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콘체르토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진 펠리체 솔리스트의 ‘무등둥둥’. 출처 펠리체 솔리스트 |
광주를 소재로 하는 대표적인 융합예술 작품으로 오페라 <박하사탕>과 더불어 이 지역 작곡가 김선철의 <무등둥둥>을 이야기할 수 있다. 1999년 빛소리오페라단의 창단 공연 작품으로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2002년에는 서울 국립극장에 올려지면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 강숙자 오페라 라인에서 재공연이 이뤄지는 등 우수한 작품의 생존력을 여실히 보여주며 다양한 형태로 시대에 맞춰 발전해 오고 있다.
우리는 5·18을 소재로 하는 뮤지컬, 연극 등 각종 공연 예술 작품들을 접한다. 또한 수많은 창작 공연물이 무대에 올려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반복해 보고 있다. 창작 공연물 중 오페라는 막대한 예산과 오랜 제작 준비기간, 그리고 힘든 창작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다수의 오페라는 창작과 소멸을 반복하며, 모험과 같은 창작 오페라의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문화예술에서 창작을 향한 노력과 진보적 예술의 지향성을 외면한다면 그 지역의 예술은 점차 소멸할 것임을 우리의 역사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콘체르토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진 펠리체 솔리스트의 ‘무등둥둥’. 출처 펠리체 솔리스트 |
광주 5월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무등둥둥>은 지역 창작 오페라 중 오랫동안 장수하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꾸준히 작품이 올려지며 많은 관객이 찾는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원이 거의 없는 여러 민간 오페라단과 음악 단체에서 꾸준히 이 작품을 선택해 올린다는 것은, 작품이 가지는 매력과 티켓파워가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오페라 <무등둥둥>은 2021년부터는 광주지역 전문 음악단체인 ‘펠리체 솔리스트(대표 강양은)’에 의해 3년 동안 보완과 수정을 거쳐 올려지고 있다. 음악적 보완을 위해 작년에는 콘체르토 오페라로 광주의 미디어아트 배경과 더불어 공연하며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올해는 음악의 나열식 구조를 보다 유기적으로 모아 서사적으로 보완해 보다 구조적으로 안정화를 꾀하는 한편, 여기에 희곡의 극적 요소와 영상이 합류했다. 전봉준, 유관순, 김주열, 윤상원, 이한열의 이름을 세상 밖으로 호출하면서 넓게는 하나의 원형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내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의 새로운 장르의 오페라로 지형을 넓혀, 지역 오페라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김미옥 예술 총감독은 유기적 화합을 위해 음악과 연출, 무대와 영상 감독들의 의견을 조화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올해 오페라 <무등둥둥>은 효율적 오페라 제작 시스템을 통해 지역 민간 오페라단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과다한 경비 지출을 최소화하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8월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무등둥둥’ 공연 중 이한렬 열사가 쓰러지는 장면. 출처 펠리체 솔리스트 |
지난 8월 9일 광주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올려진 ‘5·18 오페라로 기억하다. 오페라 <무등둥둥>’은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의 모습을 여러 코드로 연결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매개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장대한 스케일을 하나로 담아낸 오페라였다. 우리 민족의 민중이 목숨을 걸고 투쟁한 항쟁의 역사인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통해 이룬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탄생시켰음을 이번 작품에서는 주시하고 있었다. 연출을 맡은 차두옥 감독은 우리 역사의 항쟁 가치를 기억하고자 시대를 투영한 시에 곡을 입혀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 민중의 저항정신을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이번 작품에서 낯익은 김준태, 김지하, 이은봉, 문병란, 조태일, 곽재구, 임동확 등 광주 출신 민중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었으며 작곡가 김선철은 이를 새로운 <무등둥둥>으로 탄생시켰다.
스토리 전개를 살펴보면 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섰다가 계엄군에게 학살당한 임신한 딸의 죽음으로부터 오페라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딸의 부모와 약혼자가 투쟁의 대열에 합류해 구두닦이 소년을 비롯한 평범한 광주 시민들과 함께한다. 오페라는 각 파트별 기승전결의 극적 드라마 장치를 배치해 10일간의 광주항쟁을 담아내고 있다.
눈 앞에서 벌어진 학살과 폭력 상황에서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인간의 공정한 도리로서의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무대가 열기를 띤다. 도청을 사수하려는 어린 구두닦이 소년마저도 계엄군의 총에 죽음을 맞으면서 ‘정의’ 그리고 투쟁은 이제 민중에게는 죽음과 함께 불살라야 하는 하나의 명제가 된다.
분노의 아픔과 슬픔을 딛고 이한열 열사의 희생으로 잠시 민주주의 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세상은 여전히 암울하고 학살의 유혹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살아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은 자들의 넋들을 추념하면서 광주의 정의로운 정신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 8월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무등둥둥’ 공연 장면. 출처 펠리체 솔리스트 |
오페라 <무등둥둥>은 음악 중심의 고유한 오페라의 틀을 벗어나, 연극적인 요소를 더욱 심도 있게 가미했다. 연극배우들이 다수 함께해 보완됐지만 부족한 예산 때문에 나래이션적 음악 구조에 취약할 수 있는 전체 틀을 서사적 구조로 승화시키는 기지가 돋보인 작품이다. 무용과 연기자, 성악가가 유기적으로 융합되고 이를 영상과 잘 매치해 기존의 무대 연출이 오페라라는 장르적 한계에 매몰되지 않게 확장성을 가지게 했으며 나아가 관객 역시 함께 하는 출연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 흥행사적 기지가 보이는 공연이었다.
지난 8월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무등둥둥’의 출연자들. 출처 펠리체 솔리스트 |
무거운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오페라는 실패한다는 공식은 오페라사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랑 속에 역사를 담든지 역사를 조망하는데 다른 시각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등둥둥>은 타협보다는 작품이 가지는 시대정신인 광주 정신의 가치에 모든 것을 쏟아내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지켜야 하는 ‘정의’란 명제를 올곧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더 민중에게 다가서길 위해서는 울부짖는 광주의 모습도 좋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연기나 음악 부분에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더 많이 잔존할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받지 않을까 사료된다.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연출의 다변화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곡가 김선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예술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진보성은 기존 작품의 끊임없는 변화와 엄청난 노력을 예술가들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해마다 예술가들의 피땀과 눈물로 짜낸 새롭게 탄생하는 오월의 서사를 만나고 더 많은 요구를 한다. <무등둥둥>은 광주의, 광주에, 광주를 위해 올곧이 광주가 올리는 작품이다. 열악한 환경과 우리 예술가들의 열정이 듬뿍 담긴 우리의 오페라 <무등둥둥>에 대한 광주시의 지원과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시민 오페라 <무등둥둥>의 비상을 계속 지지하고 광주 외의 다른 무대에서도 지속하여 올려지는 확장성을 꿈꿔본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