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할까? 겨울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방학 계획을 물으면 대부분 자격증 공부 아니면 여행이라고 말한다. 정년을 앞 둔 직장인들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한 1년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다. 여행은 누군가에게 도전이면서도 휴식이며 자유가 된다. 힘든 여행을 했어도 지내놓고 보면 추억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 강연을 하거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능하면 '일찍', '혼자', '그곳'을 '경험'하라고 ...
편집에디터2022.12.15 15:21본 지면에 K-FOOD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선언적으로 남도음식이 K-FOOD의 원천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왜, 무엇이, 어떻게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차례 나누어 이를 다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지역의 어느 음식이라고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음식에 저장된 시대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를 둘러싼 문화적 함의와 관련된 것이다. 김재경은 '소설에 나타난 음식과 권력의 문화기호학'이란 글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음식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
편집에디터2022.12.08 17:35작업실에 들이박혀 꼬무락거리다가 지질해지면 산책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골목길을 걷는 것이 단골 메뉴다. 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긋한 마음으로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좋고, 이 생각 저 생각을 따라 가는 것도 좋아서다. 또 한편으로는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삶의 풍경에서 내가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할 때도 있다. 그 골목길을 오가다가 할머니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집문 인지 방문 인지 모를 문을 한 짝만 열어놓고 어둑한 안에 앉아 하염없이 혼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오기...
편집에디터2022.12.08 17:03"글씨는 미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 흔히 극한 감정이나 아름다움의 감탄을 표현할 때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추상적 개념을 가리키는 기호로서의 글과 문자가 이미지를 증폭 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자는 사회적 약속이자 의사전달을 위한 기호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지시적 특성 외에 조형적이고 이미지 요소 자체로 기능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조선시대 '문자도'와 같이 기호로서 약속 된 형태나 소리로 발현되기도 하였다. 문자는 청각적 경험을 유도하고, 미술은 시각적 경험을 유도한다는 관념으로 추상적 이미지와 관념적 문자는 전통적인 전제를 넘어 상호 작용적인 특성을 구현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기원전(B.C) 15,000여년전에 그려졌으며 인류 최초의 회화적 기록으로 벽화은 그...
편집에디터2022.12.04 17:4311월 28일 밤이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끼고 논문을 읽고 있는 내 귀에도 환호성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옆 연구실인지 맞은편이지 아니면 위층인지 아래층인지, 전 층인지 그 소리는 멀면서도 가까웠고 갑작스럽다가도 잠잠했다. 직접 경기를 보고 있지 않던 나는 인터넷에서 현재까지의 경기 내용을 검색했다. 초반에 두 골을 내주고는 후반전에서 동점골(2:2)을 만들어 낸 직후였다.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던 월요일 밤, 낮 동안 간간이 내리던 비가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 굵기를 더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팀은 ...
편집에디터2022.12.01 15:47선녀는 하늘에서 베를 짠다. 연오랑의 짝꿍 세오녀가 그랬고 견우의 짝꿍 직녀도 그랬다. 오죽하면 이름을 직녀(織女) 곧 베를 짜는 여자라고 했을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금가락지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다. 구름 위에 노닐기가 무료하면 가끔 땅으로 내려와 놀다 떨어뜨리기도 한다. 지리산 노고단의 옥녀도 그리했다 하니 전국의 수많은 옥녀봉은 선녀들이 내려와 좌정한 바위일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것인지 노고단 형제봉에서 떨어뜨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을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한다. 산과 연못이...
편집에디터2022.12.01 15:52왕버들나무가 있다. 수령 400년은 거뜬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 서너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듯한, 나무의 우람한 기둥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눈과 비바람은 얼마나 맞았고, 햇볕은 얼마나 받았을지, 천둥소리와 번개는 또 얼마나 듣고 맞았을지…. 세월이 빚어낸 주름이 큰 물결처럼 나무에 새겨져 있다. 풍수지리로 볼 때 비보림(裨補林)이다. 지형의 약점을 보완했다.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충효마을의 왕버들은 본디 다섯 그루였다고 전해진다. 소나무와 매실나무도 한 그루씩 있었단다. 1송 1매 5류로, 마...
편집에디터2022.12.01 17:14고풀이는 남도의 씻김굿에서 연행되는 후반부 거리 중의 하나다. 본 지면을 통해 두어 번 고풀이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에 대한 내 마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대하며 다시 고풀이를 소환할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맹골도를 바라보는 해안에 흙집 짓고 살던 소설가 고 곽의진은 세월호의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뜰 일을 하다 쓰러졌긴 했지만 나는 그 죽음이 세월호의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 나와 나누었던 카톡에 절절했던 내용이 남아 있다. 의무와 책임, 풀어야 할 과제들 말이다. 어찌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던 우리에게 세월호가 얹어준 무게가 그러했다. 곽의진과 내가 진도사람이어서 그랬고 동시대인이어서 그랬다. 세월호에 희생당한 아이들이 바로 내 자식이며, 참살당한 이들이 내 가족이나 다름없기에 그랬다...
편집에디터2022.11.24 16:38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지리산이 부른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낙엽들은 수북이 쌓여있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누군가의 흐느낌으로 들려오는가. 그 흐느낌에 불려가니 빗점골 너덜겅 곁의 한 그루 소나무 아래서 '지리산 곡(哭)'을 노래하는 이가 있다. 음악을 전공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최순희' 함께 했던 빨치산 동지들을 평생 그리워 하다가 얼마 전 91세의 나이로 영욕의 생을 마감하고 이 소나무 아래 묻혀서야 그리운 이들의 품에 안겼다. 며칠 전이 그분의 기일이었다. 남부군 문화지도원이었던 그녀는 대성골 대공세 때 포로가 되...
편집에디터2022.11.24 13:38오래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의도치 않게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된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마침내 온 대지를 점령해버린 날이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거장으로 향할 때였다. 종아리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을 밟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야 했던 그 밤 나는 Pink Floyd를 알게 되었다. 그 뒤 앨범을 통째로 영화화한 앨런 파커(Alan Parker)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을 비디오로 보게 되었고 CD를 소유하게 ...
편집에디터2022.11.17 16:56지난 칼럼 를 통해 지명가요의 전통과 변천을 톺아본 바 있다. 다시 제기할 문제는 호남의 각 지역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중의법(重義法)을 차용한 이유랄까, 그렇게 시를 짓고 노래했던 남도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발생하여 유행하던 지명가사(地名歌辭)가 호남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란 점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위백규의 여도시(輿圖詩)에서는 경기, 호서, 해서, 관서, 관동, 관북, 영남, 호남을 골고루 노래했다. 문제는 문학 장르로서의 가사(歌辭)를 넘고 여러 노래...
편집에디터2022.11.17 17:20상구마을의 한낮 풍경. 상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돈삼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빨강 열매가 유난히 빛난다. 먼나무, 이나무, 호랑가시 등 감탕나무에 속하는 열매들이다. 울타리로 심어놓은 남천도 있다. 자연스레 '사랑의 열매'가 떠오른다. 호랑가시나무를 찾아간다. 목적지는 나주시 공산면 상구마을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는 별나게 생겼다. 한쪽은 열매가 무성하게 달리는데, 다른 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두 얼굴의 나무다. 올해는 유난히 열매가 더디 달리고 있다. "햇빛이 많이 비치고 안 비치고 차이도 아니고, 흙이 다른 것...
편집에디터2022.11.17 17:20함평의 가리내패와 사당패에 대하여 "이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 옥천, 함평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 삼랑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 거사의 본래 용어)들이 절을 하여, '소사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신재효가 정리한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한다)에서 사당패가 전국 유랑을 하며 재능을 파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함평의 가리내패? 무슨 연희를 하던 집단이었을까? 이어지는 사설에 ...
편집에디터2022.11.10 16:37보살의 몸으로 도솔천에 머물고 있다는 미륵은 언제 깨어나서 중생을 구제 할 것인가. 나라가 어지럽고 민족이 힘들 때마다 그 미륵이 깨어나기를 바랐지만 아직껏 묵묵부답이다. 운주사의 와불도 그랬고, 선운사 도솔암의 마애불도 그랬다.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지혜의 결정체인 와불의 육계를 잘라버려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도솔암의 마애불 가슴팍에 숨겨놓은 비기가 답이라는 그럴싸한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동학혁명 때 접주 손화중이 그 비기를 꺼냈다지만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편집에디터2022.11.10 14:57록웰이 그린 인근 마을 그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의 제노포비아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노예를 대체할 값싼 노동력으로 유입된 이들은 나중에는 금광에서 금을 캐는 일을 했다. 미국 백인들은 이 중국인 노동자들이 백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위협으로 여겼다. 중국인을 역병, 해충이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결국 1882년 연방정부는 중국인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켰으며, 나중에는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이민을 금지시켰다. 이민금지법을 폐지하는 '1965년 이민국적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유럽 백인이민자들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민 온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희생자로 살아야 했다. 그런 미국이 1965년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중남미, 아프리카 이민자들에게 문을 열었다. ...
편집에디터2022.11.03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