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현 감독 ‘파묘’.㈜쇼박스 제공 |
![]() 장재현 감독 ‘파묘’.㈜쇼박스 제공 |
비행기 안 비즈니스 석에 무당 이화림(배우 김고은)과 제자 윤봉길 법사(배우 이도현)가 앉아 있다. 승무원이 일본어로 와인을 권하자 화림은 유창한 일본어로 응수하며 한국인이라 말한다. LA 공항에 마중나온 회계사가 자신의 고용주이자 화림의 의뢰인에 대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막강한 부자’라 말해준다. 그들이 곧바로 향한 병원에는 이마에 센서를 붙인 갓난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병으로 입원 중이다. 갖은 치료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종국에는 무당을 불러들인 것이다. 화림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고 봉길은 부적 주머니를 아기의 배 위에 올려놓고 경문을 왼다. 화림은 아기엄마와 집사에게 아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같은 증상을 보일 것이라 말하자 의심을 품었던 이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확 바뀐다.
의뢰인의 저택으로 이동하는 길에 화림의 독백이 이어진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어둠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귀신, 악마, 도깨비, 요괴… 그들은 언제나 밝은 곳을 그리워하며 질투하다 아주 가끔, 반칙을 써 넘어오기도 한다. 그때 사람들은 날 찾아온다. 음과 양, 과학과 미신. 바로 그 사이에 있는 사람.” 의뢰인 박지용(배우 김재철)과 함께 앉아 있는 거실, 2층에서 노인의 고함소리와 물건을 던져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이런 일이 일상이라는 듯한 가족들의 반응과 함께 의뢰인이 설명한다.
형이 정신병원에 있다 자살했는데, 그때부터 자신과 갓 태어난 아들에게 눈을 감으면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목을 조르는 병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3대에 걸친 장손에게 닥친 이 화를 두고 화림은 “묫바람”이라 확언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화림은 거액의 이장비용을 지관 김상덕(배우 최민식)과 장의사 고영근(배우 유해진)에게 제안한다. 상덕은 현지답사 후, 단박에 거절한다. ‘처음 보는 악지 중에 악지’라서. 지용의 설득과 화림의 대살굿과 함께 하자는 제안에 따라 결국 파묘를 시행한다. 서울 사는 지용의 고모(배우 박정자)는 100년 전 작고한 부친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유일한 인물. 그러나 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국면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는 뭔가 복잡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분위기, 개인사인듯 민족사인 듯 보다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는 과잉이 느껴져 장을 구분하지 않으면 감상하기 버거웠을 법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 6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4장 동티’로부터 장르가 확 바뀐다. 앞부분이 오컬트라면 뒷부분은 크리처라 뒷부분으로 갈수록 공포가 첩첩이 엄습해든다. 생각해보면, 파묘란 집안의 역사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장을 위해 파묘하는 일은 살면서 한두 차례는 보아왔을 법한 일이라서. 이는 풍수지리이자 샤머니즘이 동반된 우리 민속문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감독은 샤먼을 대표하는 인물로 할머니신역에 무속인 고춘자를 캐스팅했다. 일본 귀신 오니도 이 할머니신에게는 못 당한다.
오니는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하지만, 한국 혼령들은 아무리 험해도 자신에게 관계된 해당자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 귀신은 염치가 있는 편이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감독의 의중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 일제에게 충성했던 친일파로서 작위와 훈장을 받고 대대손손 부를 누리는 상황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면 영화로라도 혼을 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윤봉길 의사, 독립운동가 김상덕, 여성 항일운동가 이화림, 개화파 고영근 그리고친일파 배정자 등의 이름을 감독이 따왔다. 파묘 3인방의 차량번호가 0815, 0301,1945인 것 또한 그 의도를 단박에 읽을 수 있게 한다. 관 쪽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포스터가 한반도 모양인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파묘할 것이 남았다는 얘기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