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현 취재2부 기자. |
모두가 즐거운 5월을 보내고 있을 때, 매년 슬픔에 젖는 이들이 있다. 1980년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연인을 잃은 유가족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광주 시민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국가의 잔혹한 탄압에 한순간 삶을 잃었다. 행상을 뒤로하고 팔던 먹거리를 나눠주던 어머니,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투쟁하던 대학생, 전역한 예비군 등은 모두 죄 없는 우리 이웃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는 ‘광주 오월 지겹다 이제 그만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없는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그만둘 수 있을까.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은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나라에 자식을 뺏겨 평생 카네이션 한 장 받아보지 못한 부모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정부가 주관한 5·18 민주화운동 행사에서 엉뚱한 인물의 사진이 사용되는 등의 촌극이 이어지는 상황에 당사자들 마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의 영령을 달랠 길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부터 공약으로 내걸었던 ‘오월 정신 헌법 전문수록’도 이번 기념식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이제 오월이 ‘비극의 서사’가 아닌 희망의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를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매년 찾아오는 가정의 달을 군경에 의해 강탈당한 이들의 처절한 소망이다.
최근 5·18 시리즈를 기획·취재하며 만난 한 오월어머니는 취재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남편 죽을 줄 알았다면 솔직히 거리로 안 보냈어. 그때 군경이 총을 쏴불고 곤봉으로 두들길 줄 누가 알았당가. 투쟁 나간다고 했을 때 뭐라도 하나 더 챙겨줄걸 하고 속앓이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 밑에 자식들 키우느라 젊을 때는 티 한번 못내봤어. 눈떠 보니 40년이 지났는데, 이제사 뭘 한다고 해봐도 잘 안돼. 그래도 죽기 전까지는 꼭 그날 거리에 있던 모두가 존중받고 존경받는 모습 보고 가고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