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마을. 뉴시스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 테레사 수녀가 선종하면서 남긴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성인의 경지에 오른 그녀 아닌가. 약속받은 천국이 있으니 87년간의 이승일지라도 고작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 글쎄다. 그녀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이름도 빛도 없던 빈민과 노인과 아이들에 비추어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속절없는 시간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극락을 예비한 자도 천국을 약속받은 자도 예외 없는 것이 실존적 고독과 외로움 아닐까. 가까운 예로 오랫동안 OECD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 자살률을 들 수 있다. 인구 10만 명당 26.6명(2018년 기준)에 이른다. 2020년 6월 1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표한 자살예방백서 자료다. 201...
편집에디터2020.09.03 18:23해남씻김굿 이수자 명인의 길닦음에서 사용하는 넋당삭(혼령을 싣고 하늘로 가는 배)-이윤선촬영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배 한 척이 격랑 속의 나뭇잎처럼 거칠게 흔들리며 파도와 파도를 간신히 타넘어 간다. 키 잡는 방이 배 위에 작은 집처럼 솟아오른 어선이다. 그 배의 밑바닥은 잡은 고기를 가두어놓는 곳이다. 사람이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낮은 천장 아래 바닥에는 물이 찰박거리며 차올랐다. 거기 꾸물꾸물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열 스물 서른 남짓의 남녀와 아이들이 보인다. 뱃전을 울컥이며 넘어간 물결이 갑판을 휩쓸고 어물칸에 쏟아져 들어간다. 아이들과 여자가 허우적거리며 기어 나온다." 황석영의 소설 (2007)에서 탈북소녀 '바리'가 밀항하는 장면이다. 군더더기 미장센이 장치될 틈이 없다. 긴박하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놓인 개별 존재로서의 고독들이 마주하는...
편집에디터2020.08.26 14:54풀어 쓴 심청전 책 표지 중 하나 심청이 빠져 죽은 인당수 "한 곳을 당도하니 이는 곧 인당수라. 대천바다 한 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정그러져 천지적막한데, 까치뉘 떠들어와 뱃전머리 탕탕, 물결은 와그르르 출렁 출렁 도사공 영좌(領坐)이하 황황급급(遑遑急急)하여 고사지제를 차릴제, 섬 쌀로 밥 짓고 온 소 잡고 동우술 오색탕수 삼색실과를 방위차려 갈라 궤고 산돗 잡아 큰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놓고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을 정제하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 둥~(하략)"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이다. 엇모리장단으로 긴박하게 노래하다가 느린 자진모리로 한자성어 투의 긴 사설을 읊어낸다. 급기야 휘모리장단으로 물에 빠지는데, 북소리를 뒤로 하며 마지막 사설이...
편집에디터2020.08.19 13:47당금애기 공연 포스터-2019 국립무형유산원 심청가의 올라가는 중 흥보가의 내려가는 중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오는디 이 중은 올라간다. 저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 화주승이라. 절의 중창 하랴하고, 시주집 내려왔다. (중략) 죽장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끼웃거리고 올라갈제 한 곳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 개천 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익히 알려진 판소리 심청가의 '중 올라가는 대목'이다.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강의 서사는 비슷하다. 가사 중의 개천물에 빠져 죽게 된 어떤 사람은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다. 심청을 기다리던 중 더듬더듬 문밖으로 나갔다가 개천물에 빠져버린 상황이다. 심청전이라는 거대 서사는 곽씨부인의 죽음과 심청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봉사가 물에 빠지는 장면, 중이 올라와 구하는 장면 등 이야기가...
편집에디터2020.08.12 13:23광주신창동 출토 악기(위)와 국립국악원에서 복원한 형태(아래), 국립국악원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제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아/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디 모습 남아 있고/ 버드나무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삼척동자라도 외고 다닐만한 우리 한시의 정수다. 조선 중기 신흠(1566~1628)의 에 나온다. 비유대로 선비의 지조와 충정을 강조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성정의 문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황은 이 시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한다. 그래서였을까. 예로부터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잣나무를 심으라 했다. 딸을 시집보낼 때 오동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혼수를 장만하고 잣나무는 관을 짜는데 사용했다던가. 지조와 정조 따위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속담이나 시의 행간...
편집에디터2020.08.05 13:331960년대 강강술래 남생이놀이와 개고리타령 연습-진도 지산면 인지리 설진석 제공 "개고리 개골청 방죽아래 왕개골/ 왕개골을 찾을라믄 양폴을 뜩뜩 걷고 미나리 방죽을 더듬어/ 어헝 어헝 어헝 낭 어헝 어라디야/ 삼대독자 외아들 병이 날까 수심인데/ 개고리는 머하라 잡나 외아들 꾀아진데 데려믹일라고 잡었네"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개구리타령이다. 수년 전 나는 이 지면을 통해 강강술래의 남생이놀이를 '천렵(川獵)'놀이로 해석한 바 있다. 삼복더위의 피서놀이 중 고래의 유속으로 남아있는 천렵이 역동적인 강강술래와 묶이면서 그 생동감을 더했다는 주장이었다. '남생이놀이'가 솔가지와 나무젓가락 등의 가사를 통해 간접적인 풍경을 묘사한 것이라면 '개구리타령'은 보다 직접적이다. 농어촌에서 자란 세대들은 익히 기억할 것이다. 미나리 방죽을 더듬고 마을 늪을 헤집어 개구리를 잡던...
편집에디터2020.07.29 13:03신사임당 초충도 8폭병풍 중 오이와 개구리 "금침 같은 손가락과 실 같은 머리카락/ 머리 나란히 하고 손잡으니 한껏 기뻐/ 바늘과 실을 가지고 회문금을 짜듯이/ 밤새 내내 끊일 때 없이 돌고 도는구나/ 파과할 때가 되어 오이 따는 것 희롱하니/ 어지럽게 꼭지 떨어짐에 꽃잎 떨어진 듯해/ 그 어떤 사람이 풍류의 모범을 허여했던가/ 벼슬은 첨지라 하고 성은 차씨라 한다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림들, 나란한 머리, 서로 잡은 손, 밤새 끊일 때 없이 돌고 도는 놀이, 그렇다, 강강술래의 한 장면이다. 정만조의 (1896~1999년의 기록) 중 '추석잡절'이라는 제목의 시인데, 소개한 대목은 현행 강강술래놀이의 '바늘귀 뀌기'와 '꼬리 따기'놀이에 해당한다. 후자를 '쥔쥐새끼놀이' 혹은 '외따기놀이' 등으로도 부른다. 졸고, '강강술래의 역사와 놀이구성에 관한 ...
편집에디터2020.07.22 12:48김인관, 유선도《화훼초충화권축》중, 지본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는 매미가 큰 나무에 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또 공중으로 내던져진 고무공 같은 느낌이기도 했었지. 하루에는 몸집이 클 뿐 아니라, 마음도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후루야마 고마오의 매미의 추억(セミの追憶) 중 '프레오8의 새벽'의 한 대목이다. 소설의 화자가 하루코라는 위안부와 하룻밤을 지내며 안았을 때의 감정을 묘사했다. 큰 나무에 앉은 매미 혹은 공중으로 내던져진 고무공 등의 묘사를 포함해 제목 '매미의 추억'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이 채 읽어내지 못하는 행간의 의미들 속에 혹시 매미의 거듭남 같은 은유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안부 하루코의 잃어버린 조국과 이차대전이라는 환경 속에서 마치 카프카의 벌레처럼 도륙당하고 버림받은 실존의 문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 절대적...
편집에디터2020.07.15 16:3510대 후반의 임방울(흰두루마기)-천이두의 명창 임방울 중에서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디/ 혼은 어데로 향하신가/ 황천이 어데라고 그리 쉽게 가럇던가/ 그리 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나 말았거나/ 왔다 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 가며/ 동무들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임은 하직코 가셨지만/ 이승에 있난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한들/ 보러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보리오/ 무정하고 야속한 사람아/ 전생에 무슨 혐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야서/ 각도 각읍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속에 들어도 나는 못잊겠네/ 원명이 그뿐이던가/ 이리 급작시리 황천객이 되얏는가/ 무정하고 야속한 사람아/ 어데로 가고 못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저 유명한 임방울의 단가 '추...
편집에디터2020.07.08 14:002017년 5월 31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국민대통합아리랑 공연. 전남일보 자료사진 2018년 한국민속학자대회 주제를 '황해에서 경계에 선 한민족을 보다'로 정했던 이유가 있다. 민요를 통해 남북간 화해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천전략 중 하나로, 북한민속학연구소 공명성 소장을 초청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가 아리랑 전문가라는 점이 내 관심을 끌었다. 이 방면에 전문가이거나 힘이 있다는 명사들을 만나 약속을 받고, 북한관련 학회, 단체, 기관 등 루트를 뚫어보려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학자가 남한에 들어와 토론회에 참여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더욱 아쉬운 것은 참여하기로 이런저런 약속까지 했던 조총련 민요학자마저 뒤늦게야 오지 못한다고 했을 때였다. 선배 어르신들 다 제치고 젊은 학자가 먼저 나서 남...
편집에디터2020.07.01 12:47민경숙 명인의 의례음식 상차림 오월 오일 수릿날 아침에 "오월(五月) 오일(五日)애 아으 수릿날 아약(藥)은 즈믄 장존(長存)샬 약(藥)이라 밥노이다 아으 동동다리" 저 유명한 고려가요 월령가 의 '오월령' 대목이다. "오월이면 오일에/ 아 수리날 아침 먹는 약술은/ 천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 드리옵니다/ 아으 동동다리"로 풀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오를 설명할 때 인용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단오를 '수리날'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왜 단오가 수릿날인가? 이에 대해 명료한 답변을 해준 사람은 아직 없는 듯하다. 수많은 설들이 있을 뿐이다. '수리'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독수리다. 참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몸이 크고 힘이 세며 끝이 굽은 부리와 굵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 하늘 높이 날기 때문에 '높다...
편집에디터2020.06.24 13:00평양감사부임도 병풍 중 모흥갑 능라도 판소리공연장면,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대동강변 능라도, 차일을 두른 유람선들이 즐비하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들, 쪽 지은 기생들을 싣고 바람 없는 물가에 유유히 떠 있는 풍경이다. 예로부터 기성팔경의 하나로 꼽히던 곳이었으니 강변의 바위들 너머엔 모란봉이 밑그림처럼 포진해있을 것이다. 이물 뱃전에 올라있는 이는 숙달된 사공일 것이요, 고물 뱃전까지 무엇을 장식한 듯도 하고 풀숲을 싣거나 물건을 실은 배들도 있으니 대동강이 마치 대로를 운행하는 사통팔달의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풍경의 중심에는 일군의 선비들이 상다리가 휘어지는 잔칫상을 앞에 두고 능수버들 숲의 한 가운데를 응시하고 있다. 엿장수는 물론 어린 기생들도 다소곳이 앉아 있으니 필시 성대한 잔치임을 알겠다. 자세히 보면 능라도라는 글귀와 명창 모흥갑이라는 글귀가 선연하다. 평양감...
편집에디터2020.06.17 10:30영산강 일출. 뉴시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도종환 시 이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고백이다. 풍경이 그렇고 물상이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래서일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것'을 자연(自然)이라 한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
편집에디터2020.06.10 14:29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 산동애가 노래비-구례군청 제공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어 절어/ 다리 머리 들어오는(달비 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나 혼자 총소리에(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근자에 알려진 비운의 노래 '산동애가(山洞哀歌)', 명창 전인삼이 여수 부르스를 포함해 창조(昌調)로 불러 그 선율을 더욱 유장하게 했다. 김원중 등이 참여하여 발간한 한정판 음반이다. 1절과 2절 사이에 토해 내는 대사가 마치 대마디 대장단의 아니리처럼 정수리로부터 늑골을 따라 흐른다. "살기 좋은...
편집에디터2020.06.03 14:011800년 나주신청 선생안-나주신청문화관 제공 진도에 고려 궁궐 전통이 이어져 왔을까? 도리 기둥을 한 여섯 간(약 20평)의 조선 기와집이었다. 방이 셋이고 봉당, 대청, 정지 등이 있었다. 주위에는 26~27호 정도의 당골 집안이 살고 있었다. 건물 안에는 집지을 때의 각서가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무신도나 초상들이 걸려있지는 않았다. 조선말엽에 이 건물을 중수하기 위해 헌금을 한 한참사, 임참사, 박참사 등의 이름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지난 토요일 나주 신청문화관 개소식에서 발표한 목포대 이경엽 교수의 "왜 신청인가, 무엇을 어떻게 주목할까"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신청을 진도에서는 장악청이라 했다는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를 인용한 정보다. 설명은 이어진다. 장악청에 출입하던 사람들을 '고인, 공인, 재인'이라 했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다른 이...
편집에디터2020.05.27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