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돌았기에 온전하고, 굽었기에 곧다(曲則全, 枉則直)(도덕경, 22장). 김상준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팽창 문명에서 내장 문명으로』(아카넷)에서 이 문장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우회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빠르고 마침내 옳은 길을 말하는 것이다.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토끼와 거북이 설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전통사상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음양오행론 중에서 상생과 상극의 길도 또한 그러하다. 천지만물과 우주원리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 나누어 그 이치를 밝혀둔 이론이자 실천방식이다. 일월이니 ...
2023.05.11 10:15쉼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함께 한다’는 의미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로 인식되는가? 아마도 그 답을 찾기 전, 서로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억과 경험들이 요즘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적일 상황일 것이라 생각 된다. 이것은 2020년 코로나(covid-19)를 겪어오며 개인의 삶과 질이 마을의 공동체 보다 더욱 중요하게 된 자연스러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주목하는 올해로 두 번째, 양림골목비엔날레는 ‘마을이 미술관이다’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위드-코로나 시대의 민간과 주민이 함...
2023.05.07 14:17주위에서 오키나와에 간다고 하면, 오키나와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한 마디 씩 한다. 그곳은 꼭 가봐야 하는데 아직 가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거나 홍길동이 건설하려고 했던 율도국이 실은 오키나와를 모델로 했다고 하거나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다가 바람을 잘못 만나 오키나와에 도착했던 적이 역사적으로 많아서 그곳 사람들은 한민족에 더 가깝다거나(피가 섞여서) 제2차 대전 등의 비극을 언급하며 다른 나라와 다른 특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아마도 지리적으로 인접하기도 하지만 지난한 역사가 인지상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2023.04.27 17:34작년 김지하 작고 후, 본지면에 흰그늘의 내력을 썼다(2022. 8. 19). 오늘 다시 소환한다. 먼저 썼던 글을 해체하여 보완한다. 김지하의 흰그늘은 1999년 「율려란 무엇인가」에서 등장한다. 그 이전부터 언급은 있었겠지만, 개념으로 확정한 것은 이때 즈음이다. “중심음 발표하기 이틀 전인데, ‘흰그늘’이라는 말이 자꾸 아른거려요. 이게 뭘까? 그늘의 이중성의 안에서부터 생성되는 무궁 신령한 아름다움, 문채, 무늬야!” 김지하의 『율려란 무엇인가」(1999)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음’이 이후 내내 김지하가 주...
2023.04.27 15:07이팝나무꽃이 피고 있다.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피어난 꽃이 순백색이다.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봄날의 신록을 본 수필가 피천득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다. 남도에는 ‘명물’ 이팝나무가 많다. 순천 평지마을에 수령 4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광양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도 천연기념물이다. 순천 평촌리에도 400살 된 이팝나무가 있다. 장흥 용곡리에는 수령 370년 된 나무가 있다. 해남 맹진리엔 수령 3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
2023.04.27 14:49미국에 의한 불법 도·감청 사건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맹국까지 이루어지면서 한국에서는 주권과 한미동맹 문제를 넘어 한?러 간 새로운 갈등의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불법 도·감청 유출 문서에서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여 지원하겠다는 것이 드러나 있었고, 최근 실제로 국내의 전시비축물자 155㎜ 포탄이 해외로 반출되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유출 기밀문서에는 한국산 포탄 33만 발이 우크라이나로 반출되는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 있었다. 더구나 4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의 로이터와 인터뷰에...
2023.04.27 13:58신기루(蜃氣樓)의 출처, 초원벨트일까 바다섬일까? 신기루(蜃氣樓)는 공중에 뜬 누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래 아바타 시리즈까지 수많은 영화를 통해 형상화된 이미지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대의 감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상상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할 때 흔히 사용한다. 북반구 초원벨트에서는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다. 9개 10개까지 보이기도 한다는데...
2023.04.20 15:04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북촌 너분숭이에 하염없이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연중 관광객들이 넘치는 제주 섬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날씨가 좋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4.3 유적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기는 하지만 웃고 즐길만한 것이 없는 곳이어서 그럴 것이다 한 날 한 시에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다 널려있는 몇 개의 작은 돌무더기 울며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것도 못마땅했나 왜 그랬을까 왜 이 어린애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70년이 ...
2023.04.20 13:55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망라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어디서 약을 팔어?”란 말은 흔히 쓰이고 있다. 상대에게 속임수를 쓰지 말라는 이 어구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검증도 되지 않은 가짜 약을 화려한 말재주로 환자를 속여넘겨서 파는 사람을 향해 하는 말로 진실하지 못한 상대방의 말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과거 30여년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 약장수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동네 공터에서 사람들을 불러 놓고 쇼 등 볼거리를 제공하며 피부병을 비롯해 젊게 해주는 묘약, 만병통치약 등을 소개했다. 요즈음 이렇게 쇼를 펼치며 돌아다니는 ...
2023.04.20 13:41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앞서 반긴다. 수백 살은 들어 보인다. 나무 그늘엔 모정이 들어앉아 있다. 오괴정(五槐亭)이다.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 아래 정자다. 살랑이는 봄바람을 만끽하기에 좋다. 여름날엔 무더위를 식혀주는 쉼터로 맞춤이다.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두 그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나무 아래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어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당산제를 지내고, 건강과 행복을 빌었습니다. 그때가 좋았어요. 맛있는 ...
2023.04.13 14:37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을 두고 우리가 난민과 자발적 이주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서 어떻게 그려야 하는 가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현재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에 인권에 근거하여 난민에 대한 규범적 권리를 가져야 하는 더 넓은 범주의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은 실존적 위협 때문에 탈출하였지만, 국내 구제책이나 해결책에 접근할 수 없는 출신 국가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국경을 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
2023.04.13 13:44오키나와 여행하면 일반적으로 추라우미 수족관, 만좌모 등을 떠올린다. 그 만큼 풍광이 좋다고 하는데, 걸어서 오키나와 한 바퀴를 돌려고 작정한 나도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하 시에서 나고 시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에 보았던 만좌모를 향해 나고 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그 시간이 오후 4시 16분이었다. 120번 버스를 타면 3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좌모(Manza mo, 万座毛)는 18세기 초 류큐 왕이 방문했을 때 만 명도 앉을 수 있는 초원이라고 말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2023.04.13 12:52누가 나에게 ‘너의 안태 고향이 어디냐?’ 라고 물으면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개골 마을이오 하고 대답한다. 안태는 ‘태(胎)’의 남도말이다. 행정명으로는 길은리(吉隱里), 자연마을 이름은 고길리(古吉里)이다. 소포만(灣) 들머리 원둑(堤防)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곳, 1970년대만 해도 골짜기 안쪽까지 모두 천일염 염전이었다. 개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갯골(개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다. 그래서 내 어머니 댁호가 ‘개골네’이다. 잔등(고개) 너머가 ‘용골(龍洞里, 용골짜기)’이고 그 건너편 마을이 ‘원창개(水門, 漕運倉)’와 ‘개들...
2023.04.13 12:51이번주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공식 개막으로 광주의 많은 전시 공간들이 분주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해외 문화기관들이 참여하는 위성전시라고 불리는 ‘파빌리온’ 국가관 전시는 역대 9개국(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중국, 이스라엘, 폴란드, 네덜란드, 우크라이나)의 대표 현대미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 중 2023년 대한민국-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주한 캐나다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캐나다 국가관은 ‘West Baffin Eskimo Cooperative(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어퍼레이티브)’와 광주시 남구 ...
2023.04.03 12:26목포에 양동(陽洞)이 있다. 서양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양리’ ‘양동’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목포부 양동이 됐다. 2007년에 대성동과 목원동으로 나뉘었다. 목포시의 여러 법정동(法定洞) 가운데 하나다. 양동의 상징이 양동교회다. 선교사 유진벨이 1897년에 세웠다. 반도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목포는 뭍과 섬을 오가며 선교활동을 하기에 좋았다. 때맞춰 목포항도 열렸다. 교회는 양동의 언덕에 천막을 치고 시작됐다. 목포는 물론 전남 개신교의 시작이었다. 자연스레 개신교 선교의 근거지가 됐다. 양동교회는...
2023.03.30 1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