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배추. 못생겼다고 ‘못난이배추’로 불린다. 이돈삼 |
느티나무 아래 선 ‘보자기장’. 마을어르신이 푸성귀를 펼쳐놓고 있다. 이돈삼 |
신룡마을 풍경. 멀리 불대산이 보인다. 이돈삼 |
마을회관에서 하는 농촌마을 배움나눔 모습. 어르신들이 천연비누를 만들고 있다. 이돈삼 |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두 그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이 나무 아래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어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당산제를 지내고, 건강과 행복을 빌었습니다. 그때가 좋았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고.” 김재규 이장의 말이다.
담양 신룡마을이다. 1700년대 초 광산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고 전한다. 영산강변에는 청룡, 용산, 오룡, 복룡, 용두, 생룡, 용전, 용강 등 8개 마을이 있었다. ‘팔룡(八龍)’에 또 하나의 용이 더해졌다. 하여, 새로운 용(新龍)이다. 지금은 ‘구룡(九龍)’이 됐다.
옛날엔 영산강을 건너는 나루가 마을 앞에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막도 늘 붐볐다. 하지만 강물의 범람이 잦았다. 일제강점기에 강변을 높이고 둑을 쌓았다.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 물난리가 사라지고, 마음 놓고 농사를 짓게 됐다. 일제는 공출을 핑계로 쌀을 빼앗아 갔다. 옛 기억 속의 이야기다.
신룡마을은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응용리에 속한다. 담양의 끄트머리에서 장성군, 광주광역시와 어깨를 맞대고 있다.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광주광역시와 도계를 이룬다. 마을사람들은 장성과 광주를 넘나들며 마실을 다닌다. 이른 아침과 해 질 무렵 걷기 운동도 매한가지다.
느티나무 아래에 두 어르신이 좌판을 펼쳤다. 앞에는 상추, 쪽파, 대파, 미나리가 보인다. 이맘때 나오는 푸성귀다.
“오늘은 우리 둘뿐이네. 바람이 차가워서 그런가. 어제는 셋이 나오고, 그저께는 다섯이 나왔는디. 놀믄 뭣해? 나옹께 좋은디. 소일 함서 용돈도 벌고, 사람구경도 허고. 기분도 좋아져. 나만 좋카니? 손님들도 싸고, 싱싱하다고 좋아라 해. 믿고 살 수 있다고.” 쪽파를 다듬던 어르신의 얘기다.
장터에서 파는 푸성귀는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것들이다. 계절 따라 갖고 나오는 푸성귀도 다르다. 애호박, 가지, 풋고추, 감자, 콩도 펼친다. 고구마줄기, 늙은호박도 갖고 나온다. 장독의 된장과 고추장을 덜어서 오기도 한다. 조금씩 얹어주는 덤은 기본이다.
“예전엔 어르신들이 광주로 나가셨어요. 시내버스가 서는 데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서방시장, 대인시장으로 가서 팔았죠. 그 시장이 마을에 선 겁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셔요. 보는 저도 뿌듯하죠.” 김재규 이장의 얘기다.
느티나무 아래는 길거리 장터다. 당산나무 장터이기도 하다. 어르신들은 ‘보자기장’이라 부른다. 보자기에 담아서 갖고 나와 판다고 ‘보자기장’이다. 바로 앞 식당의 이름도 ‘보자기’다.
마을에 작은 장이 선 것은 여러 해 전이다. 식당 ‘보자기’가 곰보배추 우렁쌈밥의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부터다. 곰보배추 우렁쌈밥은 여느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식단이 아니다. ‘못난이배추’로 불리는 곰보배추와 우렁이를 이용해 밥상을 차린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도토리묵도 별미다.
곰보배추는 물론 상추, 쑥갓, 치커리도 주인장이 직접 가꾼다. 마늘과 고추도 마을에서 재배한 것이다. 모든 요리에는 곰보배추가 들어간다. 쌈채와 어우러지는 된장에도 곰보배추가 가미된다. 메주를 쑤고 장을 담글 때, 말린 곰보배추를 끓여 넣거나 가루를 넣는다.
곰보배추된장은 양파와 표고버섯, 고추, 우렁이를 더해 만든 우렁쌈장에도 들어간다. 된장국도 곰보배추된장으로 끓여낸다. 된장 고유의 맛이 살아있다. 맛도 개운하다.
누구라도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운다. 더 가져다 먹는 사람도 많다. 과식을 해도 갈증이 나지 않는다. ‘밥이 보약’이라는 옛말을 실감한다. 곰보배추 우렁쌈밥이 보약 한 사발이다.
“향토음식 자원화 사업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손님들이 여기까지 밥 먹으러 올까’ 했는데,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2010년 3월에 문을 열었거든요. 하루하루 바쁜 나날입니다. 장사도 장사지만, 우리 손님을 대상으로 어르신들이 푸성귀를 파는 것도 뿌듯해요. 많은 분들이 찾고, 도와준 덕분입니다.” 식당 ‘보자기’를 운영하고 있는 최미경 씨의 말이다.
‘보자기’ 뒤편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벗어놓은 신발을 보니, 열댓 명은 모인 것 같다. 열린 문 사이로 빼꼼 보니,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며 어깨춤을 추고 있다. 가붓한 걸음으로 들어갔다. 천연비누를 만들고 있다. 만들어 놓은 비누가 굳어지길 기다리며 놀고 있단다.
“농촌마을 배움나눔 지원사업입니다. 농어촌희망재단 지원을 받아서 하고 있어요. 매주 두 번씩 와서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생활용품도 만들고, 공예도 하면서 즐겁게 지냅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박수진 씨의 설명이다.
마을회관에서 나와 골목길로 들어선다. 담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보자기장’에서 푸성귀를 파는 어르신들이 모델이다. 마을회관에서 뵌 어르신의 얼굴도 크게 그려져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 그렸어요. 올해도 그립니다. 꽃길도 만들고요. 꽃길은 하천 정비사업이 끝나면, 천변에다 만들려고요. 천변을 따라 쉼터와 산책길도 조성할 계획입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재능 기부 음악회도 하고요. 무대는 벌써 만들었습니다.” 김재규 이장이 밝힌 올해 마을사업 계획이다. 그는 5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마을에 미술관도 있다. 공예미술관 ‘보임쉔’이다. 보임쉔은 독일어로 작은 나무를 가리킨다. 미래를 생각하는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다양한 전시와 함께 공예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