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진 작가 개인전 ‘오라, 나의 영토로’가 서울 일원에서 펼쳐진다. 사진은 지난 5일 해당 전시가 개막한 서울시 강남구 DB금융투자 알파플러스클럽 현장. 갤러리초이 제공 |
![]() 허진 작가 개인전 ‘오라, 나의 영토로’가 서울 일원에서 펼쳐진다. 사진은 지난 5일 해당 전시가 개막한 서울시 강남구 DB금융투자 알파플러스클럽 현장. 갤러리초이 제공 |
허진 작가 개인전 ‘오라, 나의 영토로’는 앞서 지난 5일 개막해 다음달 29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DB금융투자 알파플러스클럽에서 열리며 동명의 전시가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서울시 마포구 갤러리초이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두 전시에는 신작을 포함해 각기 다른 작품 15점씩 총 30점이 자리한다.
허진은 소치 허련부터 시작해 남농 허건으로 이어지는 남도 남종화의 전통 화맥 한 가운데 서 있는 화가다.
그는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 수제자이자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며 근대 남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장손이다. 호남 남종화의 원류, 운림산방의 맥을 잇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 운명인 것이다.
이렇듯 남종화 선조 대가들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의 붓끝에서 피어난 전통을 답습하지 않는 화법이 인상적이다. 대표 연작인 ‘유목동물’과 ‘이종융합동물’은 인간과 자연, 문명과 야생, 과거와 현재의 뒤엉킴 속에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그가 그려낸 사물들은 인간을 단순화시켜 실루엣으로 표현하나, 동물과 문명의 흔적들을 세밀하게 병치해 우리가 잊고 있던 존재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일깨워 낸다. 인간의 본성과 진화하는 문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체험케 하는 셈이다.
![]() 허진 작 ‘유목동물+인간-문명’. 갤러리초이 제공 |
허 작가는 당시 한국화의 현장에서 고답적 엄숙주의와 근본주의를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체계적인 변모를 모색했다. 서양의 화법이나 구조와 뒤섞이기 시작하면서 구체제의 화면을 부정해야 할 전환의 시점에 놓인 것이다.
이때 전통의 계승과 전위적 혁신의 경계 속에서 내려진 허진의 미술적 선택은 한국화의 혁신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는다.
그의 데뷔작 ‘묵시’는 기존의 전통적인 문인화풍의 탈속적이고 고립적인 화면에 대한 질타와 외침으로 여겨진다. 종이의 성질을 다양하게 활용한 선묘와 선염, 여러 화면 조각을 조합해 구성한 이 작품은 당대 한국화 전시에선 보기 힘든 실험적 시도였다.
이후 펼쳐낸 ‘다중인간’, ‘익명인간’, ‘익명동물’, ‘유목동물’ 등은 역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배후로 후퇴시키면서 인간-자연-문명에 대한 관계적 해석을 모색한 결과물들이다. 이같이 상호간섭과 충돌, 융합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작품 속에 구현한 허진의 미술 세계관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허진을 두고 “수묵전통과 채색전통 모두를 절충하는 화면으로 하나의 경향에 치우침이 없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진경(眞景)을 창출해 냈다”고 평한다.
이건수 미술비평가는 “허진의 그림들은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표출된 번짐(발묵)과 깨짐(파묵)의 역동성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 요소와 미시적 요소를 동시에 지닌 ‘다양성의 통일’이라는 질서와 조화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허 교수는 서울대 예술대학 미술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0년 개인전 ‘묵시’로 등단하며 데뷔했다. 이후 개인전 37회를 열고, 단체전에 600여회 참가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 우수상, 2001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관광부), 제19회 허백련미술상 본상, 용봉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학장을 역임하며 미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