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임방울→ 남진·나훈아 신드롬→ 트로트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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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임방울→ 남진·나훈아 신드롬→ 트로트 열풍
트로트  ||김정호 ‘남도 발라드’ 가수 송가인은 ‘남도 트로트’ ||2021년 옥스퍼드 사전 소개 “한국 트로트는 반복적 리듬 ||감정적인 가사가 특징 한국 전통창법과 ||일본, 유럽, 미국 대중음악 영향을 결합”
  • 입력 : 2021. 10.28(목) 13:32
  • 편집에디터

사람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넓은 바다를 날아야 모래 위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들이 오가야 그것이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있네.

이것은 노래일까 시(詩)일까? 음악일까 문학일까? 아니면 음악이나 문학이라는 장르일까, 사회현상으로서의 행위일까? 국립국악원에서 펴내는 '국악누리'에 올해 1년간 연재를 했다. 그 마지막 질문을 이렇게 던졌다. 독자들을 향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 자

남도발라드 가수 김정호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위 밥딜런의 노래, 아니지 시(詩)들을 줄곧 묵상해왔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를 노래로 호명해야 하나, 문학으로 호명해야 하나. 마르셀 그라네는 이렇게 얘기한다. "오늘날 채록된 객가(客家, 중국 광동 북부 한족의 일파) 가요 가운데 어떤 노래는 적어도 삼천여 년 전에 이루어진 '시경'의 어떤 구절을 쏙 빼닮았다. 그렇지만 객가가요는 '시경'을 베낀 것이 아니다. 둘 다 비슷한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읊은 것이고, 객가 사람들은 틀림없이 삼천여 년 동안 해마다 비슷한 시구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습도 줄곧 되풀이되어 온 창작을 통하여 이어져 왔다. 관습은 이전에 비슷한 관습이 존재했다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관습을 끊임없이 사실의 조건에 결부시키는 관계를 보임으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마르셀그라네,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살림, 2005, 12쪽)." '시경'의 절반이 넘는 이 노래들을 「풍요(風謠)」라 한다. 주지하듯이 풍요는 그 지방의 풍속을 읊은 노래다. 우리의 민요(民謠), 중국은 민가(民歌), 일본은 가요(歌謠)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민요(民謠)라는 용어가 창조된 것은 약 100여 년 전이다.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의 민예(民藝)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 민담, 민구, 민풍, 민속 따위의 시대적 요청 혹은 호출에 의한 작명이다. 신라 향가나 고려가요도 이 범주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시대마다 지역마다 결이 다르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일어난 현상 중 하나다. 민족이라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지점에 '민요'라는 개념이 서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트로트는 왜색이기에 비판받아야 하고, 부르지 않아야 하는가.

시경 표지(한국학중앙연구원)

음악사회, 문학사회, 예술사회

이런 물음에 아도르노의 언술 한 대목을 빌려오는 것이 유용하다. "음악을 원인이 되는(causative)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음악과 사회'라는 문구에서 '과(and)'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 대신 음악을 사회적인 것의 표명으로 바라보고,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것을 음악의 표명으로 바라보는 것이다(중략). 따라서 음악은 사회적인 것에 대한 것도 아니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야기된 것도 아니다. 음악은 우리가 엄연히 사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의 일부이다. 음악은 사회생활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것이다(티아데노라, '아도르노 그 이후', 한길사, 2012, 314쪽)." 아도르노의 언술에 빗대어 말한다면 문학 또한 사회와 분리되는 게 아니다. 어디 음악이나 문학뿐이겠는가. 예술이 그렇고 경제가 그러하며 정치가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본 지면을 통해 몇 번 소개했던 송가인신드롬, 트로트 열풍도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이 신드롬 전후하여 한국사회는 트로트 열풍에 휩싸였다. 우후죽순 관련 프로그램과 이벤트들이 생겨나 인기몰이를 했다. 광적인 팬덤에 대해서는 본 지면에 묻지마라 갑자생부터 그 배경을 분석한 바 있다. 이같은 현상이 근자에 돌출되거나 기획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마도 산업사회로 진입한 이후, 대규모 산업과 집약 노동, 축음기로부터 이어지는 미디어 기술의 활성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판소리로 말하면 임방울 신드롬, 가요로 말하면 이미자 혹은 남진과 나훈아의 신드롬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밥딜런의 노래는 대중음악 장르로 분류된다. 대중음악 중에서도 싱어송라이터다. 흔히 음유시인이라고 호명하는 것은, 이 노래의 문학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왕의 문학인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은 음악과 문학의 전체(종합)적 맥락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것은, 지금 당연시되는 장르 혹은 분야들에 대한 성찰이다. 국악의 범주에 포섭되는 장르들을 포괄해서 말이다. 예컨대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발생하고 유통되어 이른바 클래식한 권위를 획득한 것은 고작 300여 년이다. 국악의 민간 전통 중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는 판소리는 소설보다 역사가 더 짧다. 가곡, 가사 등 국악이라는 이름의 여러 장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새로 구성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법고창신이다. 트로트 가사는 어떨까? 중요한 것은 그라네의 지적처럼 현재의 조건에 결부시켜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관습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傳統)이란 개념이, 전통(傳通)의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했으되 통(通)하지 않으면 악습이나 폐습일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일련의 트로트 열풍을 풍요(風謠)라는 맥락에서 추적하고 분석하는 중이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람(風) 노래(謠)' 즉 유행가다. 트로트라는 장르 혹은 양식이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한 기제를 넘어,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음악사회 자체라는 점에서 그렇다. 판소리를 전공한 수많은 이들이 트로트 경연에 출연하거나 다양한 음악적 조합을 시도하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일종의 '흐름'과도 결부된다. 국악 관련 전문가나 애호가들이 왜색을 들어 비판하고 부정한다고 해서 이 팬덤을 막거나 방해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나는 김정호를 '남도발라드', 송가인을 '남도트로트' 가수로 호명하고 있다.

에세이 송가인이어라 표지

남도인문학팁

풍요(風謠)에서 가요로, 민요에서 트로트로

지난주 '일제강점기의 잔재, 일본노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란 주제로 한국민요학회가 열렸다. 나는 '트로트 열풍의 음악사회사적 의미'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왜색만을 볼 것인가 서구음악의 영향을 받아 재구성된 음악 자체를 볼 것인가의 문제들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지만, 트로트 팬덤을 형성하는 현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트로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민요를 승계한 노래다. 내가 주장하기 이십여 년 전부터 장유정 교수가 주목한 맥락이기도 하다. 최근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장유정, 따비)'을 출판하기도 했다. 김병오 교수가 발표한 '자메이카 레게(유네스코 무형유산 지정)와 트로트의 비교' 논문이 흥미로웠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면을 달리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다. 나는 내달 초 중국사회과학원 주최 국제학술포럼에서 이 주제를 좀 더 심화시켜 발표한다. 트로트를 서민문학의 한 장르로 포섭하는 일련의 과정이랄까. 2021년 옥스퍼드 사전에 26개의 한국어 단어가 추가되었다. 트로트(tort)도 포함되었다. 장유정 교수가 번역한 설명을 소개해둔다. "한국의 대중음악 장르인 '트로트'는 반복적인 리듬과 감정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의 전통창법과 일본, 유럽,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을 결합했다. 초기 사용에서 트로트 음악, 트로트 노래 등과 같은 수식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음악의 장르는 한국의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장유정,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표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