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지방도의 상마도, 중마도, 하마도(육지쪽이 백방산, 출처 abot 섬) 복사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해남과 진도를 가르는 만호 바다에 일군의 섬이 떠 있다. 세 마리의 말을 닮았다 해서 삼마도(三馬島)라 한다. 모양만으로 지어진 이름일까? 해남 화산 중정리라는 마을에 말이 울었다는 마명산(馬鳴山)이 있다. '물이 운다' 혹은 '돈다'는 울돌목(한자 표기로 鳴梁이라 한다)을 연상하게 해준다. 명량(鳴梁)해협으로 이름 나 있는 해남과 진도의 좁은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마치 말이 건너뛸 만한 거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말이 날아갈 만한 거리일 수도 있고. 해남 화산에서 진도로 날아가기를 시도했던 이 말은 날개가 없었던지 아니면 힘이 부쳤던지 바다 중간에 떨어지고 말았다. 섬의 탄생설화에 자주 나오는 흐르기, 날아가기, 멈춰서기 등의 코드다. 떨어졌으니 ...
편집에디터2019.11.06 12:27해남 갈대밭 2019. 10월, 이윤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 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 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잊혀진 계절, 박건호가 노랫말을 짓고 이범희가 곡을 붙여 이용이 불렀다. 본래는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고. 조영남과 계약이 틀어져 가수 이용에게 넘어가면서 시월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나. 언제부턴가 계절가(季節歌)가 되어버린 명곡이다. 2007년 타계한 작사가 박건호를 추적해보니 실제 9월의 마지막 밤 연인과 헤어지던 심경을 읊은 노래라 한다. 낙엽 내리는 시월의 마지막 밤으로 바뀌었으니 오히려 이별의 정한(情恨)을 높여주었다고나 할까. 가을을 애수(哀愁) 혹은 우수(憂愁...
편집에디터2019.10.30 13:32재원도 군도 풍경 큰 섬 안의 작은 섬, 그 안의 한 세계 '허사도', '진아섬', '비개섬', '뛰섬', '노래기섬', '갈미섬', '칡섬', '치마섬', 무수한 이름들이 이어진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섬 이름들, 부남군도를 이루는 섬 이름이다. 부남군도? 생소한 이름을 뒤적이니 재원도의 부속 섬임을 알겠다. 재원도는 또 어디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섬들의 행렬, 신안군 임자도에 딸린 섬이다. 큰 섬 안에 작은 섬이 있고, 작은 섬 안에 또 작은 섬이 있다. 진도의 조도(鳥島)가 마치 새떼들이 내려앉은 모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듯, 영락없이 크고 작은 새떼의 형국이다. 내가 수십여 년 남도의 섬을 찾아 답사를 했던 이유를 톺아본다. 그곳에 각각의 세계가 있었다. 크고 작은 유인도와 무인도들, 각각의 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하늘이 있고 ...
편집에디터2019.10.23 13:01바람의 계절 곧 지날 것이다. 필부들 노래했듯, 한 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모퉁이 돌아드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 졸이는 그 두려운 마음 담아 신풍서기(新風棲記)를 삼는다. "매번 바람이 서남쪽으로부터 불어와서 계곡을 진동시키고 숲을 흔들며 모래와 흙을 날리고 물결을 일으켜서 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갔다. 문을 밀치고 문설주를 스치며 책상을 흔들고 방석을 울려서 윗목 아랫목 사이에 항상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손책(孫策)이나 이존욱(李存勖)이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까마득히 넓은 들판에서 싸움을 벌일 때, 외로운 성과 보루가 그 날랜 선봉 부대를 딱 맞닥뜨린 형세였다. 온 힘을 다해 적의 예봉을 막지 않은 채 군대가 지나가도 베개를 높이 베고 즐겁게 지낼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집이라 이름을 붙였다." 김매순(金邁淳, 1776~1849)이...
편집에디터2019.10.16 14:52민속마을로 이름 난 진도군 소포리 민속전수관에서 노래하는 아주머니들 혼자 부르는 노래와 여럿이 부르는 노래에 주목하는 이유 중장년층에게는 노래방 풍경이 낯익다. 술이라도 한잔 걸친 상태라면 더욱 흥겹다. 마이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일종의 겨루기다. 봄, 가을에 연행하는 야유회, 소풍놀이 등도 포함된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풍경은 더욱 선명해진다. 노래 경쟁은 인류 보편이다. 경쟁은 경쟁이지만 싸움하고는 다르다. 이 상황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술이 '겨루기'와 '끼어넣기'다. 이 논의는 혼자 부르는 노래와 여럿이 부르는 노래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내가 연구한 바로는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 등에 이 노래겨루기를 통해서 혼인에 이르는 풍속이 잔존한다. 베트남 북부에도 일정한 날을 정해 연인들이 함께 만나 노래하고 춤추는 풍...
편집에디터2019.10.10 09:43제17호 태풍 '타파'(TAPAH)가 북상 중인 지난 9월 22일 부산지역에 태풍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에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뉴시스 태풍을 타고 날아온 소금비(鹽雨) 짜디짠 비가 억수로 내렸다. 바람 또한 크게 일었다. 솟구쳐 오르는 파도가 하늘 끝에 닿았는지 모르겠다. 그 끝으로부터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비는 차라리 바닷물이었다. 염우(鹽雨), 곧 소금비가 이내 갯자락 들판을 뒤덮어버렸다. 다산시문집 제17권 기사로 풀어본 풍경이다. 소금비, 이로 인한 피해를 염해(鹽害) 혹은 염풍해(鹽風害)라 한다. 근대기에는 제방의 붕괴 등으로 인한 바닷물 침수 탓이 크지만 본래 태풍 따위의 영향을 말한다. 바닷바람이 실어온 소금물인 셈이다. 토양뿐만 아니라 물까지 오염시킨다. 그 피해가 막심하다. 대개 소금비를 맞은 식물은 잎이 말라죽고 수목까지 고사한...
편집에디터2019.10.02 13:21Japan Monthly Web Magazine 아키타현의 도깨비 축제(나마하게 마쯔리) 일본의 아키타현에 나마하게(なまはげ)라는 신격이 있다. 딱히 대입할 만한 우리 신격은 없다. 다만 나마하게 자체를 오니(鬼)로 인식하기 때문에 굳이 비교한다면 도깨비다. 2018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나는 10여 년 전 아키타현은 물론 홋카이도에서 큐슈까지 오니 관련 답사를 한 적이 있다. 아직 논문으로 제출한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현지 정보들을 갈무리해두었기 때문에 차차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키타현 오가시(男鹿市)에서 대표적인 축제를 한다. 날짜가 바뀌기 전에는 원래 정월 15일 밤에 빨강과 파랑의 무서운 가면을 쓰고 몸에는 짚으로 엮은 '케데'를 두른 나마하게들이 호호방문을 했다. 양발을 크게 구르며 큰 소리로 외치는 등 겉으로는 위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키타...
편집에디터2019.09.25 12:58진도 지산 소포리 아랫당제 중국 남도(南島)의 성소(聖所)와 신격(神格) 오래 전, 내가 집중적으로 답사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중국에서 가장 섬이 많은 지역이 주산군도(主山群島)다. 북경을 기준 삼으면 남도라 부를 수 있다. 이곳 승사도(嵊泗島)와 사치도(蝦峙島), 보타도의 사묘(寺廟)들을 2년여 조사 연구했다. 동중국의 섬 밀집지역에 있는 섬들. 우리처럼 공도정책 이후 입도자들에 의해 재형성된 곳이다. 승사 열도의 역사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명나라와 청나라 초기 두 번의 큰 이민이다. 명나라 홍무 20년(1387)에 황제 주원장이 해금정책을 추진했다. 명나라를 반대하는 해상 세력을 완벽히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전면적으로 해상 무역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 관리를 실시하여 해외 무역정책을 경영했다. 그 이후 이민자들이 입도조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주산군도 승사...
편집에디터2019.09.18 14:02으레 추석이면 송편을 빚는다. 조리하는 것이 아니다. 담그는 것도 아니다. 짓는 것도 아니다.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도자기 따위를 만드는 일, 송편이나 만두, 경단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음식 자체보다는 형태나 형상에 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에밥과 누룩을 버무려 술을 만들 때도 빚는다 한다. 어떤 현상이나 결과를 만드는 것을 이르는 용어로도 쓴다.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빚다'의 용례가 보인다. 적어도 600여년 이상 사용해온 말이다. 도자기 등 어떤 형태를 빚는 것, 술을 빚는 것과 송편을 빚는 것, 어떤...
편집에디터2019.09.10 11:06남도의 땅끝들 수정문 밖 썩 나서, 고고천변 일륜홍 부상으 둥실 높이 떠, 양곡의 잦은 안개 월봉으로 돌고 돌아, 어장촌 개 짖고 회안봉 구름이 떴다. 노화는 눈 되고, 부평은 물에 둥실. 어룡은 잠자고 잘새 펄펄 날아든다. 동정여천에 파시추 금성추파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을 탕탕. 요리저리 저리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동정, 사면 바라보니 지광은 칠백리요 파광은 천일색인데, 천외 무산 십이봉은 구름 밖으 가 멀고, 해외 소상의 일천리 눈앞에 경이로다. 오초는 어이허여 동남으로 벌였고, 건곤은 어이하야 일야으 둥실 떠, 남훈전 달 밝은듸 오현금도 끊어지고, 낙포로 둥둥 가는 저 배, 조각달 무관수는 초희왕의 원혼이요~. 단가, 가야금병창으로도 불린 판소리 고고천변(皐皐天邊) 담양사람 박동실의 애제자였던 광주사람 한애순 명창의 수궁가 중 '고고...
편집에디터2019.09.04 14:07전남대 호남학연구원의 호남학 표지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원에서 펴내는 '호남문화연구'(2019년부터 '호남학'으로 변경)가 주목된다. 호남이라는 용어를 표방한 대표적인 연구단이 펴내는 학술지라는 점에서 그렇다. 2013년에 5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호남학 연구 50년의 성찰과 전망을 주제로 내세운 바 있다. 여기에서 호남의 문학과 민속, 역사와 사회, 철학과 사상, 문화와 예술, 도서문화 연구, 지리산권 문화연구, 전북지역 연구, 제주지역 연구 현황과 국제화 방안을 도출했다. 2019년 현재 65호까지 발간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외의 성과까지 갈무리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인문한국사업을 시작하면서 마련한 '감성연구'도 2019년 19집을 모집 중이다. '감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HK(Human Korea, 국립한국학연구소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인문한국사...
편집에디터2019.08.28 13:24'남도인문학'을 주창하고 기획칼럼을 써온 지 4년이 지났다. 100회분을 중심으로 남도정신이란 무엇인가, 광주정신이란 무엇인가 등을 소결로 다뤘다. 왜 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들 그리고 여성의 이름을 표방했는지에 대해. 개펄과 남도산하의 풍광을 들어 이야기와 노래와 몸짓들을 이야기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기왕의 철학론이나 문학론을 고수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래로부터의 사람 사랑에 대한 휴머니즘을 말하게 했는지를. 권위 있는 인물이나 치적 높은 작품들을 거론하기보다는 촌부 아버지의 구릿빛 피부와 흥그레타령...
편집에디터2019.08.21 11:121973년 5월. 진도의 어느 마을 노래판, 이토아비토 촬영 민요(民謠)라는 용어는 언제 생겼나 한자어 '민요(民謠)'는 성종실록에 한 차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민요'보다 '민속가요'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세종실록, 성종실록, 중종실록, 명종실록, 효종실록에 각 1회씩 5회 출현한다. 지배 권력을 갖지 못한 백성들이 불렀던 노래를 지칭하는 개념어는 민요가 아닌 '이요(俚謠)'였다. 속된 노래라는 뜻을 갖는 '이요'는 한자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글로 지어 부른 노래를 지칭하는 말이라 해석된다. 배인교가 '일제강점기 민요의 개념사적 검토'라는 논문에서 자세하게 논의해 두었다. '민속가요'를 굳이 분해하여 해명해본다면 속가 혹은 민요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요'로 호명되던 노래가 어찌 민요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는가. 선학들, 이구동성으로 주장한 바는 192...
편집에디터2019.08.07 14:05지난 2010년 6월 16일(이하 한국시간)오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G조 북한과 브리질의 경기가 열렸다. 북한 정대세가 국민의례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자이니치 정대세의 눈물 축구선수 정대세의 눈물을 재소환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북한대표로 출전하였다가 브라질과의 경기 직전 흘린 눈물. 이 의미를 분석한 논문이 흥미롭다. 다소 길지만 박보현'정대세의 눈물읽기: 블로그를 통해 본 그 의미 해석',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2012)를 다시 인용해본다. "첫째, 자이니치의 눈물이다. 남한도, 북한도, 그렇다고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일본에도 적을 둘 수 없었던 자이니치(在日)의 고달픈 삶과 일본 사회 속 차별과 배제를 대변한다는 해석이다. 자이니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을 선택한 것을 재일 조선학교를 ...
편집에디터2019.07.31 11:211970년대 생활옹기를 실어나르던 옹기배 모습, 사진 이토 아비토 제공 무안 몽탱이 돌꾸쟁이 나루에서 서서 돌꾸쟁이 나루 앞 장엄하게 굽이쳐 흐르던 영산강은 더 이상 미동이 없다. 속절없는 시절만 간다. 그래서일까? 그 많던 고기들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흐름이 끊어졌을까. 영산강가에서 만났던 일군의 할머니들이 하소연하시더라. "몽탱이 옹기 배가 나댕기지 않는데, 머할라고 그 강이 흐를것이여!" 몽탱이란 무안군 몽탄면을 현지에서 부르는 말이다. 그렇더라. 영산강이 흐르는 이유는 옹기배들이 나다니기 때문이었다. 마치 새벽닭이 울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듯이, 옹기배가 끊긴 영산강은 이제 더 이상 흐를 이유가 없어져 버린 셈. 내가 구술 받은 지가 벌써 이십여 년 전이니, 옹깃배 끊긴 얘기는 거의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철거되어 자갈만 남은 철로변의 ...
편집에디터2019.07.24 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