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의 천년고찰 백련사(白蓮社) 동백림에서 동박새 한 마리가 동백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빨고 있다. 뉴시스 가위눌린 꿈, 카오스의 동굴로부터깊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시야가 미치는 공간으로만 빛이 들어왔던 것 같다. 동굴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좁고 긴 터널 같은 그 공간에 새 두 마리가 서 있었다. 까마귀 혹은 까치, 그 나이에 인식했던 날짐승들의 총체였을까. 그 새가 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꿈은 스스로의 예지를 그리고 욕망을 투사하는 것이겠기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동굴 속에서 시작한 나의 울음은 급기야 현실로 돌아와 계속되었다. 어린 가슴을 쥐어짜는 울음소리에 늙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놀라 깨셨다. "아가 어찌 그러느냐. 나쁜 꿈을 꾸었느냐?" 아버지는 나를 다독이셨다. "이런, 가위 눌렸구나" 어머니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한동안을 그렇게 울었던 ...
편집에디터2019.04.03 13:48산무도적(山無盜賊), 도불습유(道不拾遺), 산에는 도적이 없고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일조차 없다. 홍길동의 율도국(栗島國) 얘기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형조판서인 대사구(大司寇)로 있을 때 한 말이다. 공무원들이 정치를 잘 해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법을 잘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적은 누구인가? 대대로 권력을 승계 받아 이익을 갈취하는 탐관오리들이다. 종교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민중을 현혹하는 지도자들이다. 노력한 대가(代價)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능력을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권력자가 혹여 떨어뜨린 부스...
편집에디터2019.03.27 14:58미크로네시아 핑글랩 아일랜드 아이들의 스틱댄스 재현 장면. 필자 제공 망망대해 태평양 한가운데, 고대 해상 유적 난마돌(Nan Madol)이 있다. 미크로네시아 수도 폰페이 남쪽의 테먼(Temwen) 섬에 소재한다. 내가 답사한 2013년, 거의 주목되지 않은 유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92개의 인공 섬으로 이루어진 해상 건축물이다. 서기 500년에서 1500년까지 약 천 년 동안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주민족이 세운 사우델레우르 왕조(Saudeleur Dynasty)의 수도라는 것 외에는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매우 미스테리한 해상 유적이다. 이스터섬의 거석처럼 세계의 불가사의로 분류해야 할까. 누가 이 바다 위에 돌 구조물을 축조하였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인돌...
편집에디터2019.03.20 11:02목포시 항운근로자복지회관옥상에서 본 목포 내항과 유달산. 목포시 제공배들은 쉽게 포구에 닿지 않았다. 바람과 파도가 많은 날은 더욱 그랬다. 다리가 필요했다. 수줍은 연인 마냥 손을 잡아줄 그 누구, 혹은 무엇인가 필요해서였을까. 문학적 수사 말고 이 관계를 어찌 적절하게 풀어놓을 수 있으랴. 포구 교량, 나는 이렇게 비유하곤 했다. 부잔교(浮棧橋)의 문화학, 물 위에 떠 약간씩 흔들리는 이 시설에 대한 기억은 종종 나를 있음과 없음을 교통하는 세계까지 이끌곤 했다. 물상의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교직의 세계라고나 할까. 눈을 감으면 아스라이 보이는 것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부잔교를 목포권 문화 수렴과 발산의 메타포로 해석해왔다. 언제나 흘러나갈 태세인 양 물 위에 떠 있는 부유물로서의 정체가 그렇고, 항구에 붙박아 구속당해 있는 신세가 그렇다. 그는 말없이 떠서 ...
편집에디터2019.03.13 14:39갈마설화 조형물을 세워놓은 삼향읍 왕산 포구 나주 삼향포에 몸을 던진 사람들임진왜란, 충민공 양산숙 일가의 살신성인 얘기가 전해온다. 양산숙은 양응정의 아들이다.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과 함께 진주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이어진 정유재란, 양산룡은 김천일을 도와 의병에 가담하였다. 역부족이었다. 가족들을 피신시키고자 나주 삼향포(지금의 무안 삼향읍)에 이르렀다. 뱃길로 막 떠나려 하는데 왜적들이 나타났다. 그와 어머니 박씨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1635년(인조 13) 나라에서 제각을 지어 찬양했다. 광주 광산구 박효동 양씨삼강문이 그것이다. 양산숙, 양산룡, 양산수, 아들 형제의 어머니인 죽산 박씨, 누이인 김광운의 처 양씨, 양산숙의 처 광산이씨 등을 모셨다. 삼향포에서 왜적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찌 ...
편집에디터2019.03.06 13:16거꾸로 본 동북아지도. 서해와 동해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내해로 위치하고 있다. 동북아 문화정책 연구소 제공 1997년 6월 15일 뗏목 한 척이 중국 절강성 닝뽀(宁波)를 출발했다. 이름은 '동아지중해호', 17일 만에 전남 흑산도에 도착하였다. 해류와 바람만을 의지한 원시적 항해였다. 중국 동남부 해역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이 길을 사단항로라 한다. 성공적인 탐험을 이끈 학자는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 이후 이 공간을 '동아지중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선사시대에도 자연조건이 두 지역 간의 교류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뗏목이 닿았던 흑산도는 서긍(徐兢)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말했던 흑수양(黑水洋)에 속한다. 이른바 크로시오 해류(黑潮)의 물길이다. 흑산도는 648년 나당군사동맹이 체결될 때에도 황해 횡단 항로상의 중요한 기점으로 ...
편집에디터2019.02.27 12:50전신탑에서 바라본 윗당과 아랫당여서도의 당제윗당, 아랫당, 갯당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듯, 끝 간 데 없는 하늘만 청청하다. 누가 밀어냈나. 먼 바다 칼바람이 내안(內岸)의 풍경들을 자꾸 밀어 올린 탓이리라. 곧 영등 바람이 딸 혹은 며느리를 데리고 왕림할 것이다.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전해왔다. 아마도 수백 년 혹은 반 천년은 되었을 성싶다. 정씨할머니가 밭을 매다 절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풍경(風磬)을 줍게 되었다. 경이롭게 생각하고 그 종(鐘)을 고이 모시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기이하게 생각했다. 이내 풍경을 모실 당집을 짓고 마을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사후에는 정씨할머니까지 신격으로 추대하였다. 아랫당의 효시(嚆矢)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어느 시기, 어장(漁場)이 잘 안 되는 때가 있었다. 밖에서 한 스님이...
편집에디터2019.02.20 14:10여수 삼동매구. 여수 삼동매구 손웅대표 제공매구(埋鬼) 마당밟이 서천국 사바세계 해동조선 전라좌도 면은 쌍봉면 아닌가는/ 삼동리 안중도 아니요 가문은 손씨 날생 가문인디/ 이 터 명당 부귀공명 물론이요 자손 발복도 물론이요 소원성취하시고/ 일년 열두 달이면 삼백육십오일 악살희살 모진 놈의 관재구설은 물알로 일시 소멸하고/ 잡귀잡신은 딸딸 몰아 인천 앞 바다에 쳐 너야것소/ 여 버리고 여기서 잠깐 액을 막는디/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에라 중천 액이로구나/ 동에는 청제장군 청박게 청활량/ 석갑을 쓰고 석갑을 입고 석활화살을 매달아놓고/ 공중에서 떨어졌느냐 이 방우 살 막고 예방을 허리요/ 남에는 적제장군 적박게 적활량/ 석갑을 쓰고 석갑을 입고 석활 화살을 매달아놓고/ 공중에서 떨어졌느냐 이 방우 살 막고 예방을 허리요(하략)여수 삼동 매구 액막이 사설이다. 액(厄)은 무...
편집에디터2019.02.13 14:57유치의 밤거리/ 아아 ~ 유치의 밤이여/ 보림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저 아주머니여/ 그 모습 아름답구나/ 아 ~ 유치의 밤거리여/ 사라져가는구나/'유치의 밤거리', 언제 나온 노래일까? 어디서 많이 듣던 선율이다. 그렇다. 가요 '신라의 달밤'에 가사를 바꾸어 부른 일명 '노가바(노래가사 바꾸어 부르기)'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0년 전 장흥군 유치면 수몰지구 주민들이 지어서 부른 노래다. 이들에게 유치의 밤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댐 축조로 인해 수몰되어 사라져 가는 밤거리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뿐일까? 댐을 막는 것이 부당하다고 호소하고 투쟁하기도 했다. 역부족이었다.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했다고나 할까. 수몰되기 전 유치 골짜기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던가. 유치 계곡을 오르내리며 돌담 사이사이 고목...
편집에디터2019.02.06 14:48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생생텃밭에서 열린 '국회생생텃밭·한유연과 함께하는 한돈 김장나눔행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김장김치를 담고 있다. 뉴시스 무수채지(무채지), 갓물김치, 파김치, 알타리김치(총각김치), 무동치미, 배추동치미, 무장아찌, 열무김치, 무생채김치, 깍두기, 솔김치(부추김치), 갓김치, 얼갈이배추 김치, 솎은 무김치, 솎은 배추김치, 고구마줄기 김치, 열무 물김치, 싱건지(동치미), 배추 물김치, 돌산갓김치, 얼갈이무잎 배추김치, 배추 풋고추 김치, 고추김치, 톳김치, 표고유자 물김치, 양파김치, 나박김치, 무청고춧잎 김치, 파래 물김치, 감태 김치, 씀바귀 김치, 콩잎 김치, 시금치 장아찌, 무말랭이 깍두기 김치, 열무반지, 자박김치, 외대파김치, 시금치장아찌, 울금가루 넣은 김치.남도지역에는 어떤 김치들이 있을까?많기도 하다. 모두 내가 남도 곳곳을 다니며...
편집에디터2019.01.30 13:56문경 새재 1관문. 문경시청 제공아리랑고개 이윤선 (사)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이사장 문화재청문화재전문위원 전남도문화재전문위원암 환자로 3년을 살았다. 그 고개를 넘어 아내와 여기에 올수 있어 무한히 행복하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내려오면 따뜻한 마음들이 맞아주는 희망이 있는 고개/ 아이 셋을 낳아 기르던 시절. 힘들고 고된 고개이지만 행복하고 보람된 고개이기도 했던 나의 아리랑고개/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대신으로 살기가 어린 나에게 너무 벅찬 시기였다. 그 시절 나에게는 도저히 지나갈 것 같지 않던 그 시간들, 험난한 고개였다/ 오십 고개를 넘으면서 참으로 많은 아리랑고개를 무사히 넘어왔다. 죽을 때 후회 없이 죽는 게 아리랑 고개다/정선아리랑박물관 고개 특집전 관람객들이 남긴 포스트잇이다. 저마다의 인생을 고개에 투사하고 있다. 이들의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아리랑고...
편집에디터2019.01.23 12:56고풀이1986년 진도 영등제 씻김굿 공연 질닦음 장면풀로 가자/ 풀로 가자/ 산신님아/ 산고를 풀으시고/ (가)신님아/ 집고를 풀으실 적/ 고 풀어 만고 풀자/ 심중에가 맺힌 고를/ 포부에 풀으시고/ 포부에가 맺힌 마음/ 왼 정으로 다 풀어서/ 억천만물 뒤에도/ 굴과 고통이 다이 없이/ 대신 고애가 풀렸소~(중략) 초제왕에가 맺힌 고는/ 이제왕이 풀고 가고/ 이제왕에가 맺힌 고는/ 삼제왕(이) 풀으시고/ 삼제왕에가 맺힌 고는/ 오제왕으로 풀고 가고~(하략)가사의 흐름을 보니 오제왕에 맺힌 고는 당연히 육제왕, 칠제왕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십제왕까지 노래된다. 사제왕이 없는 까닭은 4자를 기피하는 습속과 관련된다. 진도씻김굿 중 고풀이의 한 대목, 고 이완순이 잘 불렀던 가사다. 고풀이는 하얀 질베에 매듭을 여러 개 만들어두었다가 풀면서 연행하는 무가를 말한다. '질베'는 '...
편집에디터2019.01.16 12:43국제 슬로푸드 운동국제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은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탄생하였다.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군들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1986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브라(Bra)에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칼로 페트리니라는 사람이 주도한 아르치(ARCI: 여가, 문화협회)의 한 부문으로 음식모임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르치는 '풀뿌리 이탈리아 문화 부흥운동' 조직이다. 1980년대 중반에 로마의 명소로 알려진 에스파냐 광장에 맥도날드가 문을 연 것을 기점 삼는다. 이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서 '안티 맥도날드 운동'으로도 불렸다. 관련하여 비만이나 당뇨 등을 일으키는 패스트푸드에 반기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이 담긴 전통음식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되찾자'는 취지를...
편집에디터2019.01.09 13:50보성군 득량면 삼정리 쇠실마을에 위치한 백범김구선생은거기념관은 김구선생이 1898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제를 응징하기 위해 일본 장교를 살해한 혐의로 인천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탈옥해 40여일을 은거한 곳(집) 에 유품 등을 전시한 곳이다. 보성군 제공눈 많이 내린 산야를 걸으려면/ 어지럽히지 말고 바르게 걸어야 한다/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반드시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作後人程/눈이 차곡차곡 쌓인 날, 순백의 평지를 앞서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걸어본 경험이 있는가? 누구에게나 낯익은 풍경,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애독하는 시 '야설(野雪, 들판의 눈)'이다.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 이양연(1771~1853)의 시라고 밝혀진지 오래되었다. 정민 교수 덕분이다. 백범 김구가 즐겨 읊고 썼으며, 김대중 대통령도 애호하던 시...
편집에디터2019.01.02 14:51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당 앞 5·18민주광장에 빛고을성탄트리가 오색불빛을 밝히며 온누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나건호 기자일 년 중 마지막 절기가 크리스마스라고?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차분히 한해의 성과를 돌아보고 다음 해의 계획을 세워보리라 다짐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한 해를 마디마디로 잘라 이런저런 명절을 배치하고 그 의미들을 톺아보는 지혜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그 시간의 마디에 이름을 붙인 것을 명절(名節) 즉 마디의 이름이란 이치도 덧붙여 해석한 바 있다. 명절이라 함은 보다 중요하다는 마디 이름을 들어 설이니 추석이니 따위의 이름을 내세웠을 뿐이다. 명절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세시절기들도 사실상 시간을 분할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마디의 이름임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24절기의 마지막 마...
편집에디터2018.12.26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