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세이>함께 웃고 어울리는 그런 노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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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세이>함께 웃고 어울리는 그런 노년을 보내고 싶다
노진곤 수필가 광주문인협회 법률자문위원장
  • 입력 : 2024. 06.06(목) 17:50
노진곤 수필가 광주문인협회 법률자문위원장
과학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백세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주위에도 백수(白壽)를 앞둔 노익장들이 적지 않으니 가히 장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살았던 고향 마을은 10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환갑을 지내고 돌아가신 분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칠순을 축하하는 것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그야말로 ‘장수의 환갑’에서 ‘청춘의 60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장수(長壽)는 중국의 진시황제를 비롯하여 인류의 최대 숙원이었다. 그렇다고 백세 장수 시대가 우리에게 축복일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비참한 노년의 경우로서 유병장수(有病長壽), 무전장수(無錢長壽), 독거장수(獨居長壽), 무자장수(無子長壽), 무업장수(無業長壽) 등 다섯 가지를 읽은 적이 있다. 병들어, 돈 없이, 배우자 없이, 자식 없이, 할 일 없이 장수하는 것은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 ‘무업장수’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뜻대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나는 한때, 건강을 잃고 칩거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J. P. Sartre)의 ‘자기 자신만의 절대적인 주체성, 즉 실존은 타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신봉하고, 특히 그의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 나오는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라는 말로 나의 칩거를 정당화했었는데, 갈수록 피폐해지는 자신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TV를 보다가 졸다가, 또 깨어나 TV를 보다가 또 자다가…,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하루가 지나가는 무기력한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각성하고, 매일 일을 만들어 외출을 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은 ‘봉사’니 ‘재능기부’니 하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 않더라도, 친구들이나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 등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여 돕고, 그러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여 실천하고 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백수(白手)이면서도, 정년퇴직 전보다도 더 바쁘게 살고 있으니 이 또한 보람이다. 칩거할 적 무기력했던 일상도 활력이 찾아오면서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정년퇴직 전에는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피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바쁘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되레 “바쁘다고? 백수가 뭐가 바쁘니?.”라는 핀잔을 듣다 보면 오히려 ‘살아있다’ 희열을 느낄 때가 많다.

사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면 정말 바쁘다. 아직 내가 늙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아파트 경로당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으로 느껴진다. 밖에서 ‘할아버지’나 ‘노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귀에 거슬린다. 밖에서의 사회생활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끔 남에게 듣기 싫은 말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 언행 등으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타인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도 필요하지만 ‘말을 가려 할 수 있는 지혜’가 가장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노년의 행복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노년이 될수록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살기를 바라면서, 욕심과 아집을 버리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더라도 웃어넘기고, 나잇값을 핑계로 하고 싶은 훈시는 맘속에만 담아두리. 덕담 주고받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기꺼이 달려가는 자세, 그것이 내가 원하는 노년의 바람직한 자세다.

비록 육체는 늙어가지만, 정신만은 절대로 늙을 수 없다. 신체의 병(病)까지도 동행하겠다는 의지로 이겨내면서, 넉넉한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로 주위 사람들과 웃으면서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노년을 보내고 싶다.