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여명의 사하라에서 만난 비극,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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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여명의 사하라에서 만난 비극, 그리고 희망
마테오 가로네 감독
‘이오 카피타노’
  • 입력 : 2024. 08.12(월) 17:20
마테오 가로네 감독 ‘이오 카피타노’. (주)태양미디어그룹 제공
마테오 가로네 감독 ‘이오 카피타노’ 포스터. (주)태양미디어그룹 제공
마테오 가로네 감독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감독이라 그의 작품 ‘이오 카피타노’는 매우 신선한 연출력을 볼 수 있었다. 마테오 가로네(55)는 어쩌면 감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배우 안드리아노 리몰디, 영화평론가인 아버지와 포토그래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환경부터 그랬다. 예술대학 졸업 후 20대에 화가로 활동하다 단편영화‘실루엣’(1996)으로 황금 사케르 상을 수상하면서 본격 영화감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를 이룬다.

이후의 작품들이 칸 영화제나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심사위원대상 등 굵직한 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입지를 굳힌 감독이다. 감독의필모그래피 중 가장 반응이 좋은 ‘고모라’(2008)와 ‘도그맨’(2018)이 언제쯤 국내에 수입이 될는지 필자로서는 기다리는 중이었다. 감독의 최근작 ‘이오 카피타노’는 가로네 감독의 커리어로 보아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히 다져왔던 다습적인 예술성을 총집대성할 만한 시점의 작품이라는 면에서 영화관을 찾을 만했다.

아프리카 세네갈에 사는 16세 소년 세이두(배우 세이두 사르)는 가난하지만 엄마와 여동생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동갑내기 사촌 무사(배우 무스타파 폴)와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곡을 쓰며 예술가로서 빛나는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성장기에 처한 어린 나이답게 이 두 소년은 유럽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황당한 꿈을 품고 유럽으로 밀입국하는 계획을 세운다. 엄마 몰래 막노동하며 모은 돈으로 마침내 가출을 결행하지만, 여정은 그들의 예상과 전연 다르다. 그들에게 닥친 위험은 사막도 파도도 아닌 인간이었다.

영화는 이 두 소년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순서대로 잔잔하게 보여준다. 세네갈에서출발해 시칠리아에 도착하는 전 과정이 시간과 공간의 흐름대로 그려진다. 그러다 보면 관객은 이 소년의 경험을 하나씩 체감해가며 어느덧 공감의 영역에 발을 디뎌가는 로드 무비에 동참하게 된다. 감독의 첫 장편인 ‘이민자들의 땅’(1997)과 두 번째 영화 ‘손님들’(1998)에서 처럼 이민자 문제를 정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날 선 비판적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경륜은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다큐멘터리적 표현과 함께 후반기 작품들에서 보여왔던 리얼리티 미술의 화려함, 우화적인 영화적 상상력을 보태 이 둘의 대비를 미학적으로 재구성, 아름다운 미장셴으로 발현하고 있다. 그렇게 이 작품은 비극적 현실과 아름다운 상상력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부지불식간의 괴리를 통해 비극과 슬픔을 더 큰 감정으로 객석에 스며들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아프리카라는 땅이 갖는 여러 의미가 엄습해 들었다. 가없이 아름다운 태초의 신비로운 자연을 품은 땅. 이 땅이 인간을, 특히 소년이 갖는 순수함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이 땅의 순수를 오염시키는 선진 문명과 자본주의. 경찰도 국가정부도 오염되었다면 무정부주의와 정체불명의 마피아 집단들이 난무하게 된다. 그들의 비극인 노예의 역사가 인신매매로 이어져 아직도 답습중이라는 안타까움도 이 땅에는 편재한다. ‘내가 아프리카에 살지 않아서, 불법이민의 수단을 선택할 만큼 삶이 절박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겨질 만큼 아프리카는 불법이 난무하고 인간을 짐짝이나 노예 상품,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묘사하는 무간지옥으로 비친다.

동시에 여명의 사하라 사막에 남기는 인간의 발자국은 천상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 신이다. 돈 앞에 끝을 모르는 인간의 사악함에 맞선 소년 세이두의 순박함, 난민들 간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시종일관 대비시키며 영화는 선과 악, 미와 추를 동시에 보여준다. 간난고초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 영화에 담긴 희망이다. 고통과 간난, 절망이 클수록 이 희망은 더욱 소중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잔영이 쉬 사라지지 않는다. 잔영 역시 조화롭게 선과 악을 오간다. “어느 누구도 죽지 않을 거예요.”를 외치는 순박한 눈동자의 세이두가 쉽지 않은 이민자의 삶 속에서 끝까지 인간성을 지켜 나가길 바라는 염원이 자연스레 인다. 천사 컬렉션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천사의 날개가 지푸라기인 것도 아프리카적이라 인상적이었다. 이태리-벨기에-프랑스 합작영화이지만 아프리카적인 것을 존중하는 자세로 수용되었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