme fatale)’이다. 사전적 의미로 옴므파탈은 ‘치명적인 남자’로, 저항할 수 없는 특별한 매력으로 상대 여성을 파멸로 이끄는 남성 캐릭터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가끔 청순가련의 여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과거 팜므파탈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과 이러한 이유로 악녀로서 비난의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옴므파탈의 남주인공은 긍정적 시각으로 비춰졌다.
리골레또가 딸을 풀어달라며 애원하는 장면. 출처 2015 대구오페라축제 |
그러면 과연 주류 오페라는 왜 이렇게 반페미니즘적으로 묘사됐을까? 오랫동안 민중들이 가장 사랑했던 오페라는 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남성의 발아래 여성의 순종을 강요했던 것일까? 그것은 오페라를 제작하는 주체를 살펴봐야 한다. 오페라 제작에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대부분 경제적 실권을 가진 남성들의 투자와 그들의 구미에 맞게 제작됐기에 남성 중심의 시각이 오페라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 오페라는 반페미니즘적이며 지금까지 이러한 조류에 여성들조차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 그러나 근래 다수 여성이 작업에 참여하며 기존의 틀에 박힌 작품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다각적인 시도를 볼 수 있다.
오페라 ‘리골레또’ 초연 포스터 |
오페라 ‘리골레또’.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
오페라 ‘리골레또’ 안에는 그 흔한 권선징악도 없다. 수많은 빌런이 난무하고, 그들은 사회의 가장 약자인 여성을 희생시킴으로 희열을 느낀다. 프랑수아 1세를 비판하기보다는 수많은 관객은 공작을 영웅적 호색가로 극찬하기까지 한다. 이 오페라의 진정한 주인공인 바리톤 역 리골레또는 어렵고 강렬한 오페라와 중창들로 작품을 이끌어가지만, 이에 비해 공작은 가볍고 명쾌하며 아름다운 선율로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과거 오페라 리골레또가 세계 극장에서 올려질 때마다, 공작 테너역에 누가 캐스팅됐는가를 주목했고, 멕시코시티의 공작역에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는 열 번 이상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앙코르 연주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만큼 빌런이지만 관객에는 멋진 남자로만 보인다.
작금의 시대, 대한민국 오페라계에는 여풍이 불며 혁신적인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의 주류 세력이 아닌 약자들의 세상을 그린다거나, 프랑스의 팜므파탈 여주인공처럼 여성의 역할 변신이 이러한 예이다. 또한 여류 작곡가와 대본가의 약진과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제작 총괄, 작곡과 연출, 그리고 무대 등에서도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보수적인 음악계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지상 최대의 무대공연예술로 불렸던 오페라계의 침체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했으며 이러한 시도는 융복합 예술인 오페라가 변하는 시대정신을 담는 예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했다.
광주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소극장 오페라부터 여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지고 기획된 작품들이 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변화에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시선과 사상을 탑재한 다양한 도전이 일어났으면 한다. 광주에서 시작되는 오페라의 새 바람을 기대해 본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최철 |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며 호색가의 기질을 볼 수 있는 만토바공작의 모습이 연상되는 곡이다. 잘생기고 멋진 모습 그리고 수려한 언변으로 여성들을 장악하는 그의 모습이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