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박안수>아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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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전일광장·박안수>아 하얼빈!
박안수 경제학박사·칼럼니스트
  • 입력 : 2025. 02.10(월) 18:06
올해는 푸른 뱀띠 해로 을사년(乙巳年)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0년 전(前)인 1905년도 을사년이었다.

어쩐지 ‘을사년’이라고 하니까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많이 들어 익숙한 기억이 있다.

이때 나라를 일본에 강제로 넘기는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찬동했던 을사5적(敵)을 우리는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으로 칭한다.

이들은 모두 지금의 장관직을 수행한 사람들이고 대표적인 친일파라고 할 것이다.

당시 일본대표가 막무가내로 합방을 강요한 ‘늙은 여우’ 또는 ‘늙은 늑대 우두머리’에 비유한 악명 높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우리말에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 는 ‘을씨년스럽다.’ 는 말이 있다.

어원이 바로 을사늑약으로 당시 백성들이 몹시 혼란스럽고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로 많이 슬프고 실망스러운 언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설 긴 연휴기간 동안 무려 130만 명 이상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그 중 거의 절반(약43%)에 해당되는 여행자가 바로 일본여행을 다녀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여행은 개개인의 사정과 자유이겠으나 진정한 사과를 받질 못했고, 계속적인 원전폐수 방류와 타결은 되었다고는 하나 지소미아, 백색국가 해제 등 여전히 부정적 여론이 잔존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2025년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해에 우리 독립운동의 무대였던 하얼빈에서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려 더욱 뜻 깊고, 우리 선수단이 안전하게 대회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 한다”며 “문체부도 선수들이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다 하겠다”고 했다.

우리 선수단은 6개 종목 총223명이 출전하는데 종합순위 2위 목표로 선전을 기대해 본다.

하얼빈시(市)는 중국의 10번째 큰 도시로 인구가 약 1000만명에 이른다.

하얼빈은 본디 고구려와 발해의 우리영토일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주무대로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는 만주벌판에 위치하며 민족에게 아픈 상처와 동시에 익숙한 지역이다.

요즘 극장가에서 우민호감독 영화 ‘하얼빈’이 상영 중이다. 영화는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7일 동안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리는 영화이다.

대한의군 안중근(현빈 역)중장의 하얼빈 의거를 재조명한 영화로 성공확률은 매우 낮았고, 수많은 어려운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던 내용을 그린 영화이다.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영화의 대사 중 기억나는 대목인데 대한독립에 대한 굳은 의지의 애국심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주제가 다소 무겁다 보니 아직 영화 관람객이 500만명을 넘어 서질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 제작비가 무려 300억원 정도 투자되었다고 하니 손익분기점(BEP)을 맞추기 위해서 최소 580만명 정도를 극장가로 불러 모아야 한다.

그토록 을씨년스러운 시대의 독립운동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해 보인다.

몇 해 전 안중군의사 일대기와 이토 히로부미 저격과 관련된 김훈작가 장편소설 ‘하얼빈’ 이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뮤지컬 ‘영웅’ 공연이 이어지고 있으며 2022년 뮤지컬형식영화 ‘영웅’ 이 개봉되어 많은 관람객의 사랑을 받았다.

한편, 한국전쟁이 치유도 되기 전(前)인 1955년 안중근 의사의 후손이 없어 제사도 못 지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장흥군 죽산안씨 문중과 장흥지역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해동사(海東祠’)라는 사당을 짓고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뿐만 아니라 의향(義鄕)·문향(文鄕) 장흥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가 중국뤼순(旅順)감옥에서 서거(逝去)한 매년3월26일을 기하여 참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역만리(異域萬里) 중국하얼빈에서 순국한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서울효창공원 안중근의사 가묘는 우리국민 가슴을 아프게만 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안중근 의사 순국일인 3월26일과 3·1절을 즈음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을씨년스러운 역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