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8> 역사의 시간을 넘어, 사유의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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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8> 역사의 시간을 넘어, 사유의 시간으로
이선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 입력 : 2023. 02.05(일) 13:54
  • 편집에디터
‘사유의 방’에 나란히 앉은 두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3년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며 쓰는 38화 칼럼의 주제를 고민하며 현대 미술의 영역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문화(文化, culture) ’란? 사회에서 자연의 상태를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으로 의식주를 비롯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재능 많은 토끼의 발랄한 기운처럼 작년에 이어 코로나를 이겨낸 우리 문화·예술계의 다양하고 확장 된 국내외 활동들이 기대가 되는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발표한 신년사에 따르면 K-문화 콘텐츠는 한국 대표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2021년 기준 콘텐츠 수출액은 124억 5000만 달러로 가전제품(86억 달러), 전기차(70억 달러), 디스플레이 패널(36억 달러) 등을 크게 앞질렀다고 한다. 더불어 올해를 관광대국 원년으로 삼겠단 뜻도 강조했다. 2023~2024년 한국 방문의 해가 되어 “관광과 K-컬쳐의 융합, 편리하고 안전한 관광, 매력적인 볼거리 등 민관의 유기적 협력을 이끌어 한국여행을 ‘세계인의 버킷리스트’로 각인 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가장 우리 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는 말처럼 우리 전통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문화재와 국보들은 우리나라 안, 그리고 대한민국 박물관에서 더 정교한 방식으로 만나 볼 수 있고 최근 K-문화 콘텐츠의 붐과 함께 국내외 예술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11월 새롭게 단장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과 ‘사유의 방’ 전시가 화제이다. 이번 전시 ‘사유의 방’ 에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는데 53만명 이라는 관람객의 숫자는 국내 관람객은 물론 국외 관광객까지도 끌어당겨 관람하였다는 결과가 유추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무료 상설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2006년 운영 된 ‘루브르박물관’展을 관람객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은 국립박물관의 최고 흥행 기록 전시회라 할 수 있다.(지금도 진행 중 이다)





‘사유의 방’ 전시장 전경사진.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반가사유상과, 7세기 전반 제작된 반가사유상의 만남을 통해 고전과 역사의 시간을 넘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까지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의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 기획은 실행에 옮기면서 학예연구사, 건축가, 미디어 작가 및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상설 공간 전체를 소극장처럼 디자인하고 연출한 새로운 시도였다. 전시장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글귀가 관람객을 반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공간에서 명상하듯 국보를 감상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 공간에서 만큼은 14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두루 헤아림을 견뎌 낸 금동반가사유상을 마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감상 시간을 만끽하는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의 고려청자는 천년의 신비와 장인정신이 응축된 역사적 보물이라 불린다. 고려인들은 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이라고 일컬었고, 중국인들은 청자의 색을 ‘황제만 쓸 수 있는 비밀스러운 색깔’이라는 뜻의 ‘비색(秘色)’ 으로 불렀다. 고려인들이 ‘숨길 비(秘)’ 대신 ‘물총새 비(翡)’ 를 쓴 건 청자의 원조인 중국보다 오묘하고 청명한 색을 낼 수 있다는 독자적인 자신감에서 비롯하였다.

고려청자 국보 제95호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고려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에 제작된 높이 15.3cm, 대좌 지금 11,2cm 크기의 국보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靑磁 透刻七寶文蓋 香爐)’는 고려 비색 중 으뜸으로 손꼽힌다. 여러 겹의 꽃잎으로 이뤄진 연꽃 위엔 칠보무늬가 섬세하게 투각된 구(球) 모양의 뚜껑이 있고 그 밑에는 앙증맞은 크기의 토끼 3마리가 등으로 향로를 떠받들고 있으며, 회청색 은은한 광택의 유약까지 절정을 이룬다. 이는 상감청자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고려청자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양한 기교를 부린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적인 섬세한 장식이 많은 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이 잘 잡힌 안정감 있는 뛰어난 청자 향로이다. 특히 고전 회화, 보물과 유물 속 토끼의 형상과 이미지는 지혜, 장수, 풍요로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전시장의 관람객들은 “계묘년 새해, 귀한 국보 안에서 토끼를 찾았다” 며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신의 개인sns에 공유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국보 제 97호 ‘청자 음각연꽃 넝쿨무늬 매병’.고려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재공
같은 시기,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은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靑磁陰刻蓮花唐草文梅甁)’이라고도 하며, 12세기 고려시대 대표 청자이다. 높이 43.9cm, 입지름 7.2cm, 몸통지름 26.1cm, 바닥지름 15.8cm의 크기로 연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무늬의 윤관석은 조각칼을 뉘여서 음각하였기 때문에 ‘반양각(半陽刻) 기법’은 문양의 윤곽을 가늘게 음각한 후, 외곽 부분을 깎아내어 양각처럼 보이게 하는 조각 기법으로 처리를 한 것이 특징이다. ‘반양각 기법’은 고려청자의 특징적인 형태로써, 고려청자에 사용된 음각기법은 초기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 무늬였지만,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중엽이 되면서 외곽부분을 깍아내어 양각 문양처럼 보이게 처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빠르게 앞서가는 현대 시대, 바이러스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위드-코로나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연약하게 흩어졌던 것들의 촘촘한 연민적인 연대와 문화적 공동체가 다시금 감동으로 다가올 해가 될 것이라 기대해보며 더 이상 우리 밖의 새로운 것이 아닌,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을 조금 더 찬찬히,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래본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