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권병안 선생을 기리는 동상과 비석. 권병안 선생은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평지마을의 이팝나무. 속이 썩어 구멍이 크게 뚫렸다. 동공을 막아주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돈삼 |
하얀 꽃이 활짝 핀 평지마을의 이팝나무. 마을과 주변 풍경까지도 환하게 밝혀준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까지도 가붓하게 해준다. 이돈삼 |
남도에는 ‘명물’ 이팝나무가 많다. 순천 평지마을에 수령 4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광양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도 천연기념물이다. 순천 평촌리에도 400살 된 이팝나무가 있다. 장흥 용곡리에는 수령 370년 된 나무가 있다. 해남 맹진리엔 수령 300년 된 이팝나무가 있다. 장성 백양사 쌍계루 앞의 이팝나무도 멋스럽다.
그 가운데 하나, 평지(平地)마을의 이팝나무를 찾아간다. 평지마을은 중대(中垈), 승평(昇平)과 함께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平中里)에 속한다. 평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를, 중대는 담장 터를 가리킨다. 승평은 승주와 평중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풍수지리상 마을에 대장군 혈이 두 군데 있다. 그 중간에 마을이 자리했다. 담을 쌓아둔 것 같다고 ‘담터’라 불렸다. 한자로 ‘장대(墻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중대(中垈)’ ‘상대(上垈)’로 나뉘었다.
‘웃 담터(上垈)’인 평지마을은 승주읍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대왕산(412m) 남쪽 자락이 내려온 구릉지다. 한때 군청의 소재지였다. 1983년 순천시내에 있던 승주군청이 옮겨오면서다. 19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면서 군청 소재지의 기능을 잃었다.
마을에 순천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다. 6.25참전용사 기념탑도 기상대 뒤편에 있다. 국도변엔 독립운동가 권병안(1871-1909) 선생을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선생은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마을 앞으로 호남고속국도가 지나고, 승주나들목이 있다. 순천과 화순을 잇는 22번 국도도 마을 앞을 지난다. 교통이 아주 좋다. 마을에는 30여 가구 50여 명이 살고 있다.
이팝나무가 평지마을 입구에 있다. 마을이 형성될 때 선암사 승려가 심었다고 전한다. 이팝나무는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다. 주변을 돌로 쌓아 높였다. 나무의 키가 16m, 가슴높이 둘레 4m를 넘어 우람하다. 나무는 두 갈래로 나뉘어 키재기를 한다. 하나는 반듯하게, 다른 하나는 다소 비스듬히 뻗었다.
나무에서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윗가지가 부러지고 찢겼다. 줄기도 많이 썩어 구멍이 크게 뚫렸다. 동공(洞空)을 막아주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뚜렷하다. 하지만 나무의 자태는 의연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쁘다. 옛사람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당산나무의 모습 그대로다.
이팝나무 아래에 정자도 멋스럽다. 나무와 정자가 조화를 이룬다. 마을과 논밭이 한데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준다. 햇볕 뜨거운 날엔 마을사람들의 쉼터로 쓰인다. 농촌의 전형적인 당산나무와 정자 풍경이다.
이팝나무 하얀 꽃이 주변을 밝혀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환해졌다.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밝아져 발걸음을 가붓하게 해준다. 마을까지 돋보이게 해주는 나무다.
이팝나무는 ‘쌀나무’ ‘쌀밥나무’로 통한다. 꽃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쌀과 비슷하게 생겼다. 꽃잎이 가느다랗게 네 갈래로 나뉘어 있다. 꽃잎 한 갈래가, 뜸이 잘 든 하얀 밥알 같다. 영락없는 쌀이고 쌀밥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팝나무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듬성듬성 피면 가뭄이나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배를 곯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을 이팝나무를 통해 빌었다.
모든 식물은 수분이 적절히 공급돼야 꽃을 잘 피운다. 꽃을 피우는 때가 이맘때, 못자리를 할 때다. 물이 많이 필요했다. 수리시설은 변변치 않았다. 이팝나무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친 이유다. 물이 넉넉해 꽃이 활짝 피었다고 봤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입하(立夏) 무렵에 흰 쌀밥 같은 꽃을 피운다고 ‘입하목’ ‘입하나무’라는 이야기도 있다. 입하나무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이다. 이름이 ‘이밥나무’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옛날에 쌀밥은 왕족이나 양반들만 먹었다. 이씨(李氏)들의 밥이었다. 벼슬을 해야만 이씨 임금이 내려주는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쌀밥을 ‘李밥’이라 했다.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백성들의 벼슬아치 성토의 뜻도 담겨 있다.
이팝나무에 얽힌 전설도 애틋하다. 꽃 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착한 며느리와 마음씨 고약한 시어머니가 주인공이다. 한 며느리가 집안의 큰 제사를 맞아 쌀밥을 지었다. 오랜만에 쌀밥을 짓게 된 며느리, 걱정이 앞섰다. ‘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시어머니한테 혼나면 어떡하지?’ 밥이 다 될 때쯤, 며느리는 솥뚜껑을 열어 밥알을 몇 개 씹어봤다.
그 순간 부엌으로 들어온 시어머니, 며느리를 크게 꾸짖었다. 너무나 억울한 며느리는 집을 뛰쳐나가 뒷산에 목을 매고 죽었다. 마을사람들이 며느리의 시신을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줬다. 이듬해 봄, 며느리의 무덤에서 나무 한 그루가 올라왔다. 나무가 쑥쑥- 자라 싹을 틔우더니, 하얀 꽃을 피웠다. 꽃의 생김새가 쌀밥을 닮았다. 쌀밥에 맺힌 한으로 죽은 며느리의 넋이 변해 핀 꽃이라는 전설이다. ‘영원한 사랑’을 꽃말로 지니고 있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의 향토수종이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꽃의 향기가 은은하다. 평지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결을 닮았다. 꽃이 떨어지는 풍경도 장관이다. 흡사 눈이라도 내리는 것 같다.
들녘이 봄농사 준비로 분주한 요즘이다. 모내기를 끝낸 조생종 벼논도 있다. 올가을에는 우리 농민들이 일한 만큼 보람을 찾으면 좋겠다. 풍성한 수확 앞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농민들의 얼굴을, 이팝나무 꽃그늘에서 그려본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