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 나는 왜 갱번에 주목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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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 나는 왜 갱번에 주목했는가
342. 갱번
  • 입력 : 2023. 04.13(목) 12:51
변산 대항리 앞바다 어살흔적. 이윤선
변산 새우빵. 이윤선
신룡마을 풍경, 멀리 불대산이 보인다. 이윤선
누가 나에게 ‘너의 안태 고향이 어디냐?’ 라고 물으면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개골 마을이오 하고 대답한다. 안태는 ‘태(胎)’의 남도말이다. 행정명으로는 길은리(吉隱里), 자연마을 이름은 고길리(古吉里)이다. 소포만(灣) 들머리 원둑(堤防)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곳, 1970년대만 해도 골짜기 안쪽까지 모두 천일염 염전이었다. 개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갯골(개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다. 그래서 내 어머니 댁호가 ‘개골네’이다. 잔등(고개) 너머가 ‘용골(龍洞里, 용골짜기)’이고 그 건너편 마을이 ‘원창개(水門, 漕運倉)’와 ‘개들이(古野里, 갯들)’이다. 내 고향뿐 아니라 남도에서는 갯고랑을 ‘개옹’이라 하고 바다 전체를 통칭하여 ‘갱번’이라 한다. ‘개옹’의 사전적 풀이는 ‘개울’이다. 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말한다. 하지만 남도 전반에서 조간대의 갯고랑을 이르는 말로 쓴다. 왜 산골짜기의 개울에 대한 호명을 바다의 갯고랑과 혼용했던 것일까. 산에는 산꼭대기가 있고 산골짜기(산골)가 있다. 바다에도 물골짜기(물골)가 있고 물끝이 있다. 물끝은 산꼭대기와의 대칭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고안한 용어다. 썰물 때 조간대 갯벌을 관찰해보라. 실핏줄 같은 갯고랑들이 좀 더 큰 물골을 만들고, 다시 더 큰 물골로 합류하여 조하대(潮下帶)로 이어진다. 역으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갯벌지역은 조상대(바닷물이 튀는 지상 구역)와 조하대(썰물에도 물이 더이상 빠지지 않는 공간)의 중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말이다. 크로시오해류(黑潮)가 그렇고 바닷물이 유입되는 강들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이 보통 그러하다. 이 개옹(물골) 외에는 수심이 얕다. 포구에 배를 바로 댈 수 없다. 배들은 개옹을 따라 뭍에 접근하고 그 물골의 끝자락 어딘가에 ‘배들이’를 마련한다. 그것이 포구다. 하지만 포구마저 접안을 쉽게 허락하지는 않는다. 배가 다닐 수 있는 갯고랑이 물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 의미가 좀 더 확장된 것이 뜬다리(浮棧橋)다. 크고 작은 배들이 해안에 직접 배를 댈 수 없기에 물에 떠있는 다리를 만들어야 접안이 가능하다. 내가 오랫동안 부잔교의 문화학으로 목포의 정체성을 해명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조하대의 물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닷속으로 연결되어 종국에는 대양의 큰 골짜기에 이르고 물끝에 이른다. 크로시오 해류를 거꾸로 놓고 보면 산꼭대기와 물끝의 대칭을 상상할 수 있다. 산과 바다, 뭍과 물의 대칭이 보인다. ‘갱번’에서 그런 생각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주장해온 ‘갱번론’이다. 이 논문을 게재한 것이 2011년 경이었지만 이 사유의 틀을 고안하고 재구성한 것은 훨씬 더 오래되었다(이윤선, ‘영산강의 인문지리와 갱번문화 시론’, 도서문화 38집). 김지하의 흰그늘론을 받아 썼고, 조동일의 대등생극론을 받아 썼다. 사숙의 치밀함이 부족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나같은 개땅쇠들 혹은 이름도 빛도 없던 내 선대들에게는 익히 체화되어있는 생각들이다. 개땅쇠에 대한 오해가 있다. 갯벌을 간척해 땅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들, 혹은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된 이름이다. 하지만 갯벌 자체를 땅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논증하게 되면 지금 표준말 삼는 용어들이 성찰없이 수용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관련한 내용은 따로 마련하여 소개한다. 기회가 되면 시리즈로 설명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남도에서 호명하는 바다의 또 다른 이름

명절날이면 어린 우리는 거제개 갱번으로 갱물을 뜨러 간다. 어머니가 늘 두부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의 대표적인 식품이자 명절의 대표 식품이었다. 콩이 메주를 거치면 된장 간장이 되고 간수(鹽水)를 거치면 두부가 된다. 콩의 두 가지 길이라고나 할까. 우리 고향에서는 갱물을 간수로 사용했다. 이 지점을 주목한다. 김춘수가 그 이름을 불러 꽃이 되었듯이, 두부라는 이름을 비로소 불러준 것은 갱물이다. 김장배추를 씻는 것도 갱물이다. 나는 김치에 대해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갱물은 갱번에서 떠온다. 갱물은 바닷물이다. 바다가 ‘갱’이고 ‘개’이다. 갯벌은 개(바다)의 벌(들)이라는 뜻이다. 갯벌과 개펄 두 가지다 모두 표준말로 취한다. 일반적으로 남도 전 지역에서 ‘갱번’, ‘갱변’, ‘갱븐’, ‘갱빈’, ‘갱본’, ‘갱핀’, ‘갱편’, ‘개’, ‘강갱’, ‘강경’, ‘개뿌닥(갯바닥)’ 등으로 호명한다. 이중 서남해지역의 주된 호명이 ‘갱번’이므로 이 용어를 취할 뿐이다. 남도 전역을 훑어보면 갱번보다는 갱변의 용례가 더 많아 보인다. 그래도 갱번을 취한다. 내 고향의 호명 방식이기하고 무엇보다 영어로 표기할 때 Geng+bone이라는 유용함이 있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갯벌의 표기가 우리말 ‘Getbol’이다. 장차 갱번을 유네스코에 지정하거나 혹은 세계 자연사나 문화사에 편입시킬 때 Geng(바다)과 Bone(뼈)이라는 이미저리가 유용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해명한다. 갱번론에 대해 이십여 년 가까이 발설해왔음에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나의 조잡한 해명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쓰고 또 쓰고 하는 모양이다. 오늘 칼럼도 저간의 ‘갱번론’에 대한 재해명이다. 관련하여 방대한 논의를 일삼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전부 불러들일 수도 없다. 대개 이런 내용의 이야기들을 지명 전거를 들어가며 자세하게 설명하는 발표를 한다. 홍보하자는게 아니고 남도인문학과 갱번론이 사실은 한뿌리의 다른 말이라는 점에서 관심있는 분들이 계실 것이기에 굳이 밝혀둔다. 수백개가 넘는 갱번관련 지명도 설명한다. 4월 15일, 목포대학교, 무형유산학회 주최다.



남도인문학팁

갱번문화권에서 길어올린 갱번론

갱번은 ‘강변(江邊)’에서 온 말이다. 왜 그러한지 두고두고 출처를 밝히려 한다. 이름뿐만이 아니다. 관념이나 신앙으로 재구성된 사람들의 마음이 ‘갱번’이라는 이름 속에 광범위하게 스며있다. 심도있는 문학, 유학, 철학의 단계에 이른 논의들도 방대하다. 사람들이 미처 갱번과 연결하지 못했을 뿐이다. 갱번은 우리 사유의 폭을 넓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식 학문이 아니다. 서양 어떤 이론가를 따라서 하는 이론도 아니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길어 올리는 이론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아우른다. 내가 지향하는 학문하기 방식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대대(對待)의 사유로 풀어 설명한 것이 내가 얘기해온 ‘갱번론’이다. 이 사유는 산골의 고랑과 물속의 고랑을 동일하게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아니라,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 산과 물 즉 뭍과 물은 서로 대칭(對稱)하고 치환(換置)하며 대대(對待)한다. 적어도 갱번문화권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대극의 위치에 놓는 것이 아니라 대칭의 위치에 놓는다. 하루에 두 번씩 같은 공간이 땅이 되었다가 물이 되는 것을 체화해왔기 때문이다. 바다와 내륙을 인식했던 서긍의 교묘한 시선을 끌어와 설명해도 좋다. 그 사유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갱번이다. 지난 오랜 시간 갱번론을 말하면서 이를 상극의 원리로 풀어 변증법에 비유하고 상생의 원리로 풀어 주역의 대대성(對待性)에 비유해왔다. 경상도 산골 태생 조동일의 대등생극론과 전라도 갱번 태생 김지하의 흰그늘론을 풀어 ‘갱번론’을 말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두 분은 우리 삶의 풍경 속에서 문화 독해의 절묘한 이론을 길어올렸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단순히 이들을 잇고자 함이 아니다. 내것과 우리것으로 사유하기 혹은 철학하기가 긴요한 시대다. 어렵지 않다. 이미 내 속에 우리 속에 체화된 마음을 끄집어내면 된다. 내가 표방하는 남도인문학의 마음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