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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넓고, 집은 크다. 정자를 품은 땅이 1300㎡ 남짓, 그 안의 건축물이 엔간한 집터만 하다. 단층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기품 있다. 널빤지를 끼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에 방을 한 칸 뒀다. 기둥과 도리, 처마가 돋보인다. 나무 형태를 그대로 살린 들보도 자연스럽다. 지붕 네 귀에 세운 활주도 유려하다. 현판 글씨에선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한석봉의 글씨로 전해진다. 정자 앞에는 노거수 몇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소나무다. 노거수와 어우러진 연못이 있고, 연못가엔 연...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5.01 15:54“지금쯤 선녀 씨는 저 세계로의 경계, 말랑말랑하면서도 흐물흐물한, 자궁의 입구만큼이나 좁은 ‘틈’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산자의 때를 벗지 못한, 완전히 죽지 못한 존재, 살아있음도 죽어있음도 아닌, 그냥 중유(中有)의 존재로서 말이다. 아마 그곳에서 선녀 씨는 오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개영의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실천문학, 2024)의 한 대목, 동해안 북부 무당인 어머니 장례 풍경이다. 자전적 소설, 화자(話者)는 김개영이다. 소설의 약속처럼 화자는 실제로 죽은 어머니를 위해 두 번의 오구굿을 했다...
2025.04.24 17:05자식과 아내를 차례로 떠나보내고 올리는 작품마다 실패를 맛보았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힘들었으나 의 대본을 만난 후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다. 이러한 변화 안에서 그는 절명의 위기까지 겪었던 당시의 운명에 관한 집착의 모습을 작품 안에 투영하였는데, 특히 비극적인 운명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그의 3대 오페라로 불리는 , , 뿐만 아니라 , 를 비롯한 대부분 작품이 복수와 악연 그리고 이로 비롯된 죽음의 서사를 나열하고 있다. 베르디는 1833...
2025.04.24 11:03“어른들은 목욕재계하고, 옷도 이쁘게 차려입고, 동네잔치였어. 먹을 것도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 많이 얻어 먹었는디… 근디 이제, 다 옛날 일이여. 지금은 제사 안 지내.” 정병호 어르신이 들려준 서작마을의 정월대보름 당산제 이야기다. 서작마을은 광주시 광산구 우산동에 속한다. 어르신은 서작마을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당산나무 쉼터에서 만난 몇몇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당산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당산제는 해마다 지냈다. 마을회의를 통해 화주와 제관을 뽑았다. 화주와 제관으로 뽑힌 사람은 가려야 할 것이 많았다. 궂은일은...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4.17 17:56“마을에 촘촘히 뿌리내린 생활 협동계는 주민 삶의 지지대이자 자치 의제의 산실이었다. 마을 대동계는 생활 협동계들의 연합체이자 생활과 순환경제를 결합한 주민 자치단체였다. 이런 전통마을 자치 정신에 따라 생활 자치 운동과 순환경제 운동을 결합한 농촌 마을 모델을 둠벙마을이라고 개념지었다. 여기에 가치농업과 가치혁신을 더하고, 관계인구를 더하면 전환시대 농촌이 새 희망을 얻을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박상일이 쓴 ‘전환시대 농촌의 길’(드림북, 2025. 2) 한 대목이다. 둠벙마을은 논에 물을 대려고 판 둠벙이 스스로 생태...
2025.04.17 16:04그동안 광주 시내에 버티고 있던 방직공장이 사라져간다. 일제강점기 시대 시작한 알짜배기 공장이어서 그동안 수많은 시골 아낙들을 도시로 불러들인 일터였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거역할 수 없는 것. 섬유산업의 쇠퇴에 따라 그동안 숨만 쉬어 오다가 2020년 정식으로 가동을 중단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철거 마무리 중이다. 이 자리에 대형 쇼핑몰을 비롯한 복합 개발사업이 추진된다고 하니 많은 변화가 있을 듯하다. 방직공장의 굴뚝이 있는 건물만...
2025.04.17 16:04무언가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개인을 넘어 국가적인 문제로 발현됐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서로의 영토를 두고 벌인 전쟁의 역사로 이어졌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잃어버린 땅,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인간의 상처와 흔적들은 잔혹하지만, 예술가에게 처절하고 아름다운 영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모나 하툼(Mona Hatoum)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레바논으로 망명한 팔레스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베이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하툼은, 1975년 런던 여행 중에 발생한 레바논 내전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베이루트 공항이...
2025.04.13 17:45두 여울물이 있다. 하나는 소설로 쓰인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노래로 불린 이야기이다. 먼저의 이야기는 황석영이 ‘여울물소리’라는 이름으로 썼다. 나중의 이야기는 황호준이 같은 이름으로 창극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말 광주시립창극단 창단 35주년 브랜드작품으로 공연됐으니 4개월여 지났나? 하지만 소설 속 장별 제목이기도 했던 ‘여향(餘響)’의 기운이 시방도 내 몸에 남아 있다. 황석영이 말하고자 했고, 황호준이 노래하고자 했던 웅숭깊은 내력 탓일 것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
2025.04.10 17:25오페라는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종합 예술 형식으로, 음악과 연극, 무용, 무대 미술 등이 결합된 장르이다. 오페라의 기원은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 지식인, 음악가, 시인들이 모여 지금의 연구단체인 학회 같은 ‘카메라타(Camerata)’를 만들고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는 것으로, 연극이 오페라 시작의 모체라 할 수 있으며 음악만으로 오페라를 이해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페라는 극에 수려한 음악으로 포장된 종합 예술 장르이다. 우리가 그동안 오페라의 음악 장르 안에서 제작 시작의 주체가 작곡가를 비롯한 음악가이...
2025.04.10 17:23“공심은 저러시고/ 나무남산 본이로세/ 조선은 국이옵고/ 팔만은 사두세경/ 허궁천 비비천/ 삼화도리 열시왕/ 이덕 마련하옵실 때/ 경상도 칠십삼관/ 전라도 오십삼관~”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씻김굿 거리 중 ‘초가망석’의 내드름 부분이다. 지역이나 가창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대개 수도 서울의 본디 내력을 줄거리 삼는다. 우리의 근본과 이 땅의 내력을 반복해 선포하는 셈이다. 바리데기, 당금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무속 신화에 속하는 공심에 대해서는 2017년 6월 9일자 본 지면에 다뤘다. 곡성 옥과에 터를 마련한 ...
2025.04.03 16:22‘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되뇌며 들길을 하늘거린다. 길섶에 봄까치꽃, 광대나물꽃, 별꽃, 냉이꽃, 남산제비꽃이 지천이다. 동백숲도 반긴다. 동백꽃을 자세히 본다. 꽃잎 새빨갛고, 꽃술은 샛노랗다. 이파리는 진녹색이다. 색깔의 대비가 선명하다. 왕성한 생명력이 묻어난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처럼 정열적이다. 대중가요 한 소절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그...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4.03 16:19제주 4.3의 흔적을 찾아가는 중에 토벌대장 박진경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그의 악랄한 행위로 군영 내에서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는 흔치 않은 사건이 있었다는 기록을 봤다. 제주시 충혼묘지에 그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과 그 비의 존재에 대해 논란이 되어오다 시민단체에서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제목의 감옥 형태 조형물을 설치해 그의 행적을 비판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는 친일 극우파로 일본군 공병대 출신이며, 미군정의 앞잡이로 11연대 제주토벌대장으로 부임해 ...
2025.04.03 16:18오페라 제작 과정에서 대본과 음악이 있는 기존의 작품이 선정되거나 의뢰된 창작 작품의 대본과 작곡이 마무리된 후에는 이 모든 일을 총괄할 예술감독과 지휘자, 연출자의 선발 과정이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작곡자가 직접 무대 연출이나 초연의 지휘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대에는 새로운 프로덕션에 맞추어 연출자를 초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제작극장을 보유한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연출자는 초빙하고 극장 소속의 오케스트라, 합창, 발레단이 있는 경우는 대부분 별도로 오케스트라, 합창 지휘자나 발레단 안무를 섭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25.03.27 18:27한복 입은 예수, 장삼을 두른 성모 마리아, 역설적으로 낯선 이 그림들이 출현한 것은 근자의 일이다. 장발의 성화를 비롯해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혹은 배운성이나 장우성의 성모화 등이 손에 꼽히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듣자 하니 무명작가 허솔의 성화 일러스트에 대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해외 파견 신부들의 요청이라 한다. 왜 이들이 허솔의 성화 일러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주문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한복에 있다. 흑인 예수상이라던가 갓을 쓴 예수상 등 기독교의 토착화에 기댄 각 나라의 성찰이 부상된 것도...
2025.03.27 15:49어떤 알곡들이 튀어 오르는 소리일까. 어떤 생명이 땅속을 헤집고 올라오는 진동일까. 파도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치는 풍경일까. 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는 상투적 표현만으로는 다 말하기 어려운 청아한 음들의 향연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면, 재잘거리기도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며 새싹 오르는 뒤꼍이며 고샅이며 매화봉우리 터지는 나무 곁을 종종걸음으로 달려 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아니라도 좋다. 어미를 쫓아 장난질하는 강아지들 혹은 고양이어도 무방하다. 통통 뛰어다니는 선율을 따라잡는 앵글이 분주...
2025.03.20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