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CEO·김이강>골목에서 되찾는 지역경제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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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CEO·김이강>골목에서 되찾는 지역경제 주권
김이강 광주 서구청장
  • 입력 : 2025. 07.24(목) 15:57
김이강 광주 서구청장
2000년대 중반, 광주의 골목상권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향토 유통기업 ‘빅마트’가 대기업에 매각되면서 동네 곳곳의 골목상권은 대형마트, 프렌차이즈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동네슈퍼자리는 편의점이, 동네빵집은 프렌차이즈 베이커리로 바뀌고, 골목커피숍 자리에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오랜 시간 지역 주민의 소비로 쌓인 골목자본은 순식간에 대기업으로, 외부로 유출됐다.

이같은 변화는 단지 상점의 간판이 바뀐 문제가 아니었다. 지역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자본의 대이동이었고, 골목을 기반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수많은 상인들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광주 서구는 골목경제 회복을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일회성 지원금이나 단발성 행사로는 골목경제의 뿌리를 살릴 수 없다는 판단에 더딜지라도 지속 가능한 소비 구조, 자립 가능한 상권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구는 골목자본을 다시 골목으로 되돌리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골목형상점가 지정과 온누리상품권의 결합이다. 처음에는 지역화폐 도입도 검토했지만 막대한 예산, 시스템 구축 비용과 시간, 운영의 지속 가능성 등 현실적인 제약이 컸다. 대신 이미 존재하지만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던 제도, 온누리상품권에 주목했다.

온누리상품권은 ‘골목형상점가’라는 제도적 장치와 결합할 경우 사용처를 대폭 확대할 수 있다. 국비 전액 지원과 최대 20%의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구조적인 인센티브 덕분에 소비자와 상인 모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서구는 전국 최초로 행정구역 전체를 골목형상점가로 지정했고, 6월30일 ‘대한민국 골목경제 1번지’ 선포식을 가졌다. 단기적 소비 유도에서 벗어나 지역 경제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작점이었다.

물론 실현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골목마다 직접 찾아가 주민과 상인을 설득했고,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이웃 상점들을 돌며 참여를 독려했다. 주민들은 행정과 상인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줬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힘을 모은 결과 100일만에 서구 전체 119개 골목이 골목형상점가로 지정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상인들은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했고, 공직자들은 “주민들에게 이렇게 직접적인 혜택을 드린 정책은 처음”이라며 보람을 느꼈다. 단순한 행정 성과를 넘어 지역 경제의 활력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였다.

이제 서울, 강원,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이 사례를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광주시는 서구의 성공사례를 광주 전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식선언과 함께 지역화폐(광주상생카드)와 온누리상품권의 결합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비결을 묻는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단 하나, 현장이다. 서구는 지난 3년간 ‘생활정부’를 지향하며 행정에 대한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유능하고 활동적인 동장을 배치하고, 정책 기획부터 실현까지 주민과 함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아무리 정교한 계획도 현장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실행력이 떨어지고 결국 주민의 체감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회의실보다 골목에서, 보고서보다 주민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는다.

무엇보다 골목형상점가 지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집무실에 상황판을 설치해 실시간 골목형상점가 현황을 살피고 ‘골목경제119폰’을 통해 상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또 18개 동을 돌며 골목집무실을 설치하고 소상공인들의 체감도, 주민들의 만족도, 공무원들의 실행력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예정이다.

이제 서구의 골목경제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구조적 회복과 선순환으로 나아가고 있다. 소비의 방향이 다시 골목을 향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행정이 어떻게 시장을 돕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구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생활정부의 길은 결국 생활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골목경제를 깨우는 걸음, 광주 서구가 먼저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