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2021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박하사탕’. 출처 광주시립오페라단 |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시대를 투영하는 가장 장대한 예술 프로젝트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통 기념으로 만들어진 베르디의 <아이다>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 못지않게 근래에 지역의 정신을 담는 대표적인 오페라를 만들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대전이라는 도시 브랜드 스토리를 위해 만들어진 <대전 블루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순이 삼촌>,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인 윤심덕의 이야기를 다룬 영남 오페라단의 <윤심덕 사의 찬미>, 전주 호남 오페라단의 <논개>와 정읍의 동학 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동녘> 등이 있다.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지속 발전해 오면서 우리 오페라 역시 이제는 서양의 오페라에 못지않은, 탄탄한 구조와 서사를 담은 명작들이 탄생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광주의 5월 이야기를 담은 광주시립오페라단의 <박하사탕>이 있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2021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박하사탕’. 출처 광주시립오페라단 |
광주를 소재로 하는 오페라는 계속 만들어 올려지고 있다. 그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어두운 과거 역사지만 대중과 가장 잘 소통하는 작품은 2000년 국내 영화계를 휩쓴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 <박하사탕>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
이 오페라로 만들어지긴 했으나, 영화와 달리 시간·공간적 제약에 따른 불안한 작품구조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미 흥행한 소재라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비해 시·공간적 제약을 지니는 오페라는 원작보다 작품의 구조가 취약해져 스토리 역시 빈약하게 되며, 이는 자연적으로 원작과 비교해 흥미가 반감되는 요인을 낳았다. 하지만 <박하사탕>은 이전의 성공한 영화 등 좋은 원작을 가져와 제작한 국내 창작 오페라가 고질적으로 지녀왔던 구조적 불안함을 짜임새 있는 음악과 잘 만들어진 대본, 연출의 힘으로 극복해 냈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2021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박하사탕’. 출처 광주시립오페라단 |
필자에게 2022년 5월 18일 오월의 광주를 오페라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고대했던 <박하사탕>을 80년 5월 그날의 장소인 옛 전남도청에 세워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필자에게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창작 오페라 <박하사탕> 안에는 시대의 낭만과 해학, 그리고 어둠과 슬픔이 잔존하며,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광주를 지킨 시민에게 헌정한다’라는 작곡가 이건용의 철학이 올곧이 담겨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작품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이건용은 이러한 다양함을 어색하지 않게 작품 안에서 배분하고 있다. 2부 6장면으로 구성된 <박하사탕>은 원작 영화와 달리 장소와 시간의 간극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효율적 침묵과 적절한 화성의 변화로 해결했다. 오페라의 역사에 대한 과한 몰입은 내용의 의도성에만 치중되어 작품 전체가 무거워질 수 있고 이는 관객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박하사탕>은 작곡가의 기지가 작품의 틈새에 적절히 배분되어 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코믹코드와 밝음을 효과적으로 삽입하여 관객들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주었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2021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박하사탕’. 출처 광주시립오페라단 |
세계 최고의 흥행사라 불리는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가 거의 모든 작품을 성공의 반열에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좋은 대본을 향한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곡뿐만 아니라 작품의 성공을 위해 제작에 뛰어들었던 푸치니는 훗날 대본가들과 반목을 이룰 정도로 적극적인 개입과 음악과의 융합이 극도로 고도화되는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도출된 푸치니의 작품은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레퍼토리가 되었다.
<박하사탕> 역시 호평을 받는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훌륭한 대본이다. 영화의 내용을 세련되게 축약하여 무대공연에 적합하게 탈바꿈시켰으며 적절하게 선택된 함축된 단어를 통한 연상 작업은 관객에게 제작자의 철학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창작 오페라가 새로움을 향한 열망에 매몰되어 부실한 대본과 과도한 실험적 음악을 통해 ‘도전’이라는 타이틀만을 가지고 잊혀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용과 절제가 함께 하는 <박하사탕>은 시대의 아픔을 다룬 역사 오페라 창작물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지난 2021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박하사탕’. 출처 광주시립오페라단 |
근래 대한민국 창작 오페라로 선율의 수려함과 더불어 사실주의적 전개의 치밀함, 강렬함이 존재하는 <박하사탕>은 세계화를 위해 더욱더 진보적 시선의 연출과 더불어 광주의 미를 덧칠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약간의 디테일이 부족한 의상과 소품의 보안과 더불어 철학적 해석이 필요한 연출도 좋지만, 의미 보다 보여주는 사실적 연출, 그리고 그것을 장대하고 더욱 고도화시켜줄 광주의 미디어아트와 융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이탈리아 유수의 오페라와 경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또한, 초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상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악가, 무대 인력 등 더 많은 지역 인재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작품의 상설화를 이끌고 광주 전역에서 <박하사탕>의 곡조가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최고의 작품 <박하사탕>은 광주의 역사를 올곧이 담은 작품으로 한류 오페라의 세계화에 선봉장이 될 수 있는 다각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준비된 작품과 더불어 이제 광주의 모든 구성원의 지지와 사랑만이 남아있다.
광주가 만든 <박하사탕>이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 브랜드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오페라 <박하사탕>을 보는 것이 세계인의 버킷리스트가 되길 소원한다. 1980년 광주의 오월이여! <박하사탕>에 담겨, 앞으로도 계속하여 영원히 우리 안에 기억되리라!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추천명곡 : 유튜브 [2021 신년 음악회] KBS교향악단_오페라 박하사탕 서곡, KBS1TV 2021년 1월 17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