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조석간만의 갯벌 현상과 신기루에 대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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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조석간만의 갯벌 현상과 신기루에 대한 상상
343. 신기루
  • 입력 : 2023. 04.20(목) 15:04
신학철의 그림 신기루-우리역사넷에서 캡처
신기루(蜃氣樓)의 출처, 초원벨트일까 바다섬일까?



신기루(蜃氣樓)는 공중에 뜬 누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섬 라퓨타> 이래 아바타 시리즈까지 수많은 영화를 통해 형상화된 이미지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고대의 감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상상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할 때 흔히 사용한다. 북반구 초원벨트에서는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다. 9개 10개까지 보이기도 한다는데 우실하 교수는 이를 환일(幻日)현상이라고 해석하고 그간의 2수분화와 3수분화 문화론을 재구성한 바 있다. 순우리말로 ‘무리해’이니 ‘해 도깨비’다. 아침 햇빛과 얼음 결정이 굴절되어 나타나는 기상 현상이다. 항아의 남편 예(羿)처럼 해를 쏘아 떨어뜨리는 동아시아의 신화들이 이 현상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기루라는 말의 출처는 바다 안개(海霧)에 있다. 신기루의 신(蜃)자가 큰 조개를 말하기 때문이다. 무명조개 혹은 이무기라고도 한다. 대합조개, 큰조개까지 포괄한다. 왜 조개를 들어 신기루라는 개념을 꾸며냈을까? 조개는 갱번(남도사람들이 이르는 바다의 총칭) 그중에서도 주로 갯벌에 서식한다. 갱번은 지난 칼럼에서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했다. 남도뿐만 아니라 갯벌을 전유하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공유하는 호명이다. 산에 난 산골짜기에서부터 바다 깊숙한 물골짜기까지 강변(江邊)의 맥락으로 범칭된다. 개별 명칭들은 다른 듯하지만 맥락은 모두 강변이다. 한국지명총람을 보면 책 한 권도 부족할 만큼 용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확인해두어야 게 있다. 신기루라는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근원적인 공간이 갱번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신기루의 조개가 갯벌에 서식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얘기다. 나는 이를 토폴로지와 인문지형의 맥락에서 풀어왔다. 토폴로지(topology)는 도형의 위상적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 용어다. 갱번이란 용어가 채 착근 되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내가 빌려온 말일 뿐 차차 우리말로 고안해 나간다.





떠다니는 섬 신기루와 유토피아



신기루는 동아시아 전반을 횡단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늦은 봄날 비가 오기 전에 넓은 갯벌의 바닷조개가 기운을 토해 커다란 공중누각을 세운다는 상상이 그 중심에 있다. 신루(蜃樓), 혹은 신기루(蜃氣樓)라 했다. 이를 다룬 작품들을 신루기(蜃樓記)라 한다. 동아시아 전역의 문학적 소재로 차용되어왔다. 조선시대에도 신루기(蜃樓記)류의 작품들이 광범위하고 꾸준하게 창작되어왔다. 진민희의 「조선조 신루기 작품군 연구」(『민족문학사연구』, 2017)에 의하면 오랜 시간 특정 지역의 여러 작가가 신루기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신루기라는 소재가 가지는 특수성이며, 착상의 출발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작품들 내에 엄연한 유형적 규범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형적 규범성과 착상의 출발점이 어디일까? 주장대로 고대 중국에서 발현하여 우리나라와 동아시아로 확산되었을까? 글쎄다. 신기루에서 출발한 동아시아 해양신선 문화의 요소는 삼신산, 불로초, 신선, 해양, 조개, 꿩 등에 남아 있다. 정용수는 「동아시아 해양신선문화의 성립과 그 경로」(『동양한문학연구』 2010)에서 말하기를, 이게 발해만 근역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 남해안이나 일본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한다. 삼신산과 신기루가 나타날 원초적 공간으로써 그것을 생기게 한 바닷가 조개 생산지를 찾을 개연성 때문에 고안한 생각으로 보인다. 대합조개가 기운을 토하여 누대(樓臺)를 만들었다는 해양신선 문화를 이해했을 때 그 의미가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는 서술이 이를 말해준다. 있음과 없음을 교직하는 상상력을 갱번에서 찾는 내 주장에 한 발 더 다가선 논의다. 그것이 어디 발해만(渤海灣) 뿐이겠는가. 신기루의 조개는 발해와 황해, 서남해 전반에 걸쳐 리아스식 해안의 갯벌과 갱번에 다 유효한 상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심청이가 백령도의 인당수에 빠질 수 있으며 서복이 동남동녀를 데리고 서해 곳곳에 출몰하거나 홍길동이 신기루보다 더 이상적인 율도국을 건설할 수 있었겠는가.



있음과 없음의 토폴로지, 조동일의 생극(生剋)론에서 나의 갱번론까지



이 상상들은 얼토당토않은 관념이 되거나, 이야기로 꾸며내거나 하다가 이윽고 조선시대의 유교철학에 스며들기도 한다. 공중누각으로 은유된 신루, 신기루는 율곡 이이의 학술과 인품을 평가하는 후학들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김경호의 「공중누각과 율곡 이이」(『양명학』, 2017)에 의하면, 공중누각을 소재로 하여 이이의 사유와 그의 학술적 졍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북송대 이후 형성되었던 신유학의 전통이 조선사회에 수용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중심적으로 거론하는 이가 소옹이라는 인물이다. 이이는 소옹의 기상론을 수용하면서 상관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사유를 전개하였다. 소상한 내용은 차후를 기약한다. 위 인용한 분들이 나와 전공이 달라 서로 간섭하는 관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나 또한 그 이전부터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논설해왔다. 졸고 「서남해연안 최치원설화의 수용관념과 문화코드」(『남도민속연구』 2009)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삼신산 설화와 동아시아의 유토피아다. 유학자들이 말한 이상세계와 신기루를 끌고 온 것이 홍길동의 율도국이고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영화 빠삐용이나 혹은 소록도 등의 유배와 격리의 섬들이다. 율도국이 유토피아라면 예컨대 신학철이 그린 신기루는 디스토피아다. 관련한 철학을 본 지면에 풀어 쓴 것이 ‘생극(生剋)의 한반도(2018. 6. 15)’이다. 이 논의를 창안한 조동일은 지금 대등 생극론으로 나아갔고, 나는 갱번론과 물골론을 창안하여 해경표에 이르렀다. 신기루에 대한 상상을 끌어오는 이유가 있다. 바다 안개 혹은 환일현상을 뛰어넘는 얘기다. 하루에 두 번씩 물과 땅을 반복하는 조석간만의 갯벌현상에 더 근원적인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남도인문학팁

신기루의 조개와 꿩 이야기

진민희를 좀 더 인용해 신기루의 출처를 명확하게 해둔다. 조개 신(蜃)에 대한 가장 오래된 사유는 『예기』 「월령」 「맹동」장 제10조의 “물이 얼기 시작하고 땅이 얼기 시작하면 꿩이 바다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라는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주나라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땅에서는 꿩이 칩거하여 세상에 보이지 않게 되고 대신 바닷가의 성근 조개가 보이니, 꿩이 바다로 들어가 조개로 변했다고 상상한 것이다. 우리나라 『장끼전』 결말에도 이런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다음 해 삼월 봄이 되니 아들딸 혼인 시키고 자웅이 쌍을 지어 명산대천으로 노닐다가 시월이라 십오일에 양주부처 내외 자웅과 함께 큰 물속으로 들어가 조개가 되었다.” 장끼전에 대해서는 따로 지면을 내서 소개한다. 지금 내 시선은, 조개의 서식처 갱번과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마음, 떠다니는 섬들을 포착한 상상력과 조선유교의 철학으로 스며든 맥락, 오늘날 우주를 유영하는 각양의 영상콘텐츠들, 그 착목(着目)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