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이미경>생명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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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이미경>생명을 지키는 일
이미경 사)맥지청소년 사회교육원 원장
  • 입력 : 2025. 07.29(화) 13:31
생명을 지키는 일,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와 OECD의 통계에 따르면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들어 청소년 자살 및 부모와의 동반자살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어린 아이들과 가족 전체가 함께 사라지는 비극은 더 이상 개인이나 가정의 불행으로만 여길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그 신호에 응답하지 못했다.

얼마 전엔 지인의 부모님상으로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러갔는데 안타깝게도 부모가 함께 생을 마감하여 위층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어보니 아직 젊은 나이라는데 아이들이 있는지 궁금했고 걱정이 되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위층으로 향하였다. 젊은 부부의 사진을 보고 분향소로 향하였는데 초등학교4학년, 2학년 딸을 둔 부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하였다. 생면부지이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어 그냥 있을 수 가 없었다. ‘내가 도울 일이 없을까? 앞으로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차마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친 유족 중에 지인이 있었다. 걱정이 되고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아 왔다고 하면서 언제라도 연락을 주라고 명함을 건네고 오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생떼같은 아이들을 두고 가는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남은 아이들을 위해 부족하지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가족이나 지인의 자살은 남은 사람에게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져온다.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하겠다.

특히 부모가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은 정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다. 보호자인 부모가 경제적 빈곤, 정신적 소진 상태에 빠져 함께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은 이중의 비극이다.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생명을 버리는 일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되겠다. 고통받는 가정을 보듬고,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살아 갈 수 있는 이유와 길을 함께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 중심 심리 지원 시스템 확대가 요구된다. 정부는 위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체계적인 데이터 시스템과 함께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통합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정부와 지역사회, 교육기관, 의료계가 모두 나서서 예방하고 지원하여야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성과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점점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힘든 사건을 보면 나 자신도 너무 힘들어져서 애써 외면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자살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누군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다. 이웃의 안부를 묻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친구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자살을 예방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 경제난, 실직등 복합위험군 가족에 대한 집중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익명신고와 개입이 가능한 위기가정 ‘패스트트랙’제도를 도입해야한다. 위기상황에 놓인 가정을 조기에 발견하고 복지 서비스, 의료보호, 주거등을 신속하게 연계하여 상황악화를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또한 AI기반 자살 고위험군 문구 자동 감지 및 경고 시스템과 신고기능 고도화가 필요하다. 어느 지역에서 자살 시도가 많다고 하면 막연하게 시설 보수등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최근에 대통령께서 자살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였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여 국가적인 손실, 사회적인 손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하겠다.

우리는 더 이상 눈을 돌릴 수 없다.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현실은 이 사회가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이 바로 구조적 대책과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때다. 생명은 한 번 뿐이며, 그 어떤 절망도 삶보다 무거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