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노래 연주자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 난 것은 임뿐이라~ 보고 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 공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유장한 선율이 광주전통문화관 서석당을 잔잔하게 울렸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있는 '쑥대머리' 대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선율이 마치 시조와도 비슷하고 우리 전통의 가곡, 가사와도 비슷하다. 반주악기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악기편성 가믈란이다. 우리의 징과 비슷한 악기(공이라 한다)를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으로 놓고 치는 주물 악기는 물론 우리의 고대 북을 닮은 듯한 너비가 기다란 북, 우리의 편경이나 편종을 연상하게 하는 크고 작은 악기들의 편성이 이채롭다. 우리로 치면 '궁중음악'이나 '삼현육각 잡힌다'라고 하는 악기편성을 닮았다. ...
편집에디터2021.11.25 13:52산지천. 차노휘 18번 코스는 제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간세라운지에서 시작하여 사라봉정상(망양정), 곤을동 4·3유적지, 화북포구, 삼양검은모래해변, 불탑사, 신촌포구, 연북정을 거쳐 조천만세동산에서 끝난다. 나는 이 코스를 세 번에 걸쳐 천천히 걷기로 한다. 빠른 내 발걸음이지만 이야깃거리가 많은 이 길이 나를 붙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른 아침 편의점 덱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커피를 다 마신 인부차림의 남자가 지나가면서 말을 남겼다. "예전에는 이곳이 엄청 부자 동네였어요. 요즈음은 다들 바닷가로 나가니 구도시가 되었죠. 명맥만 '제주시 중앙로'라는 명칭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장남에게는 중산간 밭을 주고 차남에게는 해변가 검멀레를 주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뒤바뀌었죠, 뭐." 남자의 말 때문일까. 급할 것 없는 걷기인데 마음은 어서 걷고...
편집에디터2021.11.18 15:40나주 동강 옥룡마을 할머니들의 한다리만다리. 이윤선 "한다리 두다리 거청대청/ 어록저록 막대 짚고 건네가/ 느그 삼촌 어디가 지장밭에 총 노로가/ 까투리 한나 투드렁 퉁 땡" 2002년 한 해 동안 목포대학교신문에 내가 연재했던 '영산강 민중생활사' 중 한 꼭지다. 명산나루 건너고 잿빛 물비늘 따라 영산강을 치올라 가면 강이 막힌 듯 다시 이어지는 곳, 곡강의 끄트머리 봉추와 옥정리, 장동리, 그리고 더 멀리 곡천리 등이 크게 에워싸고 있는 곳이 있다. 그 가운데 마을 몽송리에 들렸다. 90이 훨씬 넘거나 혹은 80객, 아니면 70객이다. 여기서 60객은 그야말로 청춘이다. 당시 영암댁으로 불리던 박청명(78세)씨, 가장 총(聰)이 좋은(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때때로 기억나는 옛노래들을 부르며 유년의 창을 두드리곤 했다. 그녀에게 노래는 타임머신이었을까. 열여...
편집에디터2021.11.18 16:14비트. 색깔이 빨갛다고 '빨간 무'로도 불린다. 이돈삼 김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배추밭. 배추가 튼실하게 자랐다. 이돈삼 벼 수확을 마친 들판이 황량해졌다. 볏짚을 한데 뭉쳐놓은 곤포 사일리지가 허전함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단풍 든 나뭇잎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산하가 초겨울을 향하고 있다. 튼실하게 자란 배추와 무, 비트 등 남새는 김장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스산한 바람이 서성거리는 들판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나비'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전라남도 함평군의 나산면 초포리다. 함평이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불갑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해보천이 고막원천과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초포리는 초포, 사촌, 환곡, 사산, 입석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옛날에 작은 포구가 있던 곳이라고 초포, 모래밭이 있었다고 사촌, 옥(玉) 고리의 모양새라고 환곡,...
편집에디터2021.11.18 16:17중국 연변 창극단 출범식. 이윤선 전통적인 판소리나 그 형식을 빌려 만든 가극(歌劇)을 창극(唱劇)이라 한다는 점 지난 연재에서 소개해두었다. '소리극', '뮤지컬' 등을 포괄한다. 하지만 '판소리극'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판소리를 기저 삼고 있는 노래극인데 왜 판소리를 걸어 호명하지 않았을까? 판소리 발생 300여년, 창극 발생 100여년, 수많은 호명들이 이 장르를 수식했다. 민요창극, 악극, 가극, 가곡, 국극, 여성국극 외에 딸딸이, 포장극장, 나이롱극장, 약장수극장 등을 포함 시킬 수 있다. 그 시초에 협률사라는 100여 년 전의 구성물이 있다. 20여년 전 내가 진도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민요창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노래극을 만든 적이 있다. 자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졸고, 「민요창극을 통해서 본 지역문화콘텐츠 포지셔닝-진도에 또 하나 고려 있었네를 사례로...
편집에디터2021.11.11 16:43언제부터 창극(唱劇)이란 장르가 생겨났을까? 창극은 문자 그대로 창(唱)과 극(劇)의 복합 장르다. 창은 판소리를 가르키는 말이고 극은 연극을 말한다. 판소리로 하는 음악연극이라는 뜻이겠다. 오늘날로 말하면 뮤지컬이니 음악극이니 하는 따위가 이 범주에 속한다. 20여년 전 내가 진도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민요창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노래극을 만든 적이 있다. 극본은 고 곽의진 작가에게 맡기고 노래는 유장영 감독에게 맡겼는데, 내 의도는 판소리가 아닌 진도의 민요를 매체 삼아 연극을 꾸며보자는 것이었다. 방송 등 언론에서...
편집에디터2021.11.04 15:3116코스 단애산책로 바람 따라 걷는 제16코스 제주올레를 만들면서 롤모델로 삼았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걷다보면 몇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800km 정도 되는 거리를 한 번에 완주하려는 사람(거의 한 달 걸린다)과 걷고 싶은 구간만 걷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걸어서 완주하려는 순례자이다. 후자인 경우는 지리적 접근성이 좋은 유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시도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휴가를 걷는 데에 기꺼이 투자한다. 나또한 제주 올레를 걸을 때 지리적 접근성의 용이함(?)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코스를 이어나갔다. 2020년 12월 30일부터 2021년 1월 4일까지 제1차 걷기를 시작으로 2월 5일부터 2월 15일까지는 제2차, 제3차는 10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였다. 아직 완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올레를 걷고 있는 셈이다. 그...
편집에디터2021.11.04 15:29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머물다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흔적을 남긴다. 일터도 그렇고, 잠 자리도 그렇고, 쉬어가는 자리도 그렇다. 하지만 어떠한 동물보다도 욕심이 많아서 인지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는 유난히도 요란하고 너저분하다. 특히 먹이를 먹고 난 자리가 더욱 그렇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 인간은 욕심많고, 나약하면서도 포악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그 먹이와 그걸 먹고 떠난 빈 자리다. 한 무리와 일을 하다가 때가 되어 식당에 들렸다. 별 생각 없이 이것 저것 주문해 ...
편집에디터2021.11.11 16:16금남동 거리. 금남동은 곳곳이 문화재이고,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이돈삼 나주는 한동안 여행객들의 마음에서 밀려나 있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음에도 크게 단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웠던 나주가 남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르고 있다. 나주는 오래 전 전라도의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이었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羅州牧)이 913년 동안 유지됐다. 이 기간 나주목사 306명이 부임했다. 나주를 '천년고도', '목사골'로 부르는 이유다. 나주는 북한산과 한강을 배산임수 지형으로 삼은 한양에 빗대 '작은 한양'으로 불렸다. 뒤로는 금성산을, 앞으로는 영산강을 두고 있다. 당시 나주는 인구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나주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세금을 많이 ...
편집에디터2021.11.04 15:41사람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넓은 바다를 날아야 모래 위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들이 오가야 그것이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있네. 이것은 노래일까 시(詩)일까? 음악일까 문학일까? 아니면 음악이나 문학이라는 장르일까, 사회현상으로서의 행위일까? 국립국악원에서 펴내는 '국악누리'에 올해 1년간 연재를 했다. 그 마지막 질문을 이렇게 던졌다. 독자들을 향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 자 남도발라드 가수 김정호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위 밥딜런의 노래, 아니지 시(詩)들을 줄곧 묵상해왔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를 노래로 호명해야 하나, 문학으로 호명해야 하나. 마르셀 그라네는 이렇게 얘기한다. "...
편집에디터2021.10.28 13:32가을이 깊어가는 날 무등산에 올랐다. 천 미터가 넘는 산이 이렇게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광주시민들의 무등산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립공원이 되고나서는 외지인들까지도 붐빈다. 산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장불재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다. 억세밭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눈길을 피해야 하는 것처럼. 하늘에는 구름들의 유희도 장난이 아니다.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을 때 입석대의 돌기둥들이 보였다. 가까이 가기 보다는 그 자리 그대로 있고 싶어진다. 만 리 변방의 잃어버린 신전이 바로...
편집에디터2021.10.28 09:06국내 최고의 사립 미술관, 삼성 '리움미술관'이 지난 10월 8일에 재개관했다. 표면적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으로 공식 휴관했다가 1년 7개월 만에 문을 여는 것이다. 해외 유명 예술가들이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리움(LEEUM)에 꼭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을 정도로 세계적 명성(리움로망)을 가졌으며 그 자체로도 리움은 한국 미술계의 대표 문화예술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칼럼의 주제였던 세계적 기증 '이건희 컬렉션'의 이야기 이후, 최근 리움미술관의 재개관 역시 동시대 현대미술계 현장에서 예술의 다각적 이슈라는 공통점을 던져준다. 이번 리움의 재개관은 2004년 설립 이후 '리움미술관'이 17년 만에 내부 전시장 리모델링은 물론 자체 운영 프로그램 및 방향과 정체성 등을 재정비하고 끊임없는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도약하겠다는 슬로건을 제시하였다. 홍...
편집에디터2021.10.24 17:08고대도 귀츨라프 선교기념비와 기념비문, 이윤선 1816년 바질할 대령과 머레이 멕스웰의 영국 국적 군함 프리키트함 알세스트호(Alxeste)와 범선 리라호(Lyra)를 최초 영어성경 전래사건으로 비정한다. 16년 후, 귀츨라프의 애머스트호를 한문성경 전래와 실질적인 최초의 개신교 전도라고 한다. 지난 칼럼에서 이를 다루었는데 한 페친으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제너럴셔면호 사건과 대동강변 순교로 알려진 1866년 토마스 선교사의 한문성경 전래 이야기다. 이때의 성경을 어떤 병사가 벽지로 사용했다가 전도로 이어졌으며 개신교에서는 이를 큰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정보였다. 당시 서구의 침략에 분노한 조선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짚어두고 싶은 것은 귀츨라프 일행이 도착했다는 정박지다. 이를 두고 충남 원산도와 고대도 간 다툼이 있었다. ...
편집에디터2021.10.21 16:27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아픈 역사입니다." 김부겸 국무총리의 말이다. 김 총리는 지난 19일 여수에서 열린 여순사건 73주기 합동위령제 겸 추념식에서 이같이 말하고,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추념식은 지난 6월 여순사건특별법(여수·순천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처음이자, 정부가 주관한 첫 번째 행사였다. 여순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다. 처음엔 14연대 군인들의 반란이었다고,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다. 지금은 여순사건, 여순항쟁 등으로 ...
편집에디터2021.10.21 16:29한담산책로. 차노휘 1) 올레에 대한 믿음 15번 코스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한림항에서 중산간을 거쳐서 고내포구로 가는 A코스(16.5km)와 서해바다를 끼고 고내까지 가는 B코스(13km)이다. 나는 두 길 모두 걸었다. 짧은 기간 안에 올레 스탬프 완주만을 목적에 둔다면 한 군데만 가면 된다. 이미 두 군데를 걸어본 나는 어느 한 곳도 지나칠 수 없었다. 또한 올레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 믿음이란 그 지역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을 선택해서 기꺼이 도보여행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배려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 중산간으로 가는 A코스를 걸을 때는 내내 비가 왔다. 비는 풍경을 더욱 생생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늘 배낭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던 우비의 존재감을 드러내준다. 배신도 있다. 방수가 된다는 신발이 그 역할을 다 하지 못...
편집에디터2021.10.21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